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끔찍한 상상을 한번 해보자.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 내실에서 자살을 했다 치자. 권총자살이었다. 누구도 짐작 못하고 저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갑작스레 벌어진 일이었다. 총기 및 탄약을 어떻게 입수했는지 밝혀진 바 없다. 하지만 대통령이었기에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사인은 지난해 촛불시위 당시 시작된 우울증 증세였다. “고소영” 인사파문이며 대운하 사업 반대며 처음부터 무엇 하나 제대로 풀리는 일이 없었다. 양질의 값싼 미국 쇠고기를 국민들에게 제공한다는 나름의 선의가 광우병괴담으로 와전되어 국민저항을 불러일으킨 일은 그에게 극심한 분노와 허탈감을 수반했다. 당시 청와대 뒷산에서 명박산성 너머 시위대의 아침이슬 노래를 들으며, 대학시절 민주화운동으로 옥고까지 치렀던 자신이 어쩌다 타도의 대상으로 몰렸는지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쉽게 생각한 미디어 관계법 개정 역시 야당과 방송노조의 “MB악법”이라는 선전전에 밀려 파행에 파행을 거듭했다. “2MB”까지는 참을 만 했는데 “쥐박이”라는 조롱의 모멸감은 견디기 어려웠다.

    특히 결정적인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었다. 모든 비난의 화살은 결국 그에게 집중되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조문행렬, 하루아침에 180도 논조를 바꾼 미디어들이 쏟아내는 비판은 그의 가슴을 짓눌렀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참석했던 영결식에서 조차 봉변을 당했다. 국민장이 끝나자 하루가 멀다 하고 시국선언이 이어졌다. 생각만 해도 속이 울렁거리는 서울광장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마지막 순간엔 측근들의 시선조차 비정하게 느껴졌다.

    ****************

    전직대통령의 자살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발생한 현직 대통령의 자살이란 전대미문의 비보에 온 국가가 말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충격에 누구도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저 하얗게 굳어졌을 뿐이다.

    충격 뒤에 오는 것은 끓어오르는 슬픔이었다. 비통함이 온 나라를 덮었다. 신문과 방송이 가난과 고통으로 점철됐던 그의 성장기, 입지전적 기업인으로 성공하기까지의 일화들, 정치참여이후의 역경, 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된 과정, 그리고 집권이후의 파란과 좌절을 보도했다.

    재임시절 정책에 대한 재평가도 이루어졌다. 시국과 여론의 격변에 대한 답답할 만큼의 무딘 대응은 정치를 배격하고 정책을 고수한 일관성 있는 원칙주의로 재해석되었다. 주택, 교육, 경기부양 및 고용 측면에서 규제의 대못들을 빼냄으로써 효율성과 형평성이 오히려 증진되었음이 실증적 자료들과 함께 밝혀졌다. 세계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등 다자간 국제외교무대에서 그리고 미국, 일본. 스탄 공화국들과의 일대일 외교를 통해 실리적 국익을 추구하던 그의 면모들이 부각되었다. 전세계를 공황위기로 몰아넣은 미국 발 경제위기속에서 우리의 경기가 그 어느 선진 국가보다도 빠른 회복기미를 보였고, 북핵 위기도 UN안보리의 대북제재안 만장일치 통과 등 국제적 공조를 통해 적절히 대응해 가고 있었다는 평가가 내려졌다.

    동시에 사람들의 가슴을 가득 메운 건 절망감 그리고 차가운 분노였다. 누가 우리의 대통령을 죽음에 까지 이르게 했는가...  영결식은 침묵 속에 차분히 거행되었다. 영구차가 지나가는 길가를 따라 분노에 찬 눈길들, 붉게 달아오른 얼굴들이 비추어지기는 했지만 국장에는 거리와 광장을 가득채운 인파도, 노제도, 통곡소리도, 운동가요도, 만장도 없었다. 그것은 이벤트성 한풀이로 표출되거나 씻겨 질 수 있는 분노가 아니었다. 그것은 더 이상의 인내와 공존을 거부하는 차가운 결기, 이를 악문 복수심과도 같은 것이었다.

    일단 분노가 표출되기 시작하자 그 양상은 전례 없이 격렬했다. 일차적 표적은 이대통령과 그의 정책을 사사건건 반대하던 야당, 진보적 정치집단, 미디어들이었다. 하지만 이내 이념과 정치적 노선을 달리하는 사람들 간의 대립과 갈등 양상으로 번졌다. 공격하는 자들도 그 대상이 된 자들도 한 치의 양보 없이 맹렬히 맞섰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신문, 방송, 인터넷에서, 그리고 광장에서 대립과 반목, 갈등, 몸싸움이 벌어졌다. 온 나라가 허탈감과 분노, 절망과 저주가 판치는 혼란 상태로 빠져들었다. 말에 말, 행동에 행동, 복수에 복수가 이어졌다. 걷잡을 수 없는 나락 그 자체였다. 실질적 내전이었다.

