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대한민국 건국의 재인식 ⓒ 뉴데일리
    ▲ 대한민국 건국의 재인식 ⓒ 뉴데일리

    광복절은 있어도 건국절은 없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일제 36년을 벗어난 해방의 환희가 너무 컸던 때문일까? 대한민국 사람 누구나 광복절은 기억해도 건국일을 기억하는 이는 드물다. 연령층이 내려갈수록 이러한 현상은 심해진다.

    요즘 대학생들에게 대한민국은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져 생긴 나라이다. 누구도 건국의 역사를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굳이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지난 10년의 좌파정권은 한술 더 떠서 대한민국은 태어나서는 안 되었던 나라로, 출발부터 잘못된 나라로 청소년들에게 각인시켰다. 부끄러운 나라 대한민국 만들기. 이것이 저들 친북, 종북 좌파들이 목표하는 고지였다. 그리고 그들은 이미 7부 능선을 넘었다.

    풍전등화의 대한민국이라는 고지릴 지키기 위해 안병훈 도서출판 기파랑 사장은 힘들고 외로운 싸움을 벌여왔다. 조선일보 부사장으로 재직하던 1995년 8월, 안 사장은 대형 기획 ‘대한민국-우리들의 이야기’전으로 '이승만과 나라세우기' 특별전시회를 진두 지휘했다. 광복 50주년을 기념하고, 국민들에게 대한민국의 건국과 발전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IMF로 온 국민이 실의에 빠져있을 때 ‘태극기를 답시다’라는 캠페인으로 국민들에게 나라사랑과 위기 극복의 용기를 북돋운 것도 안 사장이었다.

    이런 그가 지난 7월말 펴낸 ‘대한민국 건국의 재인식’은 ‘자랑스런 나라 대한민국 만들기’라는 신념의 산물이다. 880쪽의 방대한 분량의 이 책은 한 마디로 ‘국가 원로와 학자들이 들려주는 건국 이야기’다. 책에 실린 26편의 논문은 2007년과 2008년 여름 두 차례에 걸쳐 개최되었던 대한민국 건국 60주년 기념 학술회의에서 발표한 내용을 다시 정리한 것이다.

    필자의 한 사람인 이인호 교수(KAIST 김보정 석좌교수)는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국의 험난했던 역사를 애정 어린 긍정적 시각으로 바라보며 깊은 관심을 갖는 자세”라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애정 어린 긍정적 시각은 ‘자랑스런 내 나라 대한민국’의 출발점이다.

    이 교수는 “우리 역사 연구의 현실을 냉정하게 생각할 때, 건국의 경위나 과정을 비롯하여 대한민국 초기사에 관한 연구는 이제 시작단계”라고 지적하고, 이 책의 간행 의미를 “그간의 연구 성과를 집합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아직도 학문적 미개척지로 남아 있는 영역이 얼마나 방대하며 일반 국민의 선입견을 뛰어넘는 학자들의 끈질긴 탐구를 통해 밝혀져야 할 사실이 아직도 얼마나 많은가를 일깨워 주는 데 있다”고 밝히고 있다.

    역시 필자의 한 사람인 김영호 교수(성신여대 국제정치학과)는 책에서 대한민국의 건국의 의미를 ‘우리 민족사에서 전대미문의 혁명적 사건이었다’고 정의한다. 그는 “이전 왕조 국가들과 본질적으로 다른 근대화된 정치체제나 제도적 기반이 성립되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우리 한국인이 스스로 사회적 능력을 배양하여 자기 운명을 주도적으로 결정하고, 주권적 주체로서 정치적 결정을 내리는 근대적 개념의 국민으로 새롭게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해방 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로 출발한 대한민국이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원동력도 바로 그런 한국인 개개인의 존재론적 변화에서 비롯되었다는 해석이다.

    해방에서 건국까지는 3년의 시간이 소요됐다. 그 3년간 한반도에서는 벌어진 일들에 대해 우리는 몽매하다고 표현할 정도로 알지 못 한다. 2차 대전의 종전 이후 남한과 북한을 점령한 소련과 미국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당시의 상황은 어떤 것이었는지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다. 또 대한민국을 세운 건국의 아버지들은 어떤 사람이었으며 그들이 이룬 업적은 무엇일까? 우리의 공동가치인 대한민국 헌법은 어떻게 제정되었으며, 가장 근간이 된 원칙은 어떤 것이었을까? 이승만 정부 이래 여러 차례 정권이 교체되면서 전 세계가 놀라는 경제발전은 어떻게 이룩한 것일까? 건국에 이바지한 정치지도자와 기업인들의 역할은 무엇이었으며, 국제무대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은 어떻게 진화했을까? 그리고 우리에게 남은 선진화의 과제는 무엇일까?

