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간 '충호' 2015.12월호 전재>

    ‘김정은 정권’의 교체가 출발점이 된다
    - 자유·평화통일의 가능성과 그 방도 -


    정  상  돈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자유·평화통일의 조건

      자유통일·평화통일은 조건에 따라 가능할 수도, 또한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다. 자유·평화통일이 가능할 수 있는 필수조건은 남북한 정부가 평화적으로 합의하되, 북한 정부가 남한 주도의 흡수통일에 동의하는 것이다. 그런데 김정은 정권이 존속하는 한 남한 주도의 흡수통일에 결코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자유·평화통일이 가능하려면 우선 북한에서 김정은 정권이 교체되고, 친한정권이 탄생해야 한다.
  • ▲ 지난 1989년 11월 19일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11월 10일 동독 주민들이 서독으로 탈출하기 위해 기차역에서 표를 구입하고 있다.
    ▲ 지난 1989년 11월 19일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11월 10일 동독 주민들이 서독으로 탈출하기 위해 기차역에서 표를 구입하고 있다.
  북한에서 김정은 정권이 붕괴되고 곧 바로 친한정권이 탄생하면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그 전 단계에서 개혁·개방을 추구하는 사회주의 친중정권이 탄생해도 일단 큰 진전이다. 김정은 정권이 교체되고 변화의 바람이 불게 되면 친중정권이 친한정권으로 바뀌는 것은 시간문제일 수 있기 때문이다. 친중정권과 비핵화 협상 및 남북 간 교류협력의 확대를 추진하면서 주민들의 친한화를 달성하면 변화된 북한에서 친한정권은 탄생할 수 있다.
  동독에서는 1989년 중반부터 대규모 동독 탈출난민이 발생하고, 내부에서 민주화 시위가 확대되면서 급변사태가 초래됐다. 그 결과 장기 집권하던 호네커 공산당 서기장이 동년 10월에 물러나고, 크렌츠가 후임 공산당 서기장으로 선출되어 사태를 수습하고자 했지만, 결국 한 달도 못되어 개혁 성향의 모드로우 총리로 바뀌었다. 그러나 사회주의 동독체제의 구원투수로 나선 모드로우 총리도 동독에서 불기 시작한 거센 변화의 바람 앞에서 무력했다. 그리하여 사회주의 정권은 4개월 밖에 버티지 못하고 1990년 3월 총선에서 친서독 성향의 민주정권으로 교체되었다. 그리고 7개월 후에는 동서독 정부의 합의 하에 서독이 주도하고 동독이 편입되는 방식으로 자유통일과 평화통일이 이루어졌다.
  • ▲ 지난 2009년 11월 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앞 광장에서 펼쳐진 베를린 장벽 붕괴 20주년 기념 불꽃놀이
    ▲ 지난 2009년 11월 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앞 광장에서 펼쳐진 베를린 장벽 붕괴 20주년 기념 불꽃놀이
  •   독일이 통일되는데 가장 큰 장애요인은 국제법적 문제였으며, 그 근저에는 주변국들이 독일의 통일을 원하지 않았던 경계심이 깔려있었다. 두 차례나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독일이 통일되어 다시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것을 프랑스와 영국 등 주변국들이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특히 구 소련은 사회주의 동독체제가 붕괴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통일에 대한 동독 주민들의 열망이 거세게 분출하여 통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발전하자 결국 소련과 프랑스 및 영국 등 주변국들은 독일통일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통일에 대한 동독 주민들의 열망이 주변국들의 견제와 국제법적 장애요인을 일거에 해소하는 결정적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20세기 독일통일의 주역을 동독주민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당시 서독의 콜 총리가 상황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며 통일외교를 잘 할 수 있었던 것 역시 높이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콜 총리가 정치와 외교력을 발휘해서 성과를 볼 수 있었던 것도 기본적으로 통일에 대한 동독 주민들의 강한 열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필자가 이 부분을 강조하는 이유는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들이 공식적인 입장 표명과 달리 실제로 한반도 통일을 얼마나 지지할 것인지에 대하여 우리 사회 일각에서 의문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독일통일이 주는 교훈과 시사점은 분명하게 있다. 설령 주변국들이 한반도 통일을 원하지 않더라도 남북한 주민과 정부가 강하게 통일을 원하면 민족자결권에 기초한 한반도 통일을 누구도 막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동서독과 달리 국제법적으로 주변국들의 동의를 얻어야만 통일을 실현할 수 있는 처지에 있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점은 남북한 주민과 정부 모두 자유·평화통일을 원하느냐 하는 것인데, 이렇게 되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을 뿐이지 자유·평화통일이라는 그 목표 자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또한 자유·평화통일의 조건이 아직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하여 주변국들과 협력하며 해결해야 할 사안이 있을 뿐이지, 그 조건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 ▲ 지난 1990년 2월 14일 모스크바에서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오른쪽) 과 헬무트 콜 총리가 정상회담에 앞서 환담하고 있다.
    ▲ 지난 1990년 2월 14일 모스크바에서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오른쪽) 과 헬무트 콜 총리가 정상회담에 앞서 환담하고 있다.

    자유·평화통일의 로드맵

      자유·평화통일은 다음과 같이 3단계 로드맵을 거쳐서 실현될 수 있다.

    김정은 정권의 교체를 시작으로 점진적(혹은 조기) 통일 추진
    1단계 : 김정은 정권 → 개혁정권 → 자유선거를 통한 민주 친한정권 탄생 유도
    2단계 : 북한의 친한정권과 국가연합 (2국가 2정부 1체제) 추진
    3단계 : 통일한국 달성
    자유ㆍ평화통일의 로드맵

      1단계에서 우리의 목표는 북한에서 급변사태가 발생하여 김정은 정권이 교체되면, 과도기 상태의 사회주의 개혁정권을 거쳐서 궁극적으로 민주 친한정권의 탄생을 유도하는 것이다. 2단계 목표는 북한의 친한정권과 국가연합을 추진하고, 3단계에서 한반도의 통일을 달성하는 것이다.
      독일에서는 동독급변사태 발생 후 위의 표에 보이는 것과 같은 3단계를 거쳐서 통일이 되기까지 약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특히 2단계에서 동독이 서독의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전격적으로 화폐통합을 실시하여 최단기간 내에 통일을 실현했기 때문에 조기통일이 실현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만약 1단계에서 2단계를 거치는 과정에서 점진적인 경제통합과 화폐통합을 실시하여 동독의 사회주의 경제시스템을 시장경제체제로 이행시키는데 몇 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면 독일에서 점진적인 방식으로 통일이 되었다고 말할 것이다.
  • ▲ 지난 2009년 9월 서울 논현동 북한민주화위원회에서 열린 사무실 개소식에 참석한 황장엽(전 북한 노동당 비서) 당시 북한민주화위원장
    ▲ 지난 2009년 9월 서울 논현동 북한민주화위원회에서 열린 사무실 개소식에 참석한 황장엽(전 북한 노동당 비서) 당시 북한민주화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