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쇄신'문제로 한나라당은 갈라졌다. 친이·친박은 물론 수도권·영남, 소장·노장파도 갈렸다. 당·정·청 쇄신이 결국 인적쇄신으로 귀결되면서 계파·지역·연령별로 쇄신을 보는 시각의 차이가 뚜렷해졌다. 각자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4일 경기도 과천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열린 국회의원 연찬회에서는 '쇄신'을 두고 끝장토론을 벌였으나 연찬회 뒤 해법을 찾기는 더 어려워졌다. 서로간 입장차가 크고 분명하며, 양보하기 어렵다는 것을 명확히 확인한 자리였다. 47명의 의원이 발언했고 토론시간만 390분이 넘었다. 지도부는 당초 계획했던 분임토의도 취소하고 자유토론으로 바꿨다.

    쟁점은 현 지도부 교체 여부다. 계파별로는 친이계, 지역으로는 수도권, 연령별로는 소장그룹이 지도부 교체를 강력히 주장한다. 특히 이재오계 목소리가 크다. 이들은 민심수습없이 지금같은 체제로 당·정·청이 움직이면 10월에 있을 재보선은 물론,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할 것이란 주장을 한다. 구체적 방법론으로 현 지도부 교체와 전당대회 개최를 제시했다. 이 경우 청와대와 정부에 변화를 요구할 명분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강력한 쇄신을 주문하고 있는 권택기 의원은 "결국 민심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라며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될 것으로 전망했다. 남경필 심재철 정태근 전여옥 임해규 차명진 김성태 김용태 손숙미 정옥김 진성호 의원 등이 이런 주장을 했는데 친이·수도권·소장그룹이다. 민심 변화에 가장 민감할 수밖에 없는 수도권 출신 의원들이 지금 상황에 더 다급해 하는 모습이다. 10월에 있을 재선거 역시 수도권이 많아 이들이 느끼는 위기감이 상대적으로 더 클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이들은 전당대회를 할 경우 박근혜 진영이 당을 맡아 양 진영의 화합을 만들자는 방법론도 제시하고 있다. 비공개로 진행된 자유토론에서 "MB가 대통령이 됐으니 당은 박근혜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게 적절하지 않느냐"는 발언을 한 의원도 있다고 조윤선 대변인은 전했다. 쇄신 명분도 "화합을 위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친박계, 영남, 노장그룹은 지도부 교체와 전당대회 개최에 부정적이다. 현 위기 근본원인이 이 대통령의 잘못된 국정운영기조에 있다고 보고 청와대와 정부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친박계인 이성헌 의원은 "민심이 떠나간 것은 현 지도부 잘못이 아니라 공천 잘못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사람을 바꾼다고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조 대변인이 전했다. 이 의원은 "누가 대표가 돼도 달라지지 않는다"고도 했다.

    유정복 이정현 이종혁 의원 등이 이런 주장을 했는데 이들은 "이 대통령 국정운영 기조가 바뀌지 않으면 당 지도부가 아무리 많이 바뀐다 해도 민심을 회복할 가능성은 적다. 지지율 하락 책임이 당·정·청 모두에 있지만 지도부 사퇴 이전에 국정운영 기조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박 전 대표의 마지막 비서실장을 지낸 유 의원은 "열린우리당이 의장을 8번이나 바꿨지만 본질적 변화가 없었기 때문에 선거에서 졌음을 주목해야 한다"면서 "일시적 국면전환 카드로 전당대회를 활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당이 민심수습을 위해 할 일은 천막당사 시절 개혁정신과 노력이 필요하고 17대 국회에서 당 혁신위원회가 만든 현 당헌·당규부터 잘 지켜지고 있는지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상 박 전 대표의 메시지라 할 수 있다. 영남권 의원들과 노장그룹도 "박희태가 김희태가 된다고 달라지겠느냐" "대안이 없는 데 바꾸면 뭐가 달라지겠느냐. 더 혼란만 올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대통령 의중도 중요 변수인데 현 지도부 교체에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날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이 대통령 발언이 보도되면서다.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한나라당 등에서 쇄신 얘기가 많은데 국면 전환용으로 인사를 하는 것은 3김시대 유산이다. 국민에게 이벤트나 쇼로 비칠 개각은 하지 않는 게 좋다"며 당 쇄신요구에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래서 당에선 "이명박 박근혜가 반대하는데 되겠느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친이계 한 초선 의원은 "이번에야말로 이명박 박근혜가 맞는 거 아니야"라고 농을 던지기도 했다.

    쇄신특위(위원장 원희룡)는 지도부 교체 요구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활동을 중단하기로 해 박희태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가 어떤 판단을 내릴 지 주목된다. 정두언 의원은 지도부 교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당은 몰락의 길로 가는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