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 기업, 나쁜 기업

    좋은 기업은 중소기업이나 중견기업이 아니라 흑자 기업이다.

    최성재     
       


  •  중국의 오성홍기(五星紅旗)에서 큰 별은 공산당, 작은 별 4개는 각각 노동자, 농민, 중소 자본가, 민족 자본가를 나타낸다.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정당이나 계층은 천인공노할 악(惡)의 집단이요, 영원한 투쟁의 대상이다. 공산당 이외의 모든 정당, 민영(民營) 대기업, 외국계 기업, 지식인은 척결 대상이다.

    모택동은 실제로 이 이념을 곧이곧대로 실현하기 위해서 대약진 운동과 문화혁명을 일으켜 최소한 3천만 명을 굶겨 죽이거나 때려 죽였다.

    등소평의 개혁개방은 오성홍기의 계급투쟁을 사상이나 이론이 아니라 정책으로써 정면으로 부인한 것이다.
    외국인의 투자 없이는 중국은 10억이 거지나 깡패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등소평이 제일 먼저 추진한 것이 외국인 투자 유치였다. 중국 경제의 심장 심천 경제특구는 그렇게 해서 탄생되었다.

    모택동이 살아 있었다면 등소평은 바로 천안문 광장에서 총살당했을 것이다. 등소평은 지식인도 농촌과 산골로 보내 정신을 개조시키는 게 아니라 경제건설의 최전선으로 내세웠다. 경제가 공산주의 이념으로는 영원히 발전시킬 수 없음을 알고 기술관료technocrat를 대대적으로 우대했다.

     
    개혁개방이 상전벽해의 대성공을 거두자, 2000년 2월 강택민 손자가 거대한 초상화 속의 모택동 할아버지 앞에서 등소평 아버지가 옳았다며 ‘3개 대표론’을 들고 나왔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공산당 유일 영도를 못 박긴 하되,

    첫째, 기업가(중소기업, 중견기업, 대기업을 나누지 않고)가 최고요(선진 생산력 先进生产力的发展),

    둘째, 지식인이 그 다음으로 중요하고(선진 문화발전 先进文化的前进),

    셋째, 노동자 농민 중산층도 당연히 중요하다(대부분의 국민을 아우르는 인민의 근본이익 最广大人民的根本利益)는 내용이었다.

      오성홍기에 포함되지 않은 대기업과 외자(外資)기업도 중국의 GDP만 올려 주면 최고이며 그것을 뒷받침하는 지식인도 당연히 중요하고, 인민 앞에 굳이 ‘최광대’라는 말을 써서 노동자 농민만이 아니라 중산층도 다 같은 중국인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   우습게도 전 세계 개도국의 북극성 한국에는 정반대 현상이 일어났다.
    1970년대부터 이영희에 의해 대학가에 모택동 열풍이 불면서 중국의 오성홍기 이념이 한국의 지식인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졌다.
    실제 생활은 철저히 잘 먹고 잘 사는 자본주의를 따르면서, 대기업에 기를 쓰고 들어가려고 하고,
    외국계 회사에 근무하는 것을 무상의 영광으로 생각하면서, 입으로는 국내 저축이 태부족한 상황에서 외자를 도입하지 않을 수 없었던 대기업을 매판자본이라며, 재벌이라며, 정경유착기업이라며 만악의 근원으로 매도했다.

    순수 국내 자본에 의한 중소기업은 천사 집단으로 우러러 보되, 거기에 취업은 막무가내로 안 하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중소기업에 취업하게 되면, 인생 낙오자로 스스로를 낙인찍었다.
    간혹 언행일치한 무서운 자들도 있었다. 학력을 낮추고 위장취업하여 대기업 내부에서 불법노동운동으로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려는 척하면서 대기업 도산을 꾀하던 자들이었다.

    성직자 중에도 그들을 망령되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돕는 자들이 있었다.
    이들 위장취업자와 각종 시위를 기획적으로, 정치공학적으로 주도한 자들이 후에 대부분 권력을 잡고 크게 성공했다. 국회의원, 장관, 시장, 도지사는 이들이 독차지하다시피 했다.

    대한민국에 해를 끼친 것을 가장 자랑스러운 이력으로 내세워
    다름 아닌 대한민국에서 크게 출세한 것이다.

