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박건길 ⓒ월간조선
    ▲ 박건길 ⓒ월간조선

    구 소련 등 핵과학자 32명이 1991년부터 북한에 귀화해 원폭 제조기술을 전수했다는 충격증언이 나왔다.

    월간조선 5월호는 대남공작부서인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35호실’에서 근무한 북한 고위공작원 박건길(68)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같은 사실을 보도했다. 1941년 일본에서 태어난 박씨는 1960년 북송돼 김책공대 졸업했다. 양강도체신관리국통신연구실실장과 평양전자공학연구소 연구사, 양강도통신기계공장 지배인을 역임한 그는 사회안전성국토관리총국 오석산무역회사 부사장과 조선노동당중앙위원회35호실 해외공작원으로 활동했다.

    박씨는 1998년 탈북했다. 한국에서 북한으로 삐라를 날리는 등 북한 민주화운동을 펼치고 있는 박상학씨가 그의 친아들이다.

    지난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박씨는 북한 무선통신 분야에서 손꼽히는 최고 전문가. 그가 북한에서 집필한 <텔레비죤 중계기>(1979년 평양공업출판사), <초단파공학>(1981년 평양공업출판사)은 김책공대의 교과서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박씨는 1995년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35호실에 특채됐다. 35호실은 대외정보조사부의 후신으로, 북한 내 최고 대남공작부서. 대남·해외정보를 수집하고 각종 테러, 해외간첩공작 수행 등이 주요 업무다. 박씨는 1987년 대한항공 858기 공중폭파 사건, 신상옥-최은희 부부 납치사건 등을 35호실의 대표적인 활동 사례로 꼽았다.

    박건길씨는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구 소련 과학자들이 1991년부터 북한에 들어가기 시작했고. 1993년까지 모두 32명이 북한으로 들어갔는데 이들은 가족과 함께 이주했으며 매달 3000달러의 월급을 받았다”고 말했다. 박씨는 “북한이 구 소련에서 500달러도 안 되는 월급을 받던 과학자들을 핵 개발 목적으로 유치해온 것”이라고 증언했다.

    구 소련·파키스탄·이란 출신인 이들 과학자들은 평양 유경호텔 뒤 고급 맨션에 모여 살며 파키스탄은 원자력 관련 기술을, 구 소련 과학자들은 원자폭탄 제조기술을 전수해 줬다고 박씨는 밝혔다.

    박씨는 또 “대포동 미사일은 100% 일본제 부품 사용하고 부품들은 만경봉호를 통해 북한에 들여왔다”며 “북한의 주요 군사 요충지에는 폭약을 넣은 돌무덤 120여 곳 설치해 적이 접근하면 원격장치로 폭파하도록 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또 “북한은 1974년부터 위조달러를 사용했는데 위조달러는 작전부 주도하에 체신부 우표인쇄소에서 제조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1997년 황장엽씨가 망명을 했을 때 북의 지시를 받은 저격수들이 차량 50대에 나눠 타고 베이징 한국영사관을 포위하기도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