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 FTA찬성론자였던 孫...민주당 'FTA시험대'에 올라
  • "(나는) 한미 FTA에 대한 적극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2008년.4월)
    "밀실 협상에서 일방적인 양보에 그친 한미 FTA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2010년.11월)

    한미 FTA에 상반된 입장을 가진 사람의 발언이 아니다. 제1야당 민주당 손학규 대표의 입에서 나온 발언이다.

    손 대표는 9일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소집해 한미 FTA 재협상 상황과 관련 "이번 재협상은 미국의 일방적인 요구에 의해 양보한 굴욕적인 재협상, 마이너스 재협상"이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손 대표는 더 나아가 "대한민국은 자동차 시장을 더 열어주고 미국의 자동차 시장은 더 닫는 미국의 일방적인 요구에 끌려 다니고 있다"며 "쇠고기 문제에 대해서는 애매한 입장을 보이면서 마치 쇠고기 수입 시장을 우리가 지켜낸 것처럼 속임수를 쓰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빅딜' '가증스러운 사기극' 등 격한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 ▲ 손학규 민주당 대표
    ▲ 손학규 민주당 대표

    그의 발언이 끝난 후 옆자리에 앉아있던 다른 지도부들도 "미국의 강력한 요구에 의해 우리가 두 번씩이나 양보한 것은 국가적 자존심과 국민적 자존심을 버린 것"(정세균 최고위원), "절대 한미 FTA에 동의할 수 없다"(조배숙 최고위원) 등 거들고 나섰다.

    FTA는 지난 2007년 대선 당시 여야 후보군의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렸던 문제였다. 그중에서도 손 대표는 한미 FTA에 가장 적극적 찬성 입장을 보인 사람이었다.

    당시 손 대표는 "한미 FTA는 의지를 갖고 추진해야 한다. 일부 피해가 불가피하다면 당사자에게 국가가 보상해야 한다"는 분명한 입장을 고수했었다.

    다른 주자들이 가장 민감해 하는 농업 분야에 대해서는 '피해 보상'까지 거론했던 그였다. 또 "한미 FTA 체결로 한국이 동북아 무역 허브로 떠올라야 한다"는 야심찬 구상을 선보이며, 농촌 지역의 표심 반발에 대해선 "원칙의 문제"라며 특유의 실용주의적 정치수완으로 정면돌파를 시도했었다.

    2년 전 통합민주당 대표시절 당시, 한미간 쇠고기 수입협상과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에 동시 대응해야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도 곤혹스러움은 내비쳤으나 FTA에 대해선 '적극론자'라며 입장을 굳히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곤 "아직도 한미 FTA 찬성이 당 정체성에 위배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FTA를 무서워할 이유가 없다. 미국과의 통상력을 높이고 세계와 경쟁하는 모습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고 설파하기도 했다.

  • ▲ 손학규 민주당 대표

    2010년 10월3일 취임 이후, 손 대표는 줄곧 'FTA시험대'를 피하는 방법을 택했었다. 당장 입장표명은 유보한 채 "한미 FTA를 어떻게 볼지 전면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만 언급했다. 추가 협의 내용이 미국에 양보한 측면이 크다고 판단될 경우 비준 반대로 선회할 가능성이 있다는 방향으로 점차 기우는 모양새를 보인 것이다.

    '한나라당' 출신의 외래종이라는 '정체성'도 그에겐 부담이었다. 전당대회 차점으로 최고위원에 선출된 정동영 최고위원 측을 비롯한 야당 중진급이 대거 한미 FTA 전면 재협상론에 불을 붙이고 있고, FTA를 고리로 '손학규 정체성'을 시험대에 올려놓고 저울질 하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그는 즉각적인 견해 표명 대신 '여론수렴을 위한 당내 특위 구성'이란 우회로를 선택한 바 있다.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점차 '기존 민주당 계파에 휩쓸리는 모양'을 연출한 것이다. 이는 내부충돌의 위험부담을 의식해 주요현안에 대한 입장 도출을 미뤄 차기 대선고지에서 적 만들기를 최소화하려는 것으로도 읽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 대표는 취임 이후 4대강 사업과 한미 FTA재개정 여부, 야권의 통합과 연대 등 리더로서 잇단 시험대에 올랐으나 리더십과 뚜렷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근엔 자당 강기정 의원이 '영부인 몸통설'로 정치권에 일대 파문을 일으킨 가운데 이에 대한 언급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아 당 안팎에서 '민감한 문제엔 몸을 사리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이날 기자와 만난 구민주계 인사는 "손 대표가 잃을 게 두려워 현안에 대해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는데 자신이 왜 한나라당을 버리고 왔는지 자문해봐야 할 것"이라며 "더 큰 지도자를 꿈꾼다면 자신의 '원칙'에 중심을 잡길 바란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