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백번 이야기 해주고 여러 군데 무던히 섰다고도 생각했는데 아직도 “과거에 그렇게 좌파에서 싸우던 류근일이 왜 우파가 됐느냐?”는 질문을 듣는다 오늘 저녁 밥을 함께 먹은 자리에서도.
    콤뮤니케이션이란 참 이렇게 어렵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끼는 계기들이다. 오늘의 질문자는 중간에서 약간 왼쪽으로 기웃둥 해 있는 ‘건실한’ 진보주의자였다. ‘건실하다’는 것은 종북(從北)적이 아닌 진보라는 뜻이다. 나는 다소 의견의 차이는 있을 수 있더라도 종북주의자만 아니라면 그런 진보파와는 얼마든지 대화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나는 그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처음부터 극좌로 가 본 적이 없다. 사회민주주의 정도까지만 가보았다. 그것도 자유주의적 체질을 완전히 끊어버리지 못한 상태에서 볼세비키(마르크스, 레닌, 스탈린)와는 분명히 적대적인 위치에 서있던 독일 우파 사회민주당의 베른슈타인 정도의 노선에 접근해 보았을 뿐이다. 
     그런 입장은 파시즘, 군국주의 우익독재, 우익전체주의에 대해서도 당연히 반대 했고, 민주화 후에는 김일성-김정일과 그 추종자들의 극좌 전체주의, 1인 수령 독재, 인권유린, 개혁 거부, 개방 거부, ‘남조선 혁명론’에 대해서도 당연히 반대 했다. 그래야 앞뒤가 맞는 것 아니겠는가?.
    더군다나 나는 나이를 먹으면서 사회민주주의도 한계에 부딪혀 점차 시장경제로 우경화 하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나는 아예 자유주의자 본래의 적성(適性)으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개인을 중시하는 자유주의가 타고 난 내 체질에 더 맞는 것임을 재확인 한 셈이다. 대한민국의 성취에 대해서도 젊었을 때와 달리 적극적인 긍정의 평가로 바뀌어 갔다. 남과 북을 잠시 비교만 해봐도 그건 너무나도 쉬운 변화였다. 
    이에 대한 그 분의 대답은 이런 것이었다. “친북은 쇠퇴하고 있다. 친북좌파는 없다. 진보진영도 구태를 털어내고 있다. 그런 걸 모르고 구태(舊態)의 좌익관(觀)으로 변화하는 좌파를 재단하면 안 된다” 

    나의 대답은 또 이랬다. “정말 그렇게 변하고 있다면 환영한다. 문제는 경제 복지 세금 정책 따위가 아니라 김정일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대북정책의 문제다. 진보도 당연히 김정일의 인권유린을 까야 한다. 일부는 또 반미를 하는 데, 우리는 국익상 당연히 용미(用美)를 해야 한다. 일부 역사교과서는 대한민국이 분단의 원흉이라고 단정한다. 나는 거기에 반대한다. 주요 좌파단체들의 헤게모니는 지금 그런 NL 부류의 손으로 넘어가 있지 않은가? 나는 이런 걸 우려하는 것이다.”
    토론은 ‘히레 정종’ 한 잔의 취기 속으로 사그라 들었다. 그 분은 분명히 종북주의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나처럼 왕년에 권위주의에 그토록 처절하게 저항하고 깨졌던 사람이 오죽했으면 “이건 아니다” 하고 ‘김일성+김정일+남쪽의 그 똘마니’들의 홍위병 난동에 대해 이토록 목숨 걸고 싸우게 됐느냐 하는 데 대해서는, 그리고 거기엔 필시 그럴 만한 절실하고도 충분한 이유가 있었을 것 아니냐 하는 데 대해서는 역시 이해가 잘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권위주의와 극좌의 틈바구니에서 민주주의적이고 계몽된 보수주의, 진취적 자유주의, 온건 진보주의의 위상을 추구하던 지난 반세기 동안의 이 땅의 지성들이 이쪽 저쪽에서 겪었을 혹독한 따돌림, 소수파의 비애, 핍박, 25시적 상황, ‘군중속의 고독’.....그 모든 기구한 세월의 풍상이 새삼 가슴을 저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