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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5일자 오피니언면 '시론'에 박효종 서울대 교수가 쓴 <대선은 ‘원맨쇼’가 아니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대선에 유별난 점이 있다면 후보 한 사람에 모든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대선전략도 후보 한 사람을 죽이고 살리기 위한 꼼수로 가득 차 있다. 한 사람만 연기를 잘하면 성공하고 상대방 개인에게 한 방만 먹이면 대세가 결정된다는 발상이 판을 친다. 인신 공격, 도덕성 시비 등 꼴불견의 온갖 네거티브 캠페인이 판을 치는 것도 이런 이유인데,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풍조다. 미인대회에서는 미인 한 사람만 고르면 끝이다. 그 일가친척이나 남자 친구에 대해서까지 왜 신경을 써야 하겠는가. 그러나 대선은 미인을 고르는 것과 다르다. 대선은 한 개인을 뽑는 것이 아니라 한 팀을 고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란 영웅 한 사람에 의한 ‘독불장군의 게임’이 아니라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의 ‘팀 플레이’다. 언론에 비치는 선거운동을 보면 후보 개인이 어느 시장에 갔느니, 누구를 껴안았느니 등등 시시콜콜한 것들 일색이다. 후보 한 사람만 가로 뛰고 세로 뛰는 등 ‘원맨쇼’를 하면 되는 것인가. 그가 ‘양의 탈’을 쓴 양인지 아니면 ‘양의 탈’을 쓴 이리인지 지극히 개인적인 것들만 알아내면 충분한가. 국정 운영이란 혼자 5년간 마라톤을 뛰는 것과는 다르다. 오히려 5년간 축구팀을 운영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지난 대선 때 노무현 한 사람만 보고 표를 찍은 사람들이 많았지만, 정작 그의 뒤엔 알려지지 않은 무명(無名)의 실세들이 숨어서 ‘보이지 않는 권력’을 행사했다. 386 참모들이 그들이다. 그 가운데는 청와대가 첫 직장인 사람들도 있었다. 참여정부의 무능과 무지, 아마추어리즘이 여기서 나왔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럼에도 ‘선출된 권력’이라는 이름하에 온갖 중요한 결정에 관여했다. 만일 노 대통령이 386뿐만 아니라 7080과 5060의 지혜를 빌렸더라면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다나오의 딸들처럼 ‘깨진 항아리에 물을 쏟아 붓는’ 허망한 국정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선 후보가 독야청청(獨也靑靑)하면 무엇 하나. 국민들은 후보 한 사람뿐만 아니라 그가 누구와 손잡고 국정을 운영할 것인지, 어떤 국무총리와 각료들을 쓸 것인지 궁금하다. 또 청와대 수석급 참모는 누가 될 것인지 알고 싶어한다. 대통령이 돼서 그때 그때 기분에 따라 ‘제 눈에 안경을 고르는’ 식이 되어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또 ‘코드 인사’나 ‘회전문 인사’처럼 전리품을 나누고 ‘왕의 남자’ 챙기는 심정으로 자리를 주어서도 안 된다. 지금 시민단체나 학계에선 정책 논쟁이 실종되었다고 난리다. 사실이나 보다 시급한 게 투명한 인사다. 벌써부터 일각에선 차기 정권 인수위 구성이나 내년 총선 공천을 둘러싼 이런저런 얘기들이 흘러나오고 있다고 한다. 정권 교체가 개인들끼리의 바통 터치가 아니라면 현 국정팀이 어떤 팀으로 교체되는지 또 그 팀의 컬러가 어떤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영화를 보라. 영화 한 편이 성공하려면 주연만 좋아서 되는 것이 아니다. 우선 스토리가 좋아야 하고 조연의 역할도 중요하며, 하다 못해 ‘엑스트라’도 유능한 사람을 써야 한다. 하물며 엄숙한 국정 운영이라면 더 말해 무엇하랴. 대통령 한 사람만 덜컥 뽑아놓고 나머지 사람들에 대해선 ‘숨은 그림찾기’처럼 인사 때마다 온갖 억측과 추측이 난무하고 하마평이 무성해서야 어떻게 선진국형 국정이 되겠는가. 어떤 대통령을 뽑느냐 하는 문제 못지않게 어떤 국정 주도 세력을 뽑느냐 하는 것이 대선의 진정한 의미라면 모든 대선후보들은 국민의 머슴이 되겠다는 진부한 약속만 되뇔 것이 아니라 누구와 더불어 일할지 미리 밝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