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청의 비극과 이희호 여사의 晩節

    인간은 晩節이란 것이 있다. 인생의 종말이 되어 올수록 節操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지 못하면 지난 젊은 시절의 모든 공든 탑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마중가 (중국문제 전문가)

    이희호 老媼(노온)의 晩節

    중국에서는 여차여차한 斯界의 元老랍시고 거들먹거리면서 잘난척하는 老朽들을
    <依老賣老(의로매로)>한다고 풍자한다.
    늙은 티를 내며 거만하게 행세하고 나이를 내세워 뻣뻣하게 군다는 뜻이다.
    이 와 비슷한 뉴앙스를 풍기는 말로 <依夫賣夫(의부매부)>란 말이 또 있다.
    어딜가나 남편을 내세워 거들먹거리는 여자들을 풍자하는 말이다.

    모택동의 마지막 와이프 江靑(강청)이야말로 중국역사상 依夫賣夫(의부매부)>의 극치에 달했던 여자다. 그녀는 1933년 상해에서 지하공산당원으로 입당했다가 국민당에 체포되어 강옥생활을
    했다. 1937년 연안으로 가서 1938년 모택동의 당시 부인 賀子珍(하자진)을 내쫓고
    모택동과 공공연하게 동침하면서 부인이 되었다.

    그녀는 1963년까지는 그만 했으면 조용히 살았다. 조용히 살 때는 사람들이 그녀를 그런대로
    신비하고 莫測(막측)한 여인으로 보아주었다. 그런데 1963년부터 갑자기 政界전면에 나타나더니 연설을 하느니 지도를 하느니 하면서 연극영화계를 휘저으면서 돌아다녔다.

    1966년 문화대혁명이 일어나자 이번에는 文革고문으로 둔갑하여 자기는 방금 전까지
    <위대한 수령 모택동>의 신변에 있다 오는 길이라면 서 새빨간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依夫賣夫(의부매부)>하면서 우쭐댔다.
    사실은 모택동의 반대로 근 10년 동안 모택동과 떨어져 살았다.

    1976년 9월9일 모택동이 죽자 4주 후인 10월7일 중공군 장군들은 단번에 강청을 체포하였다.
    그리고 법정에 세워 1981년 1월25일 문혁의 죄를 물어 사형,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였다.
    2년 후 무기도형으로 형량을 낮추었으나 보석기간중인 1991년 5월 14일 강청은
    스스로 목을 매고 자살하였다. 향년 76세.

  • ▲ 평양 공항에 도착한 이희호.(연합뉴스)
    ▲ 평양 공항에 도착한 이희호.(연합뉴스)
    인간은 晩節이란 것이 있다.
    인생의 종말이 되어 올수록 節操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지 못하면 지난 젊은 시절의 모든 공든 탑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윗글에 나오는 강청을 보라.
    조용히 입다물고 있었으면 國母대우를 받으면서 얼마나 만중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을까?
    남편을 거들먹거리면서 <依夫賣夫(의부매부)>하다가 만인의 지탄을 받는 역사의 죄인이 되었다.
    이희호 노온은 이번에 평양에 가지 말아야 할 길을 다녀왔다.
    6·15 운운하면서 자신이 김대중의 와이프임을 상기시키려고 하는가 하면
    통일 운운하면서 자신이 마치 김대중의 햇볕정책의 계승자나 된 것처럼
    忘乎所以(망호소이- 자기 체통을 잊었다 )하지 않았는가?
    초청장을 발부한 김정은은 물론 반드시 나와야 할 김양건마저도 이희호를 외면했다.
    말하자면 북에서는 <털모자 이휘호>의 내방을 술상에서의 하잘 것 없는 한낱 웃음거리로
    치부한 것이다.
    이희호 노온님이 만절을 지키는 법은 간단하다.
    털모자는 북한의 산야와 중국땅 곳곳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생명을 겨우 지탱하면서 살아가는 수천수만의 북한의 거지들인 꽃제비들에게 줘야 한다.
    이희호 여사가 만절을 지키는 방법이 또 하나 있다.
    김정은에게 한 마디 하라.
    <민족의 전몰을 가져올 핵무기를 버리고 그 아까운 돈을 절약하여 북한 주민들 배불리 먹이고
    경제를 부흥하여 하루빨리 세계 최빈국 반열에서 탈출하라 >고.
    이희호 여온이 남은 여생에 만절을 지킨다면 역사는 그녀를 좋게 기억해 줄것이지만
    그러지 못하면 이휘호도 강청의 운명과 별반 차이가 없을것이다. 
    역사는 그래서 무정하답니다. 이희호 여사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