      2012년 중국은 세계 500대 기업에 73개를 올려놓았다. 68개의 일본을 물리쳤다. 한국은 13개!
    그러나 중국은 공산당이 모든 것을 주도하기 때문에 73개 세계 500대 기업 중에서 국영기업이 아닌 것은 단 2개밖에 없다. 국영기업은 사실상 공산당 최고위 간부들이 가족을 내세워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있다.
    현금을 이들보다 많이 보유한 사람이 세계적으로 없다. 해외로 천문학적인 달러를 빼돌린다.

    이에 비해 한국은 세계 500대 기업이 숫자는 적지만 공기업으로 분류될 것은 3개(한전, 우리금융, 가스공사)밖에 없고 나머지는 모두 민영 대기업이다.
    당연히 중국 대기업에는 부정부패가 만연해 있고 회계가 불투명하기 짝이 없지만, 한국 대기업은 세계적 기준에 맞춰져 있다. 특히 대기업이 줄줄이 도산한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대기업은 환골탈태하여 미국을 삼킬 듯하던 일본의 대기업을 추월하거나 바싹 쫓아갔다.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그러나 한국에서는 초등학생만 되어도 대기업 성토하기에 바쁘다. 입으로만 중소기업 찬양하기에 바쁘다.
    쥐꼬리만한 권력을 잡았다 하면 뒤로는 귀신 곡할 솜씨로(손톱으로 까기도 힘든데) 호박씨를 대량으로 까면서(대표적인 자가 박원순) 앞으로는 대기업을 자나 깨나 물고 늘어진다.

      자신도 모르게 오성홍기 이념을 바탕에 깔고, 알고 보면 시장경제가 뭔지 몰랐던 상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이런 이념을 갖고 있었다만, 한국은 지난 20년 간 대기업과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이 함께 발전시키는 게 아니라 대기업에겐 세계에 유례없는 규제를 가하되, 중소기업에는 무려 160가지의 혜택을 부여했다.

    40%가 법인세를 한 푼도 안 내게 해 주었다.
    중소기업에서 제조업 기준 근로자 300인 이상 또는 매출 3년 연속 1500억 원이 되는 순간 조세 제도에서만 32가지가 늘어나고 그 외 장애인고용의무, 보육시설설치의무 등 규제가 25가지 늘어난다.
    그래서 능력이 되어도 중소기업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하는 기업이 83.7%나 되고,
    실지로 자회사를 설립하든지, 외주를 준다든지, 임시 근로자를 고용한다든지 하여, 중견 기업으로 일부러 올라서지 않은 기업이 46.1%나 된다.

    중견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올라서면, 세계 시장으로 뻗어나게 도와주는 장려제도는 하나도 없고 각종 규제가 홍수를 이룬다. 얼마 후 그들은 도산하거나 중견기업 또는 중소기업으로 전락한다.

    무슨 말인가?

      선의의 중소기업 보호육성책이 도리어 한계 중소기업의 시장 퇴출을 가로막아 더 우수한 중소기업이 탄생하지 못하게 가로막고, 중견기업으로 커 가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다.

    게다가 상속세도 무지막지하다. 가업을 상속해도 최고 65%까지 징벌적 세금을 매긴다.
    그럴 바에야 청산하는 게 낫다. 2010년 가업승계로 국세청에 상속세를 낸 기업은 129개로 1305억원을 납부했지만, 2011년에는 불과 12개밖에 안 되는데 상속세는 늘어나서 1478억원을 납부했다.

    한편 세계적 중견기업(미텔슈탄트 Mittelstand)이 가장 많은 독일은 상속세가 거의 없다.
    독일은 또한 한국과는 정반대로 제약이 많은 주식회사 대신
    제약이 적은 유한회사가 압도적으로 많다.

    독일이 경제규모에 비해 주식시장이 작아서 세계적 금융위기를 맞아 선진국 중 가장 피해가 적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일에서는 주식회사가 유한회사의 1.5%밖에 안 되지만, 한국은 거꾸로 유한회사가 주식회사의 4%밖에 안 된다.

