• "國史 교과서 개혁은 박근혜 대통령의 작품."

    趙甲濟 대표 TV 조선 대담, "만약 최순실이 만들었다면 표창해야."

    趙甲濟    /조갑제닷컴 대표      
     


  •   "우리가 한국사 교과서의 좌편향성을 제기한 지 15년 만에 國定 한국사 교과서 개혁본이 나왔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의 작품이다. 지적과 비판은 많았지만 국가가 개입하여 미래 세대의 역사관을 바로잡겠다고 나선 것은 처음이었다. 이 문제는 최순실 사태와 별도로 다뤄야 한다. 최순실이 만든 교과서가 아니지 않는가. 만약 최순실이 만들었다면 아, 좋은 일도 했구나 하여 표창해야 한다(웃음).
     
      지금 사용되는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중 교학사 것을 뺀 나머지 일곱 종은 절대로 학교에서 가르쳐서는 안 된다. 민중사관, 즉 계급사관으로 써진 좌편향 교과서이기 때문이다. 민중사관은 민중주권론에 기초한 것으로 헌법재판소의 통진당 해산 결정 때 헌법위반 판단을 받은 것이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지난 70년을 건설이 아닌 투쟁 일변도로 그렸다.
     
      오늘 교육부 장관의 설명을 들으니 가슴이 찡하였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확실히 하기 위하여 만든 교과서라고 했다. 그리고 역사적 사실을 균형되게 기술하고 통일로 나아가는 길목에서 북한에 대하여 정확한 지식을 알려주려 노력했다는 것이다.
     
      특히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고 적었다는 데서 안도하였다. 지금 교과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 적어 대한민국이 反국가단체인 북한보다 한 등급 낮은 것처럼 표현하였다. 북한정권이 더 정통성이 있는 것처럼 조작한 것이다. 이번 교과서는 북한정권 수립, 대한민국 수립이라고 적었다.
     
      대한민국이 1948년 8월15일에 수립된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1919년 상해 임시 정부를 대한민국 수립으로 봐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이 있지만, 또 48년 건국을 주장하면 친일파를 옹호하느니, 독립투쟁을 무시하느니 하지만 19년 건국설을 주장하면 독립투쟁이 무시된다. 왜냐? 건국한 다음에 독립운동을 왜 하나? 분리주의자나 반역자가 아니라면? 그렇다면 김구 이승만이 분리주의자인가?
     
      친일파가 대한민국을 만들었다는 억지도 있는데, 초대 내각 명단을 보라. 대통령 이승만, 부통령 이시영 등 모두가 독립투사들이다. 북한의 초대 내각엔 친일파들이 많다. 북한이 친일파를 청산하고 한국이 하지 못하였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이번 교과서 집필 기준으로 외교적 독립운동을 기술한다고 되어 있으니 이게 이승만을 미화하 게 아닌가 시비를 거는데, 오해이다. 한국에는 이상하게 무장 독립운동만 높게 평가하는데 수년 전 작고한 시아누크 캄보디아 왕은 한국의 한 진보적 지식인을 만나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이승만은 우리보다 한 수 위의 독립지도자였다. 외교를 잘하여 나라를 세웠으니 희생도 적었다"는 말을 하였다고 한다.
     
      이승만은 국제정세를 고차원에서 본 사람이고 그러한 관점에서 대한민국을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세우고 미국의 동맹국으로 만든 것이다. 김일성은 항일운동을 한 적은 있지만 독립운동을 한 적은 없다. 그는 중국공산당 소속이었고 나중엔 소련으로 쫒겨갔다.
      대한민국이 독립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외교적 사건은 루스벨트, 처칠, 장개석이 합의한 카이로 선언이다. 이 선언에서 장차 한국을 적합한 절차에 따라 독립시킨다는 문구가 들어갔다. 이 문구가 들어간 데는 이승만의 노력과 함께 김구의 역할도 있다. 장개석이 김구와 친밀하지 않았나?
     
      이번 교과서가 이승만과 박정희에 대하여 독재라는 표현을 한 것은 유감이다. 두 사람은 한국 민주주의의 두 건설자이다. 이승만은 자유민주주의를 세우고 박정희는 그 민주주의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물질적 토대를 만든 사람이다. 이승만은 한국전쟁을 통하여 그 민주주의를 싸워서 지켜냈고, 산업화가 성공할 수 있는 기반, 즉 농지개혁, 교육확충, 한미동맹을 만들었다. 링컨이 1950년대에 한국에 있었더라도 이승만보다 더 잘할 순 없었을 것이다. 1952년 戰時에도 최대 규모의 선거를 했다. 전쟁중에도 언론검열을 하지 않았고, 국회 문을 닫지 않았다. 박정희는 자신을 민주주의자로 생각하였다. 다만 서구식 민주주의를 한국 현실에 맞게 변형하여 한국식 민주주의로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이다. 역사서에서 박정희, 이승만을 독재라고 표현하는 것은 무리이다. 학자들은 리버럴 오소리테리안, 즉 자유지향적 권위주의 통치자라고 한다.
      요사이 최순실 사태로 대통령의 지도력이 약해졌다고 국정 교과서를 문제 많은 검인정 교과서와 섞어 쓰자는 이야기를 하는데 이는 기회주의적 행동이다. 국정 교과서 단일본으로 가야 한다. 이미 정한 노선을 수정하면 더 큰 혼란이 온다."

    [조갑제닷컴=뉴데일리 특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