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5일 사설 '깨끗한 척은 다 하던 정권의 대통령 형 구속되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씨가 4일 구속 수감됐다. 법원은 노씨가 정대근 농협 회장에게 청탁해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를 성사시킨 뒤 세종증권에서 29억6300만원이 든 통장과 도장을 받았다는 검찰측 구속 사유를 인정해 영장을 발부했다. 대통령 가족이나 친·인척이 권력형 비리에 얽혀 구속되는 일이 또 되풀이된 것이다.

    노건평씨는 그동안 혐의를 부인해 왔다. "(농협 회장에게) 전화 걸어 고향 근처 사람 민원이 있는 것 같으니 말 좀 들어보라고 했을 뿐"이라거나 "꿈에라도 돈 받은 적 없다"고 해 왔다. 그러나 노씨는 2005년 6월 대통령 고교 동창 정화삼씨의 로비를 받고 서울로 올라와 호텔에서 정대근 농협 회장을 만났다고 한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은 그 직후 110억원을 들여 세종증권 주식 197만주를 사들였다. 농협이 세종증권을 인수하리라는 것을 확신하지 않았다면 일거에 이렇게 큰 베팅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노씨가 농협 회장에게 얼마나 세게 청탁했기에 박씨가 확신을 가졌겠는지 짐작할 만하다.

    이번 사건은 일확천금에 눈이 먼 증권가 작전세력들이 기업 인수·합병 정보를 띄우면서 주가를 조작하는 행태와 다를 바가 없다. 작전의 각본을 쓴 것은 세종증권이었고 주연은 노건평씨였다. 주연 못지않은 조연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견인이라는 박연차씨였다. 박씨는 사들인 세종증권 주식을 그해 12월 농협이 세종증권 인수 양해각서를 체결하기 직전 열흘 동안 팔아 178억원의 이득을 봤다.

    노건평씨와 박연차씨는 동업자나 진배없는 관계였다. 박씨의 골프장 진입로 공사를 노씨가 소유한 건설회사에서 맡았다. 노씨는 그때 받은 공사비로 박씨가 대주주인 벤처회사의 주식 100만주를 사들였다. 박씨는 노씨의 김해 임야, 거제도 별장도 매입해줬다. 그런 거래로 박씨의 신세를 졌던 노씨가 세종증권 작전에선 박씨에게 한몫 단단히 챙겨줬다고 볼 수밖에 없다.

    세종증권과 대통령 형 사이에 다리를 놓은 대통령 친구 정화삼씨에게도 떡고물이 흘러갔을 것이다. 대통령 형의 청탁을 들어준 농협 회장은 세종증권에서 따로 50억원을 받았다. 세종증권을 농협에 팔아치운 사람들도 주가가 치솟으면서 몇백억원의 이득을 챙겼다. 대통령 주변 사람들이 농협을 먹이 삼아 한판 흐드러지게 잔치판을 벌인 것이다.

    세종증권이 노씨측에 건넨 통장엔 29억6300만원이 들어 있었다. 30억원을 꽉 채우지 않은 것은 세종증권 사장의 성과급으로 가장하려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 사람들은 돈을 주고받으면서 이미 나중에 들통났을 때 입을 맞출 시나리오까지 준비한 것이다. 노씨는 받은 돈을 정화삼씨 형제에게 맡겨 오락실을 운영하게 하고 오락실에서 세탁된 수익금을 챙겼다. 전직 국세청장이 남의 명의로 받았다는 뇌물 아파트만큼이나 혁신적인 뇌물 수법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2004년 국민이 지켜보는 기자회견에서 "좋은 학교 나오시고 크게 성공하신 분들이 시골에 있는 별 볼일 없는 형에게 가서 머리 조아리고 돈 주고 그런 일 이제는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형이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으로부터 연임 청탁과 함께 3000만원이 든 쇼핑백을 받았다 되돌려줬다는 사실을 공개하면서 했던 말이다. 돈을 받은 형보다 돈을 준 사람을 욕 먹이고 비난한 것이다. 그 회견 장면을 TV로 보던 남 전 사장은 한강에 투신 자살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 노인"이라던 노건평씨는 바로 그 이듬해 농협에 세종증권을 인수해 달라는 청탁을 하고 다녔다.

    대통령 주변에서 비리가 터져 나오면 "깜 안 된다" "소설 쓰지 말라"고 했던 게 지난 정권 사람들이다. 깨끗한 척은 혼자 다 하면서 뒤론 할 것 다 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했던 고약한 일들도 때가 되면 드러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