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의 설날은 설사날

    배불러도 아프고, 배고파도 아프다


    박주희 기자  /뉴포커스
     


  • 설날은 지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명절이다. 우리와 한 지맥으로 이어져있는 북한도 설날은 한 해 중 제일 기다리는 기쁜 날이다.

    남한의 설날은 온 가족이 간만에 모여 앉을 수 있는 날이다. 바쁜 생활 속에서 가까이 있어도 자주 만나지 못하는 가족들이 부모님을 모신 집에서 식사도 하고 조카들과 한데 어울려 즐길 수 있는 날이기도 하다.

    북한의 설날은 일 년 중 맛있는 음식을 배부르게 먹을 수 있고 남자들은 술에 취해 고달픈 삶을 하소연해도 꾸중하지 않고 들어주는 날이다.

    2012년 남한에 정착한 김용림씨는 "북한에는 설에 기본적으로 송편을 많이 빚어먹는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풍습에 송편에 넣을 팥고물을 푼푼하게 하면 한해는 풍족하게 살수 있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보통 입쌀 3kg에 드는 콩고물은 줄당콩 1kg이다. 줄당콩 고물은 떡 속에 넣어 먹으면 탈이 없지만 고물만 먹으면 배에서 꾸르륵 소리와 함께 심하면 설사도 한다. 보통 가정집들에서는 콩고물을 달게 하는데 설탕이 비싸다보니 사카린을 넣는다."고 말했다.

    김씨는 "설 전날 온 식구가 마주앉아 송편을 빚는다. 송편을 빚은 다음 고물이 남아야 좋은 징조이다. 부족하면 올 한해를 빠듯하게 산다는 풍습 때문에 늘 고물은 푼푼히 한다. 남은 콩고물은 달달한 맛에 아이들이 정신없이 퍼먹는다. 새벽쯤이면 콩고물을 먹은 아이들이 불안한 배를 붙들고 문짝에 불이 나게 화장실로 향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애들은 배고파도 아프다고 울고, 과식해도 설사난다고 운다. 아이들도 설날만 지나면 배불리 먹을 기회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엄마들은 설사하는 애들에게 약을 먹이고 침 맞으러 의사네 집으로 가면서도 애들을 꾸짖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음력설에는 만두를 많이 해먹는데 만두에 돼지비계가 들어가야 맛있다. 시장에서 사람들은 일부러 기름기가 많은 돼지비계를 사서 만두를 만든다. 만두에 돼지기름이 퍼지면 고소하고 먹을 맛이 난다."고 했다.

    그는 "만두는 설날에 먹을 수 있는 특식이다보니 고기도 드문히 씹히는 맛에 배가 터지게 먹는다. 식사가 끝난 다음에는 배부른 고통을 이기지 못해 한참 애를 먹는다. 심한 경우에는 설사도 그치지 않아 애를 먹지만, 배부른 고통은 행복한 고통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설이 지난 다음에 설사를 해서 홀쭉해진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설에 아팠냐고 물어보면 만두를 먹고 설사를 했다고 말했다. '설사를 할 바에는 먹지나 말지'라고 핀잔하는 사람들에게 '설사를 하더라도 배부르게 먹고 해서 원이 없다'고 답하곤 했다."고 말했다.

    한편 2013년에 탈북한 무산출신 김민성씨는 "설날은 술날이다. 이날만큼은 가는 곳마다 술대접이다. 이집에서 한 병 먹고 취한 기분에 아는 집은 다 거친다. 술에 만취되면 술이 목으로 넘어가는지 물이 넘어가는지 감각도 없다."고 했다.

    "술에 취한 다음날에는 아랫배가 슬슬 아파오면서 설사를 시작한다. 빈속에 술만 먹어서 술로 인한 체도 동시에 온다. 그런데 술 마시고 설사하거나 체를 당하면 술로 고쳐야 한다. 40도짜리 원주를 잔에 담아서 뜨겁게 데운다. 데운 술을 숨을 쉬지 않고 단번에 쭉 마시면 술 체도 떨어진다."고 했다.

    민성씨는 "과한 음주는 건강에 많은 해를 준다. 그때는 알면서도 술을 공짜로 마실 수 있다는 생각에 정신없이 먹곤 했다. 북한에서는 술을 마셔야만 고달픈 삶을 잊고 뜬 기분으로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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