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밀첩보부대의 장비, 임의로 사용한 해군 간부

    지난 3일 서해 태안반도 인근의 군 휴양지에서 군의 고속단정 1척이 뒤집히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 사고로 고속단정에 타고 있던 공군 소령 1명, 위관급 장교 2명, 부사관 2명, 군인가족 8명, 민간인 2명이 물에 빠졌다. 이 중 공군 소속 이 모 대위와 공군소령의 아내인 황 모 씨가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됐다. 이 대위는 결국 7일 병원에서 숨졌다.

    이 사고가 알려지자 언론들은 ‘천안함 사태가 일어난 지 100일도 지나지 않아 또 사고가 생겼다’며 군 기강 해이를 비판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대다수 독자들 또한 군의 기강해이 사고 정도로 이해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이 사고에는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사고가 난 부대가 바로 1급 기밀을 생산하는 첩보 부대라는 점이다.

    대북침투의 첨병, 국군정보사령부

    보도에 따르면 이 사고는 해군본부의 선배 대령으로부터 부탁을 받은 국군정보사령부 소속 부대장이 군 장교와 그 가족 등 민간인들을 고속단정에 태웠다 일어난 사고다.

    국군정보사령부는 6.25전쟁 이후 육해공군 별로 운영되던 대북첩보부대들을 1970년대 초 통합해 만든 첩보관련 사령부다. 원래 군의 첩보부대는 미군이 만들어 감독한 40여 개의 대북첩보부대, 채명신 장군이 이끌면서 놀라운 전과를 거뒀던 백골병단 등이 유명했지만, 6.25전쟁이 끝난 뒤 통폐합됐다.

    이후 1960년대 말까지 우리 군은 각 군별로 첩보부대를 운영했다. 인력 또한 민간인들을 일종의 계약직 요원으로 채용, 훈련시킨 뒤 북파하기도 했다. 이때 가장 많이 알려진 부대들이 돼지부대, 설악개발단, 양구개발단 등이다. 이들은 육군첩보대(Army Intelligence Unit)로 분류됐다.  

    해군은 진해에 본부를, 인천, 동해안 ○○지역에 분견대를 두고선 첩보부대를 운영했다. 사람들에게 노출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미군 UDT의 전신(前身) 명칭인 UDU(Underwater Demolition Unit, 수중폭파대)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공군도 23전대와 25전대라는 첩보부대를 운영했다. 이들은 숫적으로는 가장 적었지만 실력은 최고였다고 알려졌었다. 실미도 부대 또한 이런 이유로 공군에서 맡아 교육시켰던 것이다. 이들은 6.25전쟁 이후 방첩대와 혼동되면서 OSI(Office of Special Investigate, 특수수사대)로 불리기도 했다.  

    이들은 1970년대 명령계통 단일화와 효율성 강화를 위해 국군정보사령부 예하로 통폐합된다. 정식 명칭 또한 ○○○여단 등으로 바뀐다. 일부 첩보부대는 이때부터 HID(Headquarter of Intelligence Detachment, 정보사령부 분견대)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국군정보사령부는 이후로도 1980년대까지 북파임무를 수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언론을 통해 알려진 바에 따르면 1998년이 마지막으로 북한 영변 주변에서 방사능이 함유된 토양을 채취한 소속 장병들에 대한 단신이 나와 있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고 6.15공동선언이 채택된 이후에는 북파임무가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부대원들 또한 ‘특수정보부사관’이라는 이름의 정규군으로 임용, 훈련하고 있다. 이들은 지금도 동해와 서해, 남해 지역에 각각 ○개의 지역 부대를 만들어 놓고 부대원 양성장이나 훈련장, 주둔지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

    고속단정 사고, 문제가 되는 이유

    사고가 난 고속단정은 천안함 사태와 같이 긴급한 해상인명구조에도 사용되지만 원래는 적진 침투용으로 사용되는 특수 고무보트다. RIB(Rigid Inflatable Boat)라고도 부르는 고속단정은 서방국가 특수부대나 첩보부대들이 애용하는 대표적인 침투 장비다. 우리나라에서는 해군 UDT/SEAL과 해병대, 해경특공대에서 사용하고 있다.