    *****************
    이상의 상상은 물론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일,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러나 노무현 전대통령의 자살은 이처럼 있을 수 없는 끔찍한 사태를, 개연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는 가능할 수도 있는 일로 만들었다. 지난 몇 주간 우리는 마른하늘의 날벼락 같은 직전 대통령의 자살이 초래한 사회적 혼란을 열병에 헐떡이는 아이처럼 온몸으로 고통스레 치러내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이후 그 일차적인 가해자로 검찰과 언론이 도마 위에 올랐다. 잘못된 수사와 보도 관행이 있었다면 가릴 것은 분명히 가려야 할 것이다. 하지만 노 전대통령의 죽음 자체, 더 나아가 그로 인한 사회적 갈등과 혼란의 책임 자체를 검찰과 언론의 책임으로 돌린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이 사회의 으뜸가는 공인 중 한 사람인 노 전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은 아무런 일 없이도 관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는 얼마 전까지 한 국가의 모든 주요 행위를 기획, 조절, 통제하는 중심축이었다. 퇴임이후에도 그의 귀거래사(歸去來辭)적인 삶의 일거수일투족이 하나의 정치적 코드이면서 피할 수 없는 뉴스거리였다. 박연차 게이트가 터지고 그의 정치적 수하들과 가족들이 그로부터 정당하지 않은 돈을 받은 것이 속속 밝혀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온통 검찰수사에 쏠린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금번 검찰의 수사, 언론의 보도와 비판은 매몰찼다. 하지만 검찰 수사와 언론보도는 원래 그러하고, 또 그래야 하는 법이다. 수사대상이나 보도대상이 혹여 극단적인 행동을 취할지 몰라 사정을 보아주거나 위축된 검찰과 언론이 무슨 존재 의미가 있는가? 특히 전국민의 관심이 쏠린 권력형 부패사건이라면 더욱 그럴 수 없다할 것이다.

    그의 죽음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수많은 삶을 이끄는 이였기 때문에 살았어야 했다. 도덕성에 상처입고 만신창이가 되었어도 정당한 속죄과정을 거쳐 함께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살았어야 했다. 검찰수사에 편향성이 있고 언론이 편파적이었다면, 그리고 만에 하나 살아있는 권력이 뒤에 있었다면 재판과정을 통해 법리적으로 시시비비를 가리고, 제도적으로 문제들을 바로 잡고, 정치적으로 배후를 밝히기 위해서라도 살았어야 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그의 죽음이 초래할 크나큰 충격과 사회적 혼란을 돌아봐서라도 살았어야 했다. 일국의 대통령이었던 공인으로써 아무리 힘들어도 끝까지 살아야 하는 무한 책임을 수행했어야 했다.

    금번 검찰수사와 언론의 보도는 그가 끝까지 살아야 할 존재라는 이 같은 대전제 하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비록 노무현 전 대통령이 현직에 있을 때 극단적 언사와 행동을 일삼기는 했지만 그래도 일국의 대통령이었던 사람이 이 정도 시련에 죽음을 택하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않은 가운데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가정은 너무도 온당한 것이었다.

    그의 죽음을 진정 안타까운 마음으로 애도하면서도 그의 죽음이 너무도 허망하고 무책임한 일이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우리는 과연 금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로 초래된 극심한 사회분열을 치유하고 사회적 건강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 대답은 회의적이다. 비록 표면적으로 이일이 덮어질지라도 우리의 속 상태는 결코 예전과 같아질 수 없을 것이다. 사분오열된 이념적 갈등의 골은 한층 더 깊어지고 정치적 신뢰와 관용은 위축되어 작은 일에도 번번이 심각한 사회갈등이 초래될 것이다. 권력을 감시하고 부정을 척결하는 검찰과 언론은 불가피하게 그 예봉이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선동의 정치, 극단의 정치가 한층 기승을 부릴 것이다. 그리고 국민들은 우리 사회를 지도하는 정치 지도자들이 한계상황에 몰렸을 때 끝까지 책임을 수행하기 보다는 차마 말할 수없는 참담한 행위를 선택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진정으로 우려하고 바르게 지적하기는커녕, 오히려 슬픔을 자극하고 선동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행태는 손톱만큼의 분별과 지각, 책임의식이 있는 집단이라면 결코 행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이 사회에 대해, 그리고 자라나는 우리의 어린 삶들에게 최소한의 책임의식이 있다면 말이다. 우후죽순 시국선언을 발표하고 서울광장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이들, 갈등과 상처로 터지기 일보직전인 현재의 정치적 상황에 민주주의의 후퇴, 독재정권타도 운운하며 도리어 불을 지르는 이들은 준열하게 스스로를 돌아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