    대한민국 건국 60년을 관통하는 이처럼 다양한 질문들을 이 책은 낱낱이 대답해주고 있다. 그리고 국내의 대표적인 연구자들만 아니라 미국, 중국, 일본 등 외국의 학자들도 참여해 각기 전문분야의 연구 결과를 총결집했다.

    유영익 교수는 기조연설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향유하는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자유는 대한민국 건국 초창기에 집권한 ‘국정주역들’이 갑신정변 갑오경장 독립협회로 이어지는 조선왕조의 근대적 개혁 전통과 독립운동가들의 신국가 건설의 청사진에 바탕을 두고 전체 국민의 사회적 능력(social capability)을 극대화함에 필요한 일련의 제도개혁을 단행함으로써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새로운 국민’을 창출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새로운 국민’이 없었으면 대한민국의 ‘기적적’인 발전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대한민국 초창기에 국정주역들이 추진하여 성사시킨 제도개혁은 한국 역사상 미증유의 ‘혁명적’ 개혁들이었다. 또한, 그것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탄생한 140여 다른 신생국에서는 대체로 시도되지 못한, 오로지 대한민국에서만 성공적으로 추진된 개혁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대한민국 초창기에 국정주역들에 의하여 추진된 제도개혁이야말로 한민족이 유사 이래 처음으로 누리는 경제적 풍요와 정치적 자유를 가능하게 만든 최대 요인임과 동시에 1945년 이후에 탄생한 여러 신생국 가운데 유독 대한민국만이 경제발전과 정치민주화를 달성할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근대화가 늦은 한국은 그 지각의 대가로 ‘36년 일제 식민지’라는 벌을 받았다. 하지만 해방 뒤 3년동안 만든 건국은 위대한 작품이었고, 그 바탕으로 오늘 한국의 성장이 가능했다는 것이 이 책의 여러 필자들의 공통된 주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동안 우리 학계며 정치인들은 이른바 '건국세력'에 대해 숱한 폄하와 왜곡을 자행해 왔다. 이 책은 그를 시정할 필요성에 공감한 정치학자며 역사학자들의 그릇된 사관(史觀) 바로잡기의 의미도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이승만 박사가 '권력에 굶주린 사람(power-hunger)'일 뿐이었다든가, 남한 단독정부 수립이 잘못 꿰어진 단추라든지 하는 극단적 매도에 대한 반박이며 극복 작업이기도 하다. 또 해방 정국의 국제관계적 맥락을 강조해 국내적 관점에 집중해 온 기존의 연구경향에 균형을 잡이주기도 했다.

    이 책은 모두 다섯 장으로 구성됐다. 1부 ‘대한민국 탄생의 국제정치적 배경’에서는 건국에 이르는 과정에서 전개됐던 강대국들 사이의 국제정치, 미국과 건국세력 간의 교류, 소련의 한반도 전략 등을 살폈다. 특히 최근 공개된 소련 외교문서들을 분석하여 기존 '남한의 단정(單政) 책임론'을 전면적으로 부정했다. 

    2부 '대한민국 건국을 둘러싼 다양한 구상과 인식'에서는 해방 정국에서 활동했던 여러 정파의 구상과 의도들을 분석하고 당시 한국인들의 삶을 규정했던 주요 가치들을 점검했다.

    3부 '민주공화국의 탄생: 이승만의 건국노선'에서는 대한민국 출범의 주역이었던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구상과 업적을 재조명하고, 그의 단선단정론(單選單政論)의 배경을 심층 분석했다.

    4부 '민주공화국 건설을 위한 기초작업과 그 평가'에서는 제헌헌법의 성립과정과 의미, 헌법이 규정한 근대적 의미의 '국민' 개념, 미국과 미군정의 역할, 대한민국 국군의 탄생 과정, 대한민국에 대한 국가론적 이해 등을 다루었다.

    5부 '대한민국 건국의 의의'에서는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건국 사례들을 분석하고 대한민국 건국에 대한 일본의 반응, 미국의 한국 방어전략 변천 과정 등을 살폈다.

    캐스린 웨더스비는 ‘미국과 소련 그리고 대한민국 건국’ 장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의 엄청나게 유리한 조건은 자연히 더욱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안정되고, 경제적으로 역동적이며, 문화적으로 힘찬 사회를 이룩한 대한민국의 성공은 냉전의 종식이 낳은 지역적 구조를 바꾸어 놓을 기회와 맞물려 2차 대전이후 어느 때보다도 평화와 번영을 누릴 수 있는 유리한 환경을 조성했다. 이제 한국이 이런 새로운 기회의 활용을 통해 리더십을 제공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이 지역 모든 국가에 유리한 발전을 의미하며, 대한민국 건국 60년을 기념할 훌륭한 이유가 되는 것이다.”

    책 이름 그대로 건국에 대한 재인식은 정말 필요한 작업이다. 특히 치열한 이념전쟁이 치러지고 있는 오늘의 대한민국에서는 더욱 그렇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만들기’만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지키기’이기도 한 절실한 작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