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13명에 전교생 2명...‘우리들학교’ 탈북소녀 최수진(가명)“하나님이 데려다 준 한국에서의 성탄절, 올해 소원은...”
  • 엄마가 앞서 걸었다.
    어둠이 깔린 두만강. 강물은 검게 흐르고 있었다.
    “힘 내.”
    비쩍 마른 몸이지만 두 살 위인 오빠가 남자랍시고 한마디를 했다.
    ‘누가 누구 걱정 하는 거야?’
    사내랍시고 던지는 말이 고맙고 한편 아니꼽기도 했지만 한 마디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
    강은 얼어 있었다.
    무서웠다. 금방이라도 경비군인이 나타나 총부리를 들이댈 것 같았다.
    “가자!”
    남편 잃고 평생 두 남매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온 엄마는 지휘관처럼 짧게 말했다.
    뒤를 돌아봤다.
    어둠 저편으로 두고 온 고향 무산이 있을 것이었다.
    아홉 살에 저 세상으로 떠난 아버지의 넋도 지켜보고 있을 것이었다.
    발밑으로 ‘직직’ 얼음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강을 어떻게 걸었을까? 올해 열 다섯살인 최수진(가명)는 지금 생각해도 무서웠다는 기억 외에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2005년 겨울 북한을 떠나왔다.
    ‘탈북’이라고?
    탈출 맞다. 먹고 살 것이 없었다.
    아버지가 세상을 뜬 뒤 세 모녀는 말 그대로 굶주림이 일상이었다.
    지상낙원이라는 북한은 장군님만의 낙원이었다.
    중국에서 풍문으로 들려오는 남조선 소식은 듣고 보고 배운 것과는 너무 달랐다.
    가끔 구경하는 초코파이는 먹어보진 못했지만 이 세상 음식이 아닌 것처럼 맛있어 보였다.
    그래서 고향 OO을 떠났다. 살기 위해서였다.
    중국에서 머물 때 세 가족은 다른 지방에 따로 떨어져 지냈다.
    혹시 북한 보위부 수색조나 중국 공안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서로 안부도 모른 채 수진이는 지난해 9월 한국으로 왔다. 하나원 교육을 마치고 새 보금자리를 찾았을 때 국정원에서 연락이 왔다.
    오빠도 엄마도 무사히 한국에 왔다는...
    가족들은 탈북 4년 만에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엄마는 주스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한다.
    그리고 조선족인 중국 국적의 새 아버지는 일용직 근로자로 국내에 체류하고 있다.
    오빠 역시 일을 한다.
    수진이는, 열 다섯살 아직 꼬마인 수진이는 공부를 한다.
    서울 봉천동에 자리 잡은 탈북청소년 대안학교인 ‘우리들학교’에 다닌다.
    학교는 관악구 구립 봉천 청소년 독서실에 있다. 독서실의 협조를 받아 건물 1층에 교실이,
    3층에 교무실이 있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우리들학교’는 전교생이 두 명이다.
    수진이 외에 올해 스물 다섯살인 안진영(가명)씨가 ‘우리들학교’ 학생 모두이다.
    지난 2000년 탈북한 OO 출신 안진영씨는 이 학교에서 수진이와 함께 대입 검정시험 공부를 하고 있다. 안씨는 춤을 잘 추는 재주꾼이다. 수업을 마치면 사당동의 조개구이집에서 아르바이트도 한다.
    왜? 하고싶은 일을 하려면 돈이 조금 있어야 할 것 같아서란다.
    그리고 한 마디 덧붙였다.
    “기댈 사람도 없는데 아프기라도 하면 어떻게 해요?”

    윤동주 교감과 열 두명의 자원봉사 교사들이 이 두 명을 가르친다.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이어지는 수업은 진지하기만 하다.
    NIE를 담당한 인지연 교사는 “다른 일반 학교에 가면 모두 상위권에 들 실력”이라고 자랑했다.(후원계좌:국민은행 206001-04-107216 우리들학교 윤동주 교감)

    24일 이 두 명의 전교생과 교사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성탄절 덕담이 이뤄지고 교사와 학생들은 친구들처럼 풍선으로 족구를 하며 즐겁게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했다.
    중국에서도 가정교회를 다니던 수진이에게 물었다.
    “하나님 잘 믿고 있지?”라고.
    순수한 영혼이 때 묻지 않은 대답을 했다. 때론 하나님이 과연 계신지 의심을 하게 된다고.
    맞다. 의심 없는 믿음은 모래 위에 지은 집 같으니까.
    오늘 예배에서 어떤 기도를 할 거냐고 물었다.
    하나님께 기적을 내려달라고 말씀드릴 거란다.
    어떤 기적일까?
    엄마와 아빠가 일이 힘들고 걱정도 많아 술-담배를 많이 하신단다.
    “담배랑 술을 마시면 간이 나빠지잖아요?”
    고개를 끄덕여줬다. 당연한 것도 상대가 어떤 마음으로 말하느냐에 따라 내면의 울림이 달라진다.
    진짜 담배와 술이 몸에 몹시, 아주 나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말려도 잘 안 들으세요. 하나님이 엄마랑 아빠 술-담배 끊게 해주시는 기적을 내려주셨음 좋겠어요.”
    그리곤 한 마디 덧붙였다.
    “그러셔야지 두 분이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 같아요.”
    초롱초롱한 두 눈에 진심이 담겼다.
    하나님! 들으셨죠? 금주-금연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