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개인의 역량에만 의지하는 국가의 생명은 짧다. 재능이 제아무리 뛰어나더라도 그 사람이 죽으면 만사가 끝나기 때문이다. 건전한 국가란 우수한 지도자가 죽은 뒤에도 누가 뒤를 잇든지 그 노선이 계승되어 나갈 수 있는 체제가 구축된 국가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 니콜로 마키아벨리

    주지하듯이 역대 대한민국의 대통령들은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했다. 정권의 정통성에 하자가 있었던 권위주의 체제의 대통령들은 차치하더라도, 민주화 이후 선출된 문민 대통령들조차 모두 실패로 끝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들 문민 대통령들이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오만과 독선으로 일관했기 때문일까. 물론, 그런 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일까. 대통령의 국정 수행을 근본적으로 제약하는 조건은 없는 것일까. 아주 탁월한 지도자가 등장한다고 해서 성공하리라는 보장이 있을까. 우리는 이런 점들을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흔히 대한민국 대통령을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부른다. 헌법상의 대통령의 권한을 생각하면 그런 표현이 과장되었다고 하기 어렵다. 대통령제의 모범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 대통령보다도 더 강한 권력을 보유하고 있는 편이다. 게다가 그 동안 대통령들이 실제로 수행해 온 권력은 헌법상의 권력을 넘어서는 경우가 많았다. 권위주의 대통령들은 말할 것도 없었고, 문민 대통령들에게도 이런 잔재들이 있었다. 더욱이 대한민국은 오랜 중앙 집권의 전통이 있어서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에 대하여 거부감이 적었다.

    그러나 민주화가 심화되면서 기업과 언론, 그리고 시민사회 등 민간의 힘이 커지고 정보화로 국가 권력의 정보 지배력이 흔들리면서 점차적으로 대통령 권력은 제약을 많이 받고 있다. 그리고 대통령이 여당의 총재를 겸임하던 시절과는 달리 이른바 대권과 당권이 분리된 지금의 현실에서 대통령은 여당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는 형편이다. 이 때문에 국회에 대한 정부의 이니셔티브도 제약을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에게 일종의 ‘슈퍼맨’ 역할을 요구하는 한국의 현실에서 정부가 국민의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에 오는 실망감은 대단히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임기 초기의 높은 지지율에 비하여 임기 말의 지지율은 형편없이 떨어지는 것이다.

    요약컨대, 헌법상의 권력은 ‘제왕적’이라고 일컬을 정도로 막강하지만, 실제로 대통령이 소신껏 일하거나 자기 주도로 국정을 펼칠 수 있는 재량은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다. 더욱이 지역, 계층, 세대 등에 걸쳐 분열상이 심각한 한국의 현실이고 보면 대통령이 방향을 설정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일이 대단히 어렵다. 특히 인터넷이 ‘무관의 제왕’ 역할을 하는 한국에서 대통령은 전 지역, 전 계층, 전 세대를 두루 만족시키지 않는 이상 특정 그룹으로부터 비토를 당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또 저항 운동의 역사가 만만치 않기 때문에 반(反)정부 저항 세력으로부터 정부의 헤게모니를 확보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거버넌스(governance)’라고 하여 협력적 통치를 하라는 주문들을 많이 한다. 이론적으로는 옳은 방향이지만, 대통령에게 무한 책임을 묻는 한국의 실정상 그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의 대통령에 대하여 정치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길이 별로 없다. 기껏해야 총선 등 다른 선거를 통하여 집권 여당을 심판하는 간접적인 방법이 있을 뿐이다. 대통령이 힘을 발휘하기도 어려우면서 책임은 지대하고, 그러나 반대로 결과에 대한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면, 왜 굳이 현행과 같은 대통령제를 유지해야 하는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설령 슈퍼맨이 등장한다고 해서 아름답게 퇴장하는 대통령이 되기는 어려운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물론, 슈퍼맨이 등장하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과 가치관이 극단적으로 양분되어 있는 사회에서 다수를 만족시키는 슈퍼맨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슈퍼맨을 전제로 하는 현행 대통령제를 이제는 바꿀 때가 되었다. 이명박 정부가 지금 당하고 있는 어려움을 보면서 위와 같은 생각이 들었다. 미시적으로는 인사 파동, 쇠고기 협상이 임기 초의 이명박 정부를 어렵게 만들었지만, 인사를 쇄신하고 쇠고기 문제를 잘 마무리하더라도 이명박 정부가 순항(順航)하는 것이 구조적으로 어렵다고 본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과 범여권에 높은 지지를 보냈던 우리 국민들이고 보면 웬만한 업적이 아니라면 실망감이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때마침 국회 일각에서 개헌 논의를 하고 있다. 4년 중임제가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는 것 같은데, 이것은 문제의 본질을 극복하는 방안이 아니다. 앞서 본 것처럼 전혀 제왕적이지도 못하면서 제왕적인 리더십을 요구받고 있는 현행 대통령 권력을 크게 분산시키거나 아니면 의원내각제를 도입하는 것이 합리적인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각 정당의 경선 과정을 포함해서 생생히 목도했듯이 ‘전부 아니면 전무’의 게임을 펼치는 대한민국 대선을 없애기 위해서도 현행 권력구조를 반드시 바꾸어야 한다.

    <객원칼럼니스트의 칼럼 내용은 뉴데일리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