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 비상 6일째, 기침 편도염 면역저하 급증… "마땅한 약-클리닉도 없어" 한숨만
  • ▲ 최악의 미세먼지로 6일 수도권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사상 처음 엿새째 시행됐다.ⓒ뉴데일리 DB
    ▲ 최악의 미세먼지로 6일 수도권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사상 처음 엿새째 시행됐다.ⓒ뉴데일리 DB
    “계속된 미세먼지 때문에 면역력이 많이 떨어진 것 같죠. 어디가 특별히 아픈 것도 아니니 병원에 가기도 뭐하잖아요. 마스크에만 의존하고 있어요.” (30대 회사원 A씨)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사상 처음 엿새째 시행되면서 기관지 등 미세먼지와 연관된 부위의 통증을 호소하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 

    6일 낮 12시를 전후해 서울시청과 광화문 인근에서 만난 시민 대부분은 미세먼지로 인한 면역력 저하, 기관지질환 등을 호소했다.

    서울 강남구에서 출퇴근한다는 회사원 이모(32) 씨도 면역력 저하 증상을 호소했다. 이씨는 “미세먼지를 매일 마셔서 그런지 면역력이 떨어져 항생제에 의지하고 산다”며 “회사 동료 여럿이 비슷한 증상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앞이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뿌연 하늘

    이날 서울 중구의 미세먼지 농도는 170㎍/㎥, 초미세먼지 농도는 105㎍/㎥였다. 이는 ‘매우 나쁨’ 기준(미세먼지 150㎍/㎥ 초과, 초미세먼지 75㎍/㎥ 초과, 한국환경공단 에어코리아)을 훨씬 웃도는 수준이다. 시야가 거의 확보되지 않을 정도라고 보면 된다.

    또 다른 회사원 유모(42) 씨는 “최근 미세먼지 탓인지 기침이 심해지고 편도선염까지 왔다"며 “병원에 가도 항생제 처방이 전부”라며 걱정했다.

    이처럼 미세먼지로 시민들이 고통받지만, 정부는 “외출을 자제해 달라"는 문자메시지 외에는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결국 시민들은 정부의 무능함을 탓하면서 약국이나 병원으로 몰리는 실정이다.

    “외출 자제해 달라" 문자에 분통

    실제로 ‘고농도' 미세먼지가 지속되면서 약국이나 병원을 찾는 환자가 평소보다 30% 이상 늘었다고 한다.

    서울 마포구의 한 약사는 “최근 5일 사이 환자가 몰렸다”며 “기침을 하거나 목이 부은 환자가 대부분이었다”고 밝혔다. "미세먼지 때문인지 목이 아프고 가래가 생긴다” “눈도 따갑다”는 등의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최근 미세먼지 마스크는 하루에 200장 넘게 판매된다”고 덧붙였다.

    서울 서대문구·동작구 등의 약국들도 비슷한 상황이다. 서대문구의 한 약사는 "눈이나 기관지 통증으로 방문하는 환자가 30% 정도 많아진 것 같다"고 했고, 동작구의 한 약국은 "최근 5일간 온 손님 대부분이 미세먼지 마스크를 사러 왔다”고 말했다. 

    같은 지역의 한 이비인후과 관계자 역시 “최근 미세먼지 때문에 목이 아프다는 환자가 늘었다"고 전했다.

    마땅한 전문 클리닉도, 치료약도 없어

    일각에선 한국이 미세먼지에서 자유롭지 못한 국가가 된 마당에 미세먼지를 다루는 전문 클리닉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의료계에선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본다. 미세먼지와 증상 간의 연관성을 밝힐 수 없어서다.

    최주환 고려대학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교수는 "미세먼지와 해당 증상 간의 연관성을 밝힐 수 있는 공식적인 검사가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며 “증상이 너무 다양하고 복합적이기 때문에 미세먼지용 약도 처방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미세먼지와 증상 간의 의학적 연관성은 없지만, 미세먼지 같은 대기오염이 인체에 치명적이라는 사실은 의학적으로 증명됐다. 최주환·심재정 고려대 구로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교수팀이 지난해 발표한 '미세먼지와 만성폐쇄성폐질환환(COPD)의 연관성'이라는 논문은 “대기 오염지수가 높아질수록 COPD 환자 입원율이 증가한다”고 설명했다.

    홍철호 자유한국당 의원이 질병관리본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초미세먼지로 인한 국내 조기사망자는 2015년 기준 1만1924명이었다.
  • ▲ 미세먼지 마스크를 착용하고 길거리를 걷는 시민들.ⓒ뉴데일리 DB
    ▲ 미세먼지 마스크를 착용하고 길거리를 걷는 시민들.ⓒ뉴데일리 DB
    일부 병원과 약국에선 ‘가짜 미세먼지 치료제’를 판매하는 등 미세먼지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을 ‘상술’에 이용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병원 관계자는 “일부 병·의원에서는 미세먼지 치료제라며 일반 항염증제를 여러 개 섞어 처방하고 있다”며 “그것은 일반의약품일 뿐 ‘미세먼지치료제’라고 불릴 만한 의학적 근거가 없고 효과도 증명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아이 학교 보내야 하나" 우왕좌왕하는 사람들

    미세먼지에 대한 정부의 무능함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갈수록 높아진다. 재난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것 외에 정부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는 비난이다.

    서울 중구에 사는 양모(35) 씨는 “무슨 화생방 훈련을 하는 것도 아니고, 미세먼지가 계속되고 있는데 정부는 바람이 불기만 기다리는 것 같다”며 “중국 영향이 크다고 하는데, 중국정부와 함께 어떤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는 소식이라도 나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서울 구로구에 사는 이모(31) 씨는 "피부 트러블도 심해지고 눈도 건조해지고 빨갛다. 밖에 나가기가 두렵다"며 "근본적인 해결 없이 정부는 경고문자만 보내 화가 난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이비인후과 의료진은 "정부의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실효성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며 “(정부는) 국민이 느끼는 두려움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재난이냐, 아니냐... 기준도 없어

    최근 미세먼지는 ‘거의 재난' 수준이지만 미세먼지에 대한 구체적 재난 기준은 마련돼 있지 않다.

    국민안전처에 따르면 폭염·한파 등 기준치 이상의 자연현상을 재난으로 분류한다. 미세먼지는 기준 밖이다. 정부는 미세먼지 대책으로 비상저감조치와 재난문자를 통해 마스크 착용, 실외활동 자제 등의 권고만 할 뿐이다.

    이 때문에 등교를 위해 “외출해야 하는”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휴교령’이라도 내려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이마저 쉽지 않다. 현재 초·중·고등학교는 학교장 재량에 따라 휴교할 수 있지만, 정해진 학사일정이 있어 긴급한 상황이 아니면 휴교하기 어렵다는 게 교육계의 설명이다.

    초등학교 2학년 자녀를 둔 경기도 수원시의 김모(33) 씨는 "미세먼지가 이렇게 심한데 휴교령도 없어 불안하다"며 "가뜩이나 아이 키우기 힘든데 공기마저 나빠 둘째는 포기할 계획"이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학부모는 “미세먼지가 재난 수준인데도 뚜렷한 대책과 지침이 없는 게 이해가 안 된다"며 “아이들은 호흡기가 약한 데다 학교내 공기청정기도 부족하다”며 답답해했다.

    한편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6일 오후 3시 기준 452건의 미세먼지 관련 청원글이 올라왔다. '미세먼지, 중국에 대한 항의 청원합니다'라는 글에는 현재 약 8만5000여 명이 참여했다. 하루 만에 1만 명이 늘어난 수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