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예술종합학교(총장 황지우, 이하 한예종)가 지난 2007년 12월 미래교육준비단(단장 심광현 교수)을 구성하여 2008년 3월부터 시행한 '2008 U-AT 통섭교육사업' 관련 부실 의혹이 커지고 있다. 

    지난 2007년 확보한 총 180억원의 예산 중 2008년분 35억 5,000만원을 사용한 이 사업은 2010년 통섭원 개원이라는 야심찬 목표를 세웠지만 현재 예산부족을 이유로 진행이 중단된 상태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의 지시로 2009년 예산 32억 6,200만원 전액이 삭감되었기 때문이다. 

    유 장관은 지난 해 문화부 소속기관 확대기관장회의에서 "한예종은 통섭교육을 하지 말고, 기초 예술만 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고, 담당사무관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007년부터 카이스트에 CT대학원 건립도 검토하면서 통섭교육이 중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어서 우선 중단시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통섭원이 한예종 성격에 맞지 않다고 판단, 예산지원이 중단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예산 삭감에도 불구하고 기존 진행된 사업에 대한 부실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본지가 20일 확인한 바에 따르면 동 사업은 '유비쿼터스' 교육사업임에도 불구하고 해당 웹사이트가 현재 사실상 폐쇄되어 있는 상황이다. 적지않은 예산이 투입된 사업이지만 한예종 홈페이지에서 이와 관련된 내용이나 링크를 찾아볼 수 없다. 담당자에게 문의하여 확인한 결과 두 개의 웹사이트가 운영되었으나 사업규모에 비교할 때 그 내용은 대단히 미흡하다. 

    작년 10월 8일부터 11일까지 한예종에서 열린 'AT(Arts and Technology) 국제심포지엄' 조직위원회(공동조직위원장 양현승 한국과학기술원 교수, 심광현 한예종 교수) 홈페이지(http://www.isat2008.or.kr)에는 심포지엄 일정, 조직, 강사소개, 강의개요 등 대단히 기초적인 내용들만 담겨있으며, 각 랩별 사업계획이나 성과물과 관련된 부분은 찾아볼 수 없다. 

    특히, 'AT 미디어 교육 랩'이 만든 홈페이지(청소년영상창작워크숍: http://labs.knua.ac.kr/~youth/drupal)는 개인 게시판 수준으로 부실하게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이 랩의 성과물에는 교재·DVD 제작, 최종보고 주제별 연구 2편, 자료집 1, 하드웨어 제작 1, 프로그래밍 1, 웹 솔루션 2 등이 망라되어 있지만 현재 외부에서 볼 수 있는 자료는 이 솔루션 사이트 하나에 불과했다. 이 조차도 도메인은 한예종의 서브도메인을 사용하고 있으며, 게시물 상당수는 동영상에 관한 단순한 이미지 모음이다. 

    인터넷 솔루션 전문업체의 한 대표는 "이 사이트는 수작업으로 하루만 작업하면 만들 수 있는 수준"이라며 "최소한 동영상 전문 사이트인 유튜브닷컴이나 판도라TV만 하더라도 수억원 대면 충분히 만들 수 있는데 억대의 예산이 투입된 사업의 대표 사이트가 왜 이렇게 부실하게 되었는지 의문"이라며 부실운영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한예종 담당자는 "2009년 배정예산으로 웹사이트를 전면 보완·확충할 계획이었으나 예산이 전액 삭감되었기에 재원이 없어 사실상 폐쇄시킨 것"이라고 해명했다. 2008년 예산만 갖고도 기본적인 데이타와 기능은 구현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해당 담당자는 "초기단계에 웹사이트가 할 수 있는 역할이라는 것이 홍보 및 기초 데이타 정리 밖에는 없는 것 아니냐"며 "사업추진 1년만에 괄목할만한 성과를 웹사이트를 통해 구현하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라고 일축했다. 

