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1일자 사설 ‘법원도 진보의 정치구호에 감염됐나’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법원이 한미FTA 반대시위 참가자 6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두 차례나 기각했다. 법원은 “달아나거나 증거를 없앨 우려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검찰은 “서울 도심 도로를 몇 시간 동안 마비시키고 경찰 수십명을 폭행한 사람들에 대한 영장을 기각한 것은 불법시위를 막으라는 국민 요구를 무시한 것”이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지금의 국민 생각은 한 가지다. 상습적, 폭력적 불법시위는 더 이상 용납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들의 불법을 다스리려면 법원의 엄중한 법 적용밖에 없다. 영장심사 단계에서부터 本본재판에 이르기까지 법원이 법을 분명하게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법원의 영장 기각은 국민의 이런 목소리와 확실히 어긋난다. 법원은 지난 3년간 집시법위반죄로 기소된 91명 중 단 한 명에게도 실형을 선고하지 않았다. 법원까지 ‘밥이 법보다 먼저다’라는 식의 대중 영합적 얼치기 진보 물결에 올라탔다는 우려를 낳을 만하다.

    대법원장은 취임 초 이 정권의 386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시대정신’을 대법관 선정요건으로 내세웠다. 아마 세계 어디에도 법관의 자격 요건으로 시대정신을 드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지난해 한 대법관이 물러나면서 “시민단체가 진보적이라고 하는 법관들이 능력이 뛰어난 법관들보다 (인사에서) 우선순위를 차지하는 것으로 비치는 상황”을 걱정할 만한 것이다.

    법원이 법치주의 대신 시대정신이니 진보니 하는 얄궂은 정치 구호에 전염된 나라치고 선진화에 성공한 나라가 없다. 법원의 우선적 사명은 국민적 합의로 만들어진 헌법과 법률의 틀 안에서 법질서를 지켜내는 것이다. 그래야만 나라의 법적 안정성이 유지될 수 있다. 우리가 오늘의 연장선상에서 내일을 예측하고, 특정한 행동에 대해선 특정한 상벌이 주어질 것으로 예상하는 것도 이런 법적 안정성의 토대 위에서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경제발전의 가장 기초적 조건으로도 법치주의와 법적 안정성을 드는 것이다. 그런 나라에서만 기업이 일어날 수 있고 외국의 투자도 몰려든다. 권력의 자의적 행사를 법원이 막아주어 사회적, 정치적, 법률적 불확실성이 제거되기 때문이다. 법치주의와 법적 안정성의 자리에 시대정신과 진보라는 정치구호가 대신 들어앉게 되면 모든 것이 무너지고 만다.

    법원이 기본권을 키우기 위해 새로운 법 해석과 판례를 내놓을 때도 국민 다수가 동의하고 공감하는 시각과 원칙에 따라야 한다. 분명히 이번 불법시위 주동자들에 대한 법원의 영장 기각은 국민 다수의 생각과 배치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