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민노당 논란서 좌파전체로 확산, 열흘 넘게 논쟁이념 논객들 가담 "친북? 종북?" 싸움...자리찾기 티격태격황장엽 현충원 안장에 '찬성' 다수...좌파 지지층 엇갈려
  • 황장엽 前노동당 비서의 국립현충원 안장에 반대하는 좌파 진영이 김정은의 권력세습을 놓고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다. 이 논쟁은 유럽식 사회주의를 따르는 좌파와 종북(從北)좌파 간의 싸움인 탓에 그들의 지지층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주목된다.

    경향신문 vs. 민노당

    이 논쟁은 지난 9월 28일 민노당이 “北권력세습은 그들이 결정할 문제”라는 논평을 내자 10월 1일 <경향신문>이 ‘민노당은 北의 3대 세습을 인정하겠다는 것인가’라는 사설을 내면서부터 시작됐다.

    <경향신문>은 사설을 통해 “북한의 3대 세습은 민주주의는 물론, 사회주의와 아무런 인연이 없다. 북한의 가족 통치는 사회주의 이념을 배반하고, 사회주의적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라며 “그런 결정을 한 김정일 정권의 문제를 올바로 인식하고 바로 잡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한반도 민중의 고통을 덜기 위해 헌신해온 진보세력의 과제”라고 주장했다.

    <경향신문>사설은 “그런데 민노당이 북한은 무조건 감싸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냉전적 사고의 잔재”라며 “민노당이 입장을 바꿔 진보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이에 민노당 울산광역시당(김창현 위원장)은 ‘경향신문 절독’을 선언하면서 <경향신문>과 해당 논설위원을 맹비난했다. 민노당 울산광역시당은 <경향신문>에 보낸 통지문에서 “민노당은 논평에서 ‘북한 후계구도와 관련하여 우리 국민 눈높이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 하더라도 북한 문제는 북한이 결정할 문제라고 보는 것이 남북 관계를 위해서도 바람직할 것’이라고 적시했다”며 “경향신문은 민노당에게 북한 3대 세습을 비판할 것을 종용하고, 이를 비판하지 않는다고 북한 추종세력, 종북(從北)의 딱지를 붙이고 있다”고 반발했다.

    좌파진영의 계륵으로 전락한 김정일 일가

  • ▲ 지난 10일 열린 북한노동창 창건 기념일 열병식에서 웃고 있는 김정은.(자료사진)
    ▲ 지난 10일 열린 북한노동창 창건 기념일 열병식에서 웃고 있는 김정은.(자료사진)

    이 논쟁은 손호철 서강대 정외과 교수 등이 가세하면서 <경향신문>과 민노당 간의 논쟁을 넘어 좌파 진영 내부 전체로 확산됐다. 손 교수는 <프레시안>에 기고한 ‘김정일의 유명환 구출작전을 바라보며’라는 시론을 통해 “남한 진보는 北권력세습을 비판하라”고 주장했다.

    손 교수는 시론에서 “북한의 시대착오적 선택에 대해 진보진영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전혀 없다. 답답한 일이다. 그렇다고 진보진영이 팔짱을 끼고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최소한 낯부끄러운 3대 세습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적 시선이 진보진영에까지 확산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유명환에 대해 거품을 품으며 비판을 하면서도 그보다 백배는 더한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한반도 정세를 고려할 때 불가피하다는 식으로 옹호하는 이중 잣대를 벗어나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해 확실하게 비판적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와의 논쟁 이후 한동안 인터넷에서는 볼 수 없었던 진중권 씨도 여기에 끼어들었다. 이정희 민노당 대표가 <경향신문>과 민노당 간의 논쟁에 대해 “북한의 권력세습은 내부의 결정에 맡겨야 한다”는 요지의 논평을 낸 뒤였다.

    진중권 씨는 지난 9일 자신의 트위터에 ‘이정희 대표의 변명을 읽고’라는 글에서 “외교적 관계를 위해 체제 비판을 삼가자는 것은 오류”라며 “외교는 외교, 비판은 비판, 비판하면서 외교할 수 있다. 더구나 민노당은 외교부나 통일부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진씨는 이 대표의 ‘비판 강요는 국가보안법 법정의 논리’라는 주장에 대해 “누구도 한 개인에게 자신의 양심을 털어 놓으라 강요할 권리는 없다”면서 “다만, 공당에게 그런 자유는 없다”고 민노당의 종북적 태도를 비판했다.

    진 씨는 이어 “공당은 대중에게 자신들의 정치적 목표와 이념적 성향을 분명하게 밝힐 의무가 있다. 왜? 표를 달라고 하니까. 그게 싫으면 정당 하지 말고 그냥 개인으로 남든지…. 한 마디로 이 대표의 논리는 허접하다. 아마 본인도 자기 말을 안 믿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진 씨 외에도 역사학자라는 김기협 씨, 신 율 명지대 교수, 시사평론가 유창선 씨, 참여연대 등도 이 논쟁에 끼어들어 갑론을박하고 있다. 심지어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도 거들었다.

    박지원 대표는 “북한 권력세습은 북한 시각에서 봐야 한다”는 요지의 발언으로 김정일 일가를 두둔했다. 이처럼 민노당과 민주당 등 북한 체제에 우호적인 세력과 진중권 씨 등 진보신당 당원들이 대거 논쟁에 가세하면서 김정일 일가의 3대 세습을 놓고 좌파 진영 전체가 들끓고 있다.

    황장엽 前비서 현충원 안장에 좌파 단체와 지지층 의견 엇갈려
     
    하지만 이들 모두 황장엽 前비서의 국립 현충원 안장 문제에 관해서는 똑같은 논리를 펴고 있다. 진중권 씨는 ‘주체사상을 만든 장본인인데다 공개 전향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세균 민주당 최고위원은 ‘대한민국 정체성에 혼란을 줄 수 있고, 오늘날 북한 현실에 책임이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러나 이들의 지지층은 다르게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가 지난 12일 전국 700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황장엽 前비서의 국립현충원 안장 찬반’에 대해 전화로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7%)를 실시한 결과 현충원 안장에 찬성하는 이가 40.6%로 반대하는 이 36.3%에 비해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한나라당 지지층은 57%, 자유선진당 지지층은 52%, 민노당 지지층도 31.1%(반대 29%)가 황 前비서의 국립현충원 안장을 지지했다. 반대 응답이 많은 정당은 민주당이 유일했다(찬성 31.7%, 반대 37.3%). 연령대로 보면 황 前비서와 주체사상을 잘 모르는 20~30대는 반대가 더 많았으나(20대 57.7%, 30대 45.1% 반대) 40대 이상에서는 찬성이 많았다(40대 45.5% 찬성 36.0% 반대, 50대 이상 50.6% 찬성 19.9% 반대).

    이 같은 여론조사 결과로 미루어 보면, 북한의 권력 세습, 안보위협 등에 대해 지난 10년 간 좌파 단체의 전통적 지지층이었던 40대 이상은 오히려 그들에게 등을 돌리고, 언제든 의견을 뒤집을 수 있는 2030세대들만이 그들의 의견에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돼 좌파 진영의 지지 기반이 사실상 크게 약화되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