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11일자 오피니언면 '오늘과 내일'란에 이 신문 홍찬식 논설위원이 쓴 '핵 실험과 전교조의 원죄'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통일이 되면 북한에는 핵무기가 많아 우리나라가 강대국이 되어 좋아지고, 땅이 넓어져서 우리나라를 얕보는 일이 없게 되어 더욱 발전할 것이다.’

    전교조가 펴낸 책 ‘이 겨레 살리는 통일’에 실린 한 초등학생의 글이다. 2000년 전교조 소속의 한 교사로부터 통일교육을 받은 뒤 제출한 것이다. 담당 교사는 매주 월요일 한 시간 씩 ‘통일수업’을 했다고 자랑했다. 교사가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가르칠 수 있고 어떤 제재도 받지 않는다는 얘기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기 훨씬 전에 작성된 글인데도 교사가 뭐라고 가르쳤기에 아이는 북한이 핵무기를 갖고 있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걸까. 엊그제 북한 핵실험 직후 일부 인터넷에 올려진 “핵무기 보유로 우리도 강대국이 됐다” “민족의 자긍심을 높인 경사스러운 날” 따위의 글이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다.

    전교조가 수업시간에 활용하라고 제시한 놀이 가운데 ‘통일 윷놀이’란 게 있다. 윷을 던져 ‘국가보안법’이나 ‘냉전의식’이라고 적힌 지점에 이르게 되면 한 번 쉬는 벌칙이 주어진다. 가장 엄한 벌칙이 주어지는 곳은 ‘외세(外勢)’라고 쓰인 지점이다. 여기에 말이 멈추면 출발지점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전교조는 ‘민족 자주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놀이다. 놀이 과정에서 통일을 위한 과제가 무엇인지 저절로 익힐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런 놀이를 반복해서 시킬 때 티 없는 아이들의 머리 속에는 ‘외세’는 내몰아야 할 적(敵)이고 ‘우리 민족끼리’가 최고라는 배타적인 이분법만 자리 잡을 뿐이다. ‘폐쇄적 자주’로 자멸을 자초하는 북한과 동행해야 한다고 아이들에게 주입하는 것과 같다.

    1989년 탄생한 전교조가 가장 중시해 온 게 이른바 ‘민족교육’이다. 장혜옥 전교조 위원장도 “밖에서 우리더러 자꾸 초심(初心)으로 돌아가라고 말하는데 우리의 초심은 민족, 민주, 인간화 교육이고 그 점에서 우리는 한 치도 틀림없이 초심의 길을 가고 있다”고 말했다.

    전교조의 ‘민족교육’이란 것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음은 그들의 ‘통일교과서’에 해당하는 ‘이 겨레 살리는 통일’에서 바로 드러난다. ‘미국의 지원을 받은 이승만 등 우파세력은 남한 단독정부 수립으로 나서 분단 단독정부로 나아가게 됐다’며 남한 쪽에 분단 책임을 지우는 내용이다. 이는 역사적 사실과 다를 뿐 아니라 대한민국 건국을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다.

    2001년 제작된 이 교재는 ‘한국이 전시작전통제권을 미국에 내주고 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며 군사 주권을 남에게 50년 이상 넘겨준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북한을 남한 입장에서 보지 말고 북한 입장에서 봐야 된다’는 주장도 빼놓지 않았다. 북한 정권을 일방적으로 옹호하고 대변하는 이런 교재로 학생들을 가르쳐 온 것이다.

    전교조 분회장을 맡고 있는 한 교사가 “전교조는 자기반성을 모른다”는 요지의 글을 내놓았다. 전교조의 집단이기주의도 큰 문제이지만 먼저 반성해야 할 것은 민족을 가장한 이념교육이다.

    북한이 핵실험을 감행하게 된 데는 남한 사회의 안이한 북한관도 작용했을 것이다. 여기엔 20년 가까이 젊은 세대의 북한관을 왜곡해 온 전교조의 원죄가 크다. 기회만 있으면 반(反)세계화 수업 등 계기수업을 해 온 전교조가 북한 핵실험에 대해선 계기수업 얘기를 안 꺼내는 걸 보면 아직 그들의 반성을 기대하기는 이른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