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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에서 이승만 건국대통령 서거 50주기 추도식박진 회장 “건국 대통령 이승만 재평가 … 국가 발전 원동력 삼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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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후 5시(한국시간 19일 낮 12시) 하와이 호놀룰루의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에서 우남(雩南) 이승만(李承晩·1875~1965) 전 대통령의 서거 50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112년 역사를 지닌 이 교회는 한국 이민자들이 미국 땅에 처음으로 세운 교회다.
1913년 초 하와이에 정착한 이 전 대통령이 독립운동을 하던 곳이기도 하다.
이날 추도식은 ‘건국대통령우남이승만박사숭모회’(회장 김창원)와 ‘건국대통령이승만박사기념사업회’(회장 박진), 이승만연구원(류석춘 교수), 하와이 한인단체 등이 공동 주최했다.이 전 대통령의 유가족 대표인 이인수 박사는 “이승만 대통령께서 끝내 꿈에 그리던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하와이 마우나라니 요양원에서 안타깝게 마지막 통한의 숨을 거두신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앞을 가린다”며 “서거 50주년 추모 행사를 계기로 이승만 대통령의 숭고한 건국정신과 나라 사랑하는 자기희생 정신이 있는 그대로 국민들에게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창원 숭모회 회장은 “자기 나라 역사를 알지 못하는 국민은 미래가 없다. 그것은 나침반이 없는 배와 같다”며 “건국 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숭고한 건국정신을 상기하고 그의 역사적인 공과를 올바르게 재평가함으로써 미래 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호소했다.이호(통일한국리더십아카데미 대표) 목사는 “오늘날 대한민국이 겪고 있는 정체성의 혼란은 건국정신에 대한 올바른 이해 부족에서 오는 것”이라며 “젊은이들의 가슴에 조국에 대한 자긍심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역사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조선 민족의 우수성을 파악하고 교육의 중요성을 일깨운 최초의 지도자가 이승만이었다”며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왜곡된 시각과 악의적 폄하를 경계했다.60년 5월 29일부터 서거(65년 7월 19일) 때까지 5년2개월간 살던 하와이에는 이 전 대통령의 발자취가 서려 있다. 이 전 대통령은 서울을 떠날 때만 해도 하와이에서 2~3주 정도 쉬다 돌아갈 생각이었다. 짐이라곤 트렁크 2개와 타자기·약품 등을 넣은 가방 2개가 전부였다. -
이 전 대통령이 살았던 호놀룰루의 마키키 스트리트의 목조주택은 소박했다. 이 전 대통령 부부는 이곳에서 곤궁한 삶을 살았다고 김창원 회장은 회고했다. 이 전 대통령은 지인들에게 “한국 땅을 밟고 죽는 것이 소원”이라며 “걸어서라도 고국에 가겠다”고 밝혔다 한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의 귀국을 부담스러워한 박정희 정권이 그의 귀국을 달가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대해 김종필 전 총리는 7월 17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증언록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이승만 박사의 환국을 막았다는 얘기들이 있는데 이는 과장됐거나 잘못됐다”며 이 전 대통령의 병세가 악화돼 항공 여행을 할 수 없어 귀국하지 못했다고 했다.이 전 대통령은 귀국이 좌절되자 건강이 급격히 악화됐다. 그가 숨을 거둔 마우나라니 요양원은 50년에 개원할 때 모습 그대로인 3층짜리 콘크리트 건물이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마지막까지 202호실 병실 창밖으로 한국 방향 태평양을 바라보며 기도했다고 한다.이번 하와이 행사를 통해, 대한민국을 건국한 이 전 대통령이 시대를 앞서가는 선각자였으며 불글의 신념으로 강대국들과 맞서 대한민국을 건설한 민족 지도자였다는 역사인식을 새롭게 하였다고 참가자들은 입을 모았다. 이 전 대통령은 반세기 전 서거했지만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애국정신과 자유민주주의 철학은 오늘날에도 우리 국민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면서, "진정한 건국은 우리 힘으로 남북통일로 완성해야 한다"는 각오를 다졌다.[하와이=박진 건국대통령이승만박사기념사업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