    이번에 사고가 난 고속단정은 길이 7.7미터, 폭 2.9미터, 2.5~3톤 중량이며, 250마력 모터 2개로 운항한다. 최대 속도는 45노트(83km/h)에 이른다. 침투작전을 위해 M-60 기관총 2정을 거치할 수 있으며, 무장병력 13명까지 태울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국군정보사령부의 약사(略史)나 고속단정의 제원을 보면 이번 사고의 무대가 단순한 해군 부대 주변에서의 물놀이 사고만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특히 다음의 세 가지 부분은 짚고 넘어가야만 한다.

    우선 대북첩보부대의 특수 장비를 빌려 물놀이를 했다는 점, 둘째는 사고로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점, 셋째는 사고 부대의 위치와 임무가 언론을 통해 거의 대부분 드러나 군사보안 측면에서 심각한 위해가 되었다는 점이 문제다.

    고속단정은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단순한 물놀이 보트와는 차원이 다르다. 해병대가 사용하는 IBS와도 틀리다. 생산국가도 많지 않고 관리에도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장비를 물놀이로 사용하겠다고 빌려주라고 하고, 여기다 민간인까지 태우라고 한 해군 간부의 사고방식은 국민들은 물론 다른 장병들로부터도 분노를 사기 알맞다.

    특수 장비를 몰래 사용하다 사고가 나서 인명피해가 발생했다는 점도 문제다. 사고 시 고속단정을 조종한 이는 정보사령부 소속 상사. 대북침투부대의 특성 상 각종 장비를 능숙하게 다루는 건 필수다. 여기다 몰래 민간인까지 태우고 고속단정을 조종하는 사람이 사고를 냈다는 건 김대중 정권 이후 정보사령부의 훈련 강도에 의문을 표하게 만드는 것이다.

    마지막이 가장 큰 문제다. 대북침투부대는 김정일 정권의 최우선 타격 목표다. 동해 지역의 위장기업인 ○○○산과 같은 경우 북한군 미사일의 타격 0 순위다. 그런데 이번 사고를 통해 주변 주민들의 증언을 포함, 주요 언론이 해당 기지의 위치를 읍면 단위까지 모두 공개해버린 것이다. 이는 군의 보안의식이 어떤 수준으로까지 추락했나를 보여주는 것이다.

    고속단정 사고, 주의 깊게 봐야하는 이유

    이상의 세 가지 문제를 보면 이번 사고 관련자들에 대한 엄중한 문책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단 한 가지의 경우라면 예외를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정보사 요원들이 휴가를 얻어 가족들과 함께 고속단정에 탑승했을 경우다.

    마치 ‘도시전설’같은 대북첩보부대의 실체는 지금도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일부 해당부대 예비역들이나 관련 부대의 단편적인 증언만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는 그들이 타 부대와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훈련을 받으며 고통스런 군 생활을 한다는 점이다.

    실제 대북첩보부대를 관리하는 정보사령부의 작전요원들은 4년이 넘는 의무복무기간 동안 단 한 차례의 휴가만 받는다. 전역 후에도 3년 동안 해외여행은 물론 외국계 등 일부 기업에 대해서는 취업마저 제한받을 정도로 집중적인 보안 관리를 받는다.

    부대원 중 장기복무자들은 가족과의 여행은커녕 1년에 한두 번 만날 기회조차 없을 만큼 힘든 생활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초인적인 훈련을 받으면서 스트레스에 가득 찬 정보사령부 요원들이 오랜만에 가족들과 만나 회포를 풀면서 생긴 사고였다면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김권혁 국가정보학회 이사는 이 부분에 대해 “만약 정보사 요원들이 휴가 중 가족들과 오랜만에 만나다 일어난 사고라면, 이번 사고를 군기해이가 아니라 최정예 특수부대를 우리 군과 정부가 어떻게 대우하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로 봐야할 것”이라며 “최정예 특수부대에 대해 잘 모르는 언론의 일방적인 판단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이사는 “하지만 만약 해군본부 간부가 부탁했다는 이유로 정보사령부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들까지 포함된 단순한 물놀이에서의 사고였다면 사고 관련자를 엄중 문책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