  • ▲ 박근혜와 메르켈의 악수. G20정상회의에 참석한 메르켈 독일총리가 이화여대에서 명예박사 학위 받은 날. 201011.13) ⓒ연합뉴스
    ▲ 박근혜와 메르켈의 악수. G20정상회의에 참석한 메르켈 독일총리가 이화여대에서 명예박사 학위 받은 날. 201011.13) ⓒ연합뉴스

      한국에선 기업이 돈 좀 번다 싶으면 정치권력은 세금과 기금과 규제(정부와 여당)나 규탄(야당)으로 옥죄고, 문화권력은 끈질긴 악마 거래의 가능성 제기로 기죽이고, 사회권력은 갖가지 명목의 음성적 기부금 강요로 뒤통수친다.

    한 마디로 말해서 반(反)기업정서를 공사석에서 노골적으로 강도 높게 나타내면 나타낼수록 애국자가 되고 열사가 되고 현인(賢人)이 된다. 잘하면 후에 크게 출세한다.

      다행히도 박근혜 당선인은 가업승계에 대해 세금을 대폭 감면해 주려고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예 이 경우 상속세를 면제해 주기 바란다.

    그러나 불행히도 박 당선인은 전경련 대신 중소기업중앙회를 먼저 방문함으로써 ‘대기업은 악, 중소기업은 선’이라는 정체불명의 이념을, 민통당과 통민당의 공동 당 이념을 정책화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100% 국민행복이 구두선이 아니라면, 그들을 한 자리에 초대하여 친(親)기업정서를 확산시켜야 했다.

      공산국가인 중국의 강택민도 갈파했듯이 기업에 대한 평가의 잣대는 규모가 아니라, 부가가치 창출 여부이다. 흑자 기업은 좋은 기업이고, 적자 기업은 나쁜 기업이다.

    기부금 많이 내는 기업이 좋은 기업이 아니라,
    세금 많이 내고 고용 많이 하는 기업이 좋은 기업이다.

    그것이 기업이 할 수 있는 최대의 기부요 최상의 기여다. 대마불사(too big to die)라고 하지만, 1997년과 1998년 얼마나 많은 대기업이, 특히 국민기업이라고 떠받들리던 대기업일수록 도미노처럼 망했는가.
    대기업의 갑(甲) 은행은 또 얼마나 많이 망했던가.

    대기업의 총수나 대표이사가 아니라 정부의 고위관료가 무소불위의 권력과 조변석개하는 변덕으로 좌지우지했던 절대 안 망한다던 대기업의 갑(甲) 은행은 또 얼마나 줄줄이 망했던가. 그 피해는 누구에게 돌아갔던가. 중소기업이 엄청 혜택 보고 노동자 농민이 일제히 부자가 되었던가.

      1984년 뉴질랜드는 총체적 위기를 맞아 농업보조금을 철폐했다.
    뼈를 깎고 살을 도려내는 농촌 구조조정에 들어간 것이다. 3년간 농촌은 흉흉해졌다.
    그러나 3년 후 농업생산성이 급격히 올라가서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생산성을 초과하기 시작했다.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기 시작했다. 1990년대부터 뉴질랜드의 농업은 전 세계가 찬탄하는 선진 농업으로 변신했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특히 민주주의를 자의적으로 독과점한 정부가 들어서면서 농업과 중소기업에 입막음용, 땜질용 정책 자금을, 혈세를 퍼부었다. 결과는? 농업과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의 경쟁력은 더 떨어졌다. 물고기를 낚는 법이 아니라 징징거릴 때마다 물고기를 던져준 탓이다.

    기술과 경영이라는 간접적 지원으로 성장을 돕는 게 아니라, 자본이라는 직접적 지원과 시혜적 제도라는 온실로 현실에 안주하거나 한계 생명을 연장하게끔 미필적 고의로 조장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 정책이든 대기업 정책이든 나아가 농업 정책이든 서비스업 정책이든,
    한국은 경제정책을 총체적으로 재점검해야 한다.
    제2의 한강의 기적을 바란다면! 땜질식은 더 이상 안 된다.
    정체불명의 이념적 접근은 더 이상 안 된다.
    공산주의식, 사회주의식 또는 봉건주의식 낡은 도덕적 잣대로는 더 이상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