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일보 18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이진곤 주필이 쓴 '기념관은 국민 마음 속에…'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의명분이고, 그것을 받치는 세력이 또한 중요하고, 그 다음의 것이 대화와 타협, 이것이 정치의 요체라고 생각하며 그런 결과로써 여기까지 왔다.”

    노무현 대통령이 17일 국무회의에서 했다는 말이다. 노 대통령은 이어 “그동안 개헌을 위해 노력해 왔던 사람들은 물론 아쉬움이 좀 있겠지만 아무리 대의명분이 뚜렷한 일이라도 그를 뒷받침하는 세력이 없으면 이룰 수 없는 것이 또한 정치의 냉정한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미 지난 일이 됐다. 노 대통령도 다시 무슨 시도를 하겠다는 게 아니라 명분 세워 이 문제를 일단락짓겠다고 한 말이었을 터이다. 대통령으로서 제시했던 과제가 흐지부지 넘어가고 마는 모양새가 되는 것을 봐 넘기기가 쉽겠는가. 그 점에서 노 대통령의 해명은 이해가 된다. 다만 이조차도 않는 게 더 나았겠다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대통령 임기 4년 연임제’는 대의(大義)라고 할 만큼 절실한 국가적 과제라고 할 수 없다. 2002년 대선 때는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인가 하는 것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지난 1월 열린우리당 지도부와의 오찬 회동에서는 “내각제 하는 나라가 부럽다”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어떻게 4년 연임제가 ‘대의’로 부상했을까? 5년 단임제 폐지에 무게가 실린 시도였다고 하겠지만 그래도 설득력은 부족하다.

    ‘대의명분’ 다음에 ‘받치는 세력’을 둔 것도 동의하기 어렵다. 개헌처럼 중요한 일에는 민의(民意)의 지지가 필수적이다. 노 대통령의 언급은 역동적 지지세력이 받쳐준다면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다는 뜻으로 들려서 씁쓸해진다. 대통령 후보는 ‘세력’의 뒷받침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대통령의 힘은 ‘민의’에서 나온다.

    ‘대의명분’과 ‘받치는 세력’까지 다 포함해 한 말일 수도 있겠는데, 어쨌든 ‘대화와 타협’을 ‘정치의 요체’라고 한 것은 옳다. 격렬한 논쟁과 토론도 있어야 하지만 타협이야말로 민주적 정치과정의 소망스런 매듭짓기다. 민주정치는 상대주의적 가치관을 기반으로 한다. 문제는 노 대통령 자신이 선·악 두 눈금만을 척도로 삼아 정치를 해온 데 있다. 타협의 여지를 스스로 봉쇄한 셈이 됐다.

    “지금도 풀리지 않는 의문 하나가, 시기적으로 정치적 부담이 거의 없는 이 시기에 왜 개헌을 굳이 안 하고, 절차적으로나 실질적으로 굉장히 많은 부담이 있는 시기로 굳이 미루겠다고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노 대통령의 지적도 선뜻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이는 ‘4년 연임제 개헌’이 당위의 과제라는 전제 하에서나 가능한 말이다.

    차기 정부와 국회에서 개헌, 그것도 4년 연임제 개헌을 할지 안할지는 그 때의 민의와 국정 담당자들이 결정하게 될 것이다. 그 뻔한 이치를 노 대통령이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지금의 각 정당 지도부와 소속 의원들에게 당론으로 약속하라고 압박을 가한 것은 아무래도 억지스럽다. 그 사람들이 무슨 권리로 차기 정부와 국회의 권한을 구속할 수 있다는 것인가.

    지금은 새로 일을 벌일 때가 아니다. 자신의 집권기를 잘 마무리하는 일에 전념할 일이다. 그래도 꼭 뭔가를 보여주고 싶다면 ‘멋있게 퇴임하는 대통령의 모습’이 어떨지 모르겠다. 백면서생이 대통령의 경지를 짐작이라도 하겠는가. 그럼에도 한 마디 거들자면 업적 욕심 털어버리고 말도 아끼면서 차분하게 떠나는 게 좋을 것 같다. 속을 비울수록 여운은 길게 간다. 여백이 많을수록 국민의 기억속에는 더 오래 남을 것이다.

    그래서 말인데 기념관이니 뭐니 하는 것에도 마음을 쓰지 않는 게 좋겠다. 국민의 존경과 그리움이 따르지 않는 기념관은 세인의 조소거리나 될 뿐이다. 진실로 큰 전직 대통령의 기념관은 국민의 마음 속에 세워진다. 역사가 그렇게 가르쳐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