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일보 26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이진곤 주필이 쓴 칼럼 '남북장관급 회담 허상과 실상'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역대 정권 가운데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남북 화해 및 교류·협력 확대에 특별한 관심과 열정을 쏟아 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평화적 민족통일, 그 전단계로서의 화해·협력의 길을 열기 위한 노력은 이미 제2공화국 때부터 기울여졌다. 장면 정부를 쿠데타로 전복시키고 등장한 박정희 정권도, 70년대에 들어서는 오히려 남북 대화를 주도했다.

    72년 7월4일 역사적 남북공동성명, 그 다음해 6월23일의 평화통일외교정책 선언, 74년 1월의 남북불가침협정 체결 제의 등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대북 정책의 전환이었다. 특히 국민적 관심을 끈 것은 79년 1월의 대통령 연두회견. ‘언제 어떤 장소에서든, 또 어떤 수준에서든’ 당국자들이 만나자는 것으로서 우회적 ‘남북 정상회담’ 제의였다.

    전두환 정권 말기였던 87년,‘6·29선언’에 따라 남북 문제와 관련한 모든 금기는 사라졌다. 통일은 헌법에 국가 목표로 설정되고 ‘평화통일을 위한 대통령의 성실한 의무’(66조3항)가 강조되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88년 7월7일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을 발표했고 이에 따라 ‘남북 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이 마련되기도 했다. 이 시기의 결정판은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 즉 남북 기본합의서 채택(92년 2월19일 발효)이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한민족 3단계 통일방안’을 내놨는데, 이보다는 ‘남북 정상회담’ 시도가 더욱 국민의 시선을 끌었다. 그와 김일성 북한 주석 사이의 회담을 94년 7월 25일부터 27일까지 평양에서 열기로 전격 합의되었다. 그러나 회담 준비가 한창이던 그달 8일 김 주석이 돌연 사망하고 말았다. 그야말로 운명의 희롱이었다.

    그 연장선상에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간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이 있다. 이를 계기로 남북간의 인적 물적 교류는 더욱 활성화했다. 더욱 인상적이었던 성과는 김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이었고…. 과거사를 두고 가정을 한다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지만 만약 ‘김영삼-김일성 회담’이 성사되었더라면 어땠을까.

    이처럼 남북 관계의 진전에는 역대 정부의 노력이 배었고, 무엇보다 국민적 기대와 지원이 뒷받침되었다. 특정인의 공적인 양, 그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인 양 하는 인식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엊그제 제18차 남북 장관급회담 성과로 강조된 것이 ‘DJ 6월 방북 합의’다. 그게 남북간의 현안, 북한 문제와 관련한 국제적 과제와 무슨 각별한 관계가 있기에 장관급 회담 의제로 삼았다는 것인가. 그나마도 합의문에 포함시키지 않고 다음달에 열릴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에서 논의키로 했단다. 남북 정상회담 직전에 5억달러가 건네졌다고 하던데 이번에라고 그냥 오라 할까. 김 전 대통령으로서야 남북정상회담, 6·15남북공동선언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이 클 수밖에 없겠지만 그게 꼭 국민의 이익과 일치한다고 볼 수는 없다. 혹시라도 정권 차원의 정치적 퍼포먼스로 기획되고 있는 일은 아니기를.

    괜히 정부측 의도를 의심하는 게 아니다. 국군포로 및 납북자 송환 문제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열의가 어째 ‘DJ방북’에 많이 못 미치는 인상이다. 공동보도문에 기껏 반영했다는 것이 “남북은 전쟁시기와 그 이후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사람들의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협력키로 했다”는 정도다. 장기수 송환에는 그처럼 과감하고 열정적이던 정부가 왜 이쪽 가족들의 피눈물에는 이렇게 조심스럽고 냉정해야 하는지 누가 말 좀 해주시라.

    대북 정책이 ‘민족적 염원’ 아닌 특정인들의 ‘개인적 열망’ 또는 ‘정치적 목적’에 추동되는 듯해서 늘 안타깝다. 국내 정치적 고려를 털어내면 진정한 남북 화해 화합과 교류 증대,나아가 통일의 길을 볼 수가 있다. 당연히 그 길은 쌍방향이어야 한다. 언제나 남측의 양보·지원·부담만을 의제로 하는 회담은 진정한 신뢰를 가져다주지 못한다.

    ‘DJ방북’은 당사자에게 맡겨둬도 된다. 그렇지만 국군포로와 납북자를 데려오는 것은 국가의 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