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영국, 프랑스의 경우 테러방지 위해서라면 법원, 정치권도 적극 협조
  • 편집자 注: 20대 총선이 다가오자, 정치권은 선거에만 집중하고 있다. 그 가운데 19대 국회를 막판까지 달궜던 주제에 대한 관심은 식어가고 있다. 바로 ‘사이버테러방지법’이다.

    여당은 ‘사이버테러방지법’이 대테러 기관이 테러조직원으로 의심되는 용의자를 추적, 감시할 수 없는 현행법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야권은 “모든 국민의 휴대전화를 도청할 우려가 있다”며 격렬히 반대했다. 누구의 말이 맞을까.

    이에 ‘뉴데일리’는 독자들의 판단을 돕기 위해 치안문제 전문가가 ‘사이버테러방지법’에 대해 설명한 칼럼을 소개한다.


    통신자료의 의미와 법집행기관의 역할

    임 유 석(경찰학 박사, 동국대학교 경찰범죄연구소)

  • ▲ 지난 1월 20일 국가정보원은 "최근까지 해외 테러조직 ISIS에 가담하려거나 동조한 외국인 근로자 7명을 적발했다"고 국회 당정협의회에서 보고했다. 2015년 11월 안보기관에 검거된 인도네시아 출신 불법체류자의 경우 시리아 내전에 개입하고 있는 테러조직 '알 누스라 전선'에 후원까지 했다. 하지만 한국은 이들을 처벌할 수 있는 법률이 정비돼 있지 않다. ⓒ당시 SBS 관련보도 화면캡쳐
    ▲ 지난 1월 20일 국가정보원은 "최근까지 해외 테러조직 ISIS에 가담하려거나 동조한 외국인 근로자 7명을 적발했다"고 국회 당정협의회에서 보고했다. 2015년 11월 안보기관에 검거된 인도네시아 출신 불법체류자의 경우 시리아 내전에 개입하고 있는 테러조직 '알 누스라 전선'에 후원까지 했다. 하지만 한국은 이들을 처벌할 수 있는 법률이 정비돼 있지 않다. ⓒ당시 SBS 관련보도 화면캡쳐

    최근 논의가 되고 있는 통신자료는 범죄혐의 조사를 위해 정보수사기관이 가입자의 이름이나 주민등록번호 등을 확인하는 인적사항에 해당한다. 즉, 범죄혐의자와 통화한 상대방의 단순한 개인정보에 해당하기 때문에 정보수사기관은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영장 없이도 판사, 검사, 정보수사기관의 4급 이상 공무원의 결재를 거쳐 통신사업자 등으로부터 통신자료를 얻을 수가 있다.

    반면, 통신사실 확인자료는 통신내역확인(감청)이나 통화시간 또는 위치정보와 같은 개인정보에 해당하며, 법원의 영장에 의해 취득하고, 반드시 본인에게 사후 통보를 해야 하는 민감한 개인정보라는 점에서 구별되고 있다. 

    이러한 정보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요청에 대해 지난 10일 대법원은 “통신자료가 주로 수사 초기에 신속하게 확인해야 할 정보에 해당되며, 개인정보 제공으로 얻을 공익은 큰 반면 제한되는 사익은 인적사항에 한정된다”는 취지로 통신자료 제공은 적법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 역시 범죄수사의 개시와 실행은 공개하지 아니한다는 범죄수사밀행의 원칙 준수와 수사보안 침해우려라는 공익을 보호할 필요성이 더 크다는 취지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범죄수사의 개시요건 중 하나에 해당하는 범죄혐의는 아주 경미한 개연성만으로도 충분하며, 이는 정보수사기관의 인지와 구체적인 사실에 근거하여 판단하는 주관성을 의미한다. 또한 범죄수사절차는 범죄혐의가 없이는 개시될 수도 없고, 어떠한 수사수단도 행사될 수가 없어 수사절차의 중심에는 범죄혐의가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범죄혐의를 파악하기 위한 정보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요청행위는 향후 수사방향의 노정에 있어서도 상당히 중요한 것이다.

    한편, 범죄정보의 특징은 시한성과 가치변화성이 상존한다. 그렇기 때문에 범죄의 단서가 포착되었다면 신속하게 공범 등의 여부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며, 범죄혐의를 받는 사람과 통화한 사람 중 누가 관련자인지 적시에 파악하기 위해 인적사항을 제공받는 것은 필수불가결한 상황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사개시 이전의 범죄혐의 자체에 대한 사전적 정보수집활동 및 조사절차에 해당하는 내사단계에서부터 사법부의 통제를 받는 경우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찾아볼 수 없는 형사절차이다.

    외국의 경우를 살펴보면, 먼저 미국은 연방법전(18 U.S.C.)에서 정부기관이 통신자료를 요청할 때에는 기본적으로 법원의 명령(Court Order)이나 영장(Warrant) 또는 대배심 명령(Grand Jury Subpoena)에 의한 통제를 받아야 하지만, 예외적으로 대테러 또는 국가안보와 관련된 범죄수사의 경우 정부기관의 국가안보서신(National Security Letter)이나 행정명령장(Administrative Subpoena)에 의한 문서제출 요청권한과 통신사업자의 제출의무를 부여하고 있으며, 이에 통신사업자는 자발적 또는 의무적인 자료제공에 대해 민ㆍ형사상 책임이 일체 면제되고 있다. 

    영국은 수사권한규제법(RIPA §§21-25)에서 국가안보와 범죄예방 및 수사 등의 사유로 정부기관 해당부서의 장이 서면으로 통신자료 제공범위를 명시하여 승인하고 요청하거나, 국무장관(Secretary of State)이 지시한 경우에도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통신사업자는 통신자료 제공의무를 부담하고 있으며, 정보수사기관과 정부위원회까지 광범위하게 국가기관에 간소화된 통신자료확인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통신자료(Bestandsdaten, 가입자정보)에 대해 통신사업자의 제공의무를 임의제출 형식으로 규정하고 있고, 형사소송법상 일반적인 압수수색영장이 필요하다. 그러나 헌법보호청(BfV) 또는 정보기관이 법률상 직무수행을 위해 필요한 경우 영장 없이 통신자료 요청이 가능하며, 통신사업자의 제공의무를 부담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사법체계상 법원이 검찰의 상부조직이기 때문에 수사판사가 범죄수사나 소추 목적으로 통신사업자에게 통신자료 제공지시가 가능하다. 또한 테러예방이나 국가안전 목적의 경우 수사기관이 총리실 산하 국가안보감청통제위원회(CNCIS)의 결정이나 지시로 통신자료를 요청할 때에 통신사업자는 협력하도록 규정하여 일반적인 영장주의 보다는 완화된 차원의 사법적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와 같이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라는 헌법적 이념을 수호하는 대부분의 국가에서도 살펴보았듯이, 범죄수사 목적 달성을 위해 정보수사기관이 범죄혐의를 조사하는 것은 법집행기관의 고유한 역할과 권한이라는 점이 준수되고 있다. 따라서 범죄사실의 확증과 절차의 적법성에 대해서는 법관이 재판을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하면 되는 것이고, 그 이전까지는 오로지 범죄혐의에 대한 개연성을 판단하는 자는 법관이 아닌 정보수사기관이 되는 것이다.

    특히, 국가의 존립과 기능에 위해가 될 우려가 있는 국가안보 혐의자에 대해 정보수사기관이 통신자료를 요청하는 행위는 법률로써 기본권을 필요최소한으로 제한하여 헌법적 가치를 수호할 뿐만 아니라 법의 고귀한 합목적성을 실현하기 위해 법집행기관이 그 역할을 다하는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