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시작전통제권(이하 작통권) 단독행사 논란으로 온 나라가 자주와 사대의 편가르기로 여념이 없어 국민은 불안하기만 하다. “핵과 미사일의 소나기가 내리는데 핵우산을 걷어치우려는 어리석은 발상이다” “아니다. 주권국가로서 최소한의 전제가 바로 작통권 확보이다”라며 보수-진보단체가 서로 마주보고 달리는 열차처럼 파국을 향해 치닫고 있는 듯이 보인다. 

    가장 현명한 선택은 국민이 내린다. 한 여론조사 결과(2006.8.11)는 우리 국민 약 60%가 작통권 단독행사가 안보상황 및 주변정세를 고려해 천천히 이뤄져야 하고, 국민 48%는 작통권 단독행사가 국가안보에 매우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데 대해 공감하고 있다. 여론을 집약하면 궁극적으로 작통권 단독행사는 필요한데 시기상조라는 결론으로 귀결된다.

    언제까지 국가안보 문제를 놓고 내부다툼을 지속할 것인가. 하루 빨리 소모적인 보혁갈등을 종식시켜야 하고, 이를 위해 집권측은 유연한 대응책을 내놓아야 한다.

    미군 없이 한국안보 가능한가

    우리 군은 전략정보의 95%이상, 전술정보의 70~80%를 미군에 의존하고 있다. 지난 7월 북한 미사일 발사 사태에서 경험한 것처럼 미군의 정보 없이는 북한 핵개발이나 미사일 발사 움직임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든 현실이다.

    국방부 산하 국방연구원도 우리 군의 전력은 과거보다 많이 향상 됐지만 공군을 제외하고 육군과 해군은 아직 북한에 비해 열세라는 분석이다. 아울러 군사전문가들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적군보다 2~3배의 전력 우위에 있으면 되지만 전쟁을 억지하기 위해서는 적군보다 10배 이상의 전력우위가 있어야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상기하기도 싫은 전쟁의 비참함을 되새겨보자.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피해는 대단했다. 정규군 70%가 전사했고, 인구는 1100만명 선에서 1000만명 아래로 떨어졌다. 인구의 10% 이상이 죽었다. 또 6.25 한국전쟁에서 한국인 사망자 수는 130만명, 사상자는 400만명에 이른다. 당시 남북한 인구를 3000만명으로 어림하면 7명 중 1명꼴로 사망하거나 부상을 당한 셈이다.

    1627년 후금 군사 3만명이 압록강을 넘어 침범한 정묘호란. 인조반정으로 득세한 조선의 집권세력은 군사력 열세라는 현실 앞에서 후금을 형으로 모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후금은 1636년 4월 국호를 청(淸)으로 바꾸고 조선에 형제의 관계를 군신의 관계로 바꾸자고 요구했다. 조선은 이렇다할 방비책도 없이 강경파(김상헌)의 이상주의에 집착하면서 청나라의 요구를 거부하고 청군 12만명이 쳐들어오는 병자호란이라는 대참변을 겪었다. 조정은 현실을 인정하자는 최명길 등 주화파와 끝까지 싸우자는 김상헌 등 척화파로 나뉘었다. 최명길이 쓴 항복문서를 김상헌이 찢자 최명길은 이를 다시 기워 보냈다.

    그러나 당시 척화파의 주장대로 전쟁을 했다면 한반도의 운명과 조선의 역사는 어찌 되었을까. 현실주의자인 주화파 덕분에 조선왕조가 유지될 수 있었고, 척화파가 나중에 조선의 정신이 유지될 수 있는 기개로 칭송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주화파의 덕분이라고 볼 수 있다.

    최명길의 위기관리에서 배우자

    우리는 역사에서 새로운 교훈을 배운다. 최명길은 회고록에서 병자호란 때는 “싸우자니 힘이 부치고 감히 화의하자고 못하다가 하루 아침에 성이 무너지고 위 아래가 어육(魚肉)이 되면 종사를 어디에 보존하겠느냐”는 입장에서 강화를 주장하였지만, 자신이 쓴 항서를 찢는 척화파 김상헌의 행동에도 의미가 있다고 인정함으로써 독단에 빠지지 않았다.

    후세의 사가(史家)들은 이를 두고 “열지자(裂之者)도 가(可)요, 습지자(拾之者)도 가(可)다”라고 항복문서를 찢은 자도 찢어진 항복문서를 기워 붙인 자도 모두 충신으로 추앙했지만 유연한 위기관리의 리더십을 발휘만 최명길을 한 수 위로 평가했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지난 10일 작통권 단독행사와 관련, “노 대통령이 그동안 특별히 준비한 것이 없는데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노 대통령이야 말로 안보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역(逆)안보장사’를 하고 있다”고 한 발언은 국가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할 야당 정치지도자로서 당연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청와대와 노대통령은 야당의 주장과 민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지난 87년 전두환 전대통령은 4.13호헌 조치로 국민 저항에 부닥치자 한 때 군 투입까지 검토했으나 결국 국민의 직선제 요구를 받아들이는 ‘온건론’(주화파의 손을 들어줌)을 채택했고, 그 결과 합법적으로 정권을 재창출하는 데 성공했다.

    위에 지적한 몇가지 역사적 사례를 노무현 대통령이 타산지석으로 삼았으면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는 허장성세(虛張聲勢)보다는 바로 최명길의 균형잡힌 국제외교감각이다. 지금으로부터 370여년전 인조가 이끄는 조정과 같은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역사는 돌고 돈다는 철리를 다시 새겨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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