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프렌치의 '동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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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물원 구성원들의 고향은 무척 다양하다. 아프리카에서 온 코끼리부터 북극의 곰, 남극의 펭귄까지 지구 곳곳에 흩어져살던 동물들이 한 공간에 모여 도시 사람들을 만난다.

    멀고먼 여행을 거쳐 동물원 우리에 오기까지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리고 관람객들에게 보여지는 모습 외에 동물원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퓰리처상 수상 경력이 있는 미국 저널리스트 토머스 프렌치가 쓴 논픽션 '동물원'(에이도스 펴냄. 원제 'Zoo Story')은 이러한 물음을 발전시킨 책이다.

    책의 주무대는 샌디에이고에 있는 동물원 로우리 파크. 인간을 동경하는 늠름한 침팬지 허먼, 가족들의 잇단 죽음을 목격하고 살아남은 암컷 수마트라호랑이 엔샬라 등 그곳의 동물들과 그들을 가족처럼, 친구처럼 여기는 사육사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저자가 4년 간의 취재를 통해 쓴 이 책은 '동물원에서 생긴 일'을 있는 그대로 들려주고 있지만 그 안에는 인간과 동물에 대해 묵직하게 생각할 거리들이 꽤 많다.

    로우리 파크의 새 식구인 스와질란드 코끼리들의 이야기도 그렇다.

    스와질란드에서 동물보호구역을 운영하는 레일리 가족은 코끼리 열한 마리를 보잉 747기에 실어 미국으로 보낸다. 늘어가는 코끼리를 모두 데리고 있으려면 나무를 잘라 공간을 확보해야 하는데 그러면 보호구역은 황폐해지고 다른 동물들의 생존도 위협받기 때문이었다.

    코끼리가 넘쳐나 인위적인 도태가 벌어지기도 했던 아프리카였기에 코끼리를 생존시키기 위해서는 동물원에 보내는 것이 최선이었지만 "코끼리를 죄수처럼 동물원에 가두느니 차라리 자유롭게 죽게 놔두는 편이 낫다"는 동물보호단체들의 맹비난 속에 코끼리들의 미국행은 꽤나 복잡하고 논란 많은 작업이 됐다.

    동물들을 자유로운 터전에서 억지로 데리고와 인간들의 구경거리로 전락시킨다며 동물원을 비난하긴 쉽지만 그 자유로운 터전이라는 것이 얼마나 남아있을지 생각하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책 속의 표현대로 동물원이 어려움에 처한 동물들을 구하는 '노아의 방주' 역할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로우리 파크는 이들 야생 코끼리를 들여옴으로써 점차 대형 동물원으로 발돋움한다. 동물원이 커감과 동시에 터줏대감 동물들에게 하나둘씩 비극적인 사고가 생기고 사육사들도 이런저런 갈등으로 동물원을 떠난다.

    거대한 야생동물공원을 꿈꿨던 동물원 CEO 렉스의 영광과 좌절은 동물들의 주도권 다툼과 묘하게 겹친다.

    "동물원 곳곳에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즐거움과 오락을 추구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구가 드러나 있다. 잃어버린 야생성에 대한 인간의 열망, 자연을 찬미하면서도 통제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능. 숲을 초토화시키고 강을 오염시켜 동물들을 멸종위기에 몰아놓으면서도 이들을 사랑하고 보호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가슴 깊은 곳에 자리하는 갈망. 이 모든 것이 포로들의 정원에 전시돼 있다."(47-48쪽)
    동물원이라는 공간의 본질을 깊이 있게 풀어낸 이 책은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숙고하게 만든다. 인간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이는 등장 동물들의 이야기는 픽션 못지않게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