    사업의 대표적 성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 출판물 관리에 있어서도 상당한 허점이 드러나고 있다. 사업 최종 결과보고서 '2장 전체사업 성과개요'에 따르면 2008년 5월과 12월에 각각 한 권씩 총 2권의 총서가 발간된 것으로 명기되어 있다. 그러나, 본지가 확인한 결과 '컴퓨터 예술의 탄생'(진중권 편저, 휴머니스트)만 작년 5월에 출간되었을 뿐 'ISAT 인터뷰'(진중권 역, 휴머니스트 출간 예정)는 현재까지도 출간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최종 결과보고서 내용에 허위사실이 담겨있는 셈이다. 

    이와 관련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예산 전액삭감이라는 뜻하지 않는 상황 때문에 불가피하게 출간 일정이 지연되고 있다. 원고 정리가 거의 끝나가기 때문에 오는 4월말이나 5월초에 책이 나올 것"이라고 답변했다. 그러면서도 "관료들의 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져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것도 출간 일정이 지연된 중요한 이유"라고 주장했다. 진 교수는 구체적으로 무리한 스케쥴링, 성과지상주의에 따른 부작용 등을 거론했다. 

    그러나 'ISAT 인터뷰'는 해당 프로그램에 참여한 전문가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으며 작년 10월 행사를 기준으로 볼 때 이미 4개월 전에 모든 인터뷰가 마무리된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책이 출간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사실상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진 교수는 "인터뷰 영상 편집상태가 부실하여 해당 전문가들도 녹취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고 실토했다. 또한, "행사를 도운 통역사들의 수준도 기준미달이어서 인터뷰 진행 자체에도 애로사항이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사업준비 및 사후관리에 있어서 중대한 결함이 있었음을 자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초 계획대로인 지난 해 5월 출간된 '컴퓨터 예술의 탄생'에 대해서도 의혹의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원저자인 일본인 가와노 히로시(川野洋) 전 도쿄도립과학기술대 교수는 1925년생으로 올해 85세를 맞이했으며, 정년퇴임한 지도 20년이 넘었을 뿐아니라 마지막으로 책을 출간한 것이 1982년이다. 이번에 출간된 진 교수의 책은 1982년 출간된 원저서를 1992년 초판 발행 및 1999년 재판 발행한 번역서 '예술·기호·정보'(진중권 옮김, 도서출판 새길)를 골자로 최근 저자와의 인터뷰 및 관련자료를 보강하여 출간한 것이다. 내용 여하를 따지기에 앞서 빠르게 변하는 '유비쿼터스' 기술 및 문화예술 트렌드를 감안할 때 대표 교재로 채택되기에는 상당한 무리가 있어 보인다. 

    사업 최종 결과보고서 성과 개요에서 출판물에 관한 내용이 빠져있는 것도 의혹을 키우고 있다. 이에 대해 한예종 담당자는 "무슨 의도로 질문하는 지 모르겠다. 답변을 거절하겠다"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한 관계자는 "직접 관리하는 사업이 아니라 잘 모르나, 어쨌든 분명한 것은 계획에 잡힌 사업은 진행해야 하며, 그 진행 결과에 대해서는 반드시 최종 사업보고서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전제, "최종 사업보고서에서 빠진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라며 놀라워했다. 

    마지막으로, 진 교수의 역할에 대해서도 당사자 간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진 교수는 "책 출간과 전문가 인터뷰에 참여했을 뿐 사업 전체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답변한 반면,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심광현 한예종 교수는 "진 교수가 한예종 객원교수로서 사업 전체에 대해 자문과 컨설팅을 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한예종 통섭원 개설 프로젝트에 대한 부실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 문화평론가 변희재씨는 "통섭과정 개설은 예술인 양성 전문가 능력이 없는 좌파 문화운동가들이 마음대로 한예종을 좌지우지하기 위한 의도라 짐작해볼 수 있다"며, "이미 투입된 35억원의 국민혈세 유용 여부를 철저히 조사하여, 이들의 의도를 밝혀내는 것이야말로 전문예술인 양성이라는 한예종의 설립 취지를 살리는 길"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