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월 25일 우리나라 최초의 이지스 구축함인 '세종대왕함'이 진수되었다. 미국, 일본, 스페인, 노르웨이에 이어 세계에서 다섯 번째다. 7000톤급 이상의 본격적인 이지스함을 보유한 나라로 치면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 번째다. 7600톤급의 세종대왕함은 성능과 크기에서 미국, 일본이 보유하고 있는 이지스함을 능가하고 있어 우리의 조선 기술과 국방과학 기술의 쾌거라고 할 수 있다. 이지스란 초현대식 레이더, 컴퓨터, 미사일 기술이 종합된 무기체계로서 1000km 밖에 있는 적의 항공기와 미사일, 군함과 잠수함 등 수백 개의 표적을 동시에 추적, 격파할 수 있어 바다의 전자군단이라고도 불린다.

    2005년 7월 12일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대형상륙함(LPX)인 '독도함'이 진수되었다. 독도함은 미국, 영국, 프랑스를 제외하고는 세계 2위의 해군강국인 일본이나 중국, 러시아와 같은 군사강국들도 아직 갖고 있지 못한 대형상륙함으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상륙작전 능력을 가진 미국 와스프급 상륙모함(LHD)의 축소판으로 불리기도 한다. 1만 4000톤급의 독도함은 항공과 해상을 통한 입체적인 상륙작전이 가능하며 향후 이지스함과 한국형 구축함(KDX-Ⅱ) 등으로 구성될 전략기동함대의 지휘함 역할도 하게 될 예정이다. 이제 우리 해군은 대형상륙함과 이지즈함의 보유로 대양해군(大洋海軍)의 꿈과 목표를 향한 가슴 벅찬 첫 걸음을 내딛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는 결코 흥분할 일이 아니다. 우리는 이제야 겨우 해군력 증강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일본과 중국을 비롯한 주변 강국들을 쫓아가기 시작한 것일 뿐이다. 일본은 '1000 해리 전수방위전략'을 추진하고 있고 중국은 근해방어에서 원거리 전진방어로 전략개념을 수정하고 대양작전이 가능한 함대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본은 냉전 종식 이후 세계에서 군사비를 가장 많이 증액한 나라 중의 하나이다. 수출입 화물의 99%를 해상 수송이 담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해군력 강화가 필수적이라는 전제 아래 현재 보유하고 있는 5척의 이지즈함을 8척으로 늘릴 계획이며 헬기 탑재가 가능한 1만 3500톤급 구축함 4척도 건조 중이다. 이들 구축함은 유사시 경(輕)항공모함의 역할을 할 것으로 관측된다.

    중국 또한 지난 10년 간 연평균 17%씩 국방비를 증액한 나라로서 2050년까지 대양해군으로 탈바꿈하기 위한 3단계 발전계획을 추진 중이다. 3단계 발전계획이 완료되면 항공모함을 보유한 중국 해군의 활동 범위는 미군의 동북아 군사 허브인 괌에까지 이르게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들어 민족주의 성향을 보이고 있는 중국은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주도 아래 강력한 해양대국을 추구하고 있다. 이를 위해 2015년까지 항공모함전단을 구축해 대만해협에 대한 제해권을 확보한다는 구상 아래 현재 4척의 중국형 이지즈함을 건조 중이며 2016년까지 항공모함 3척을 보유할 계획이다.

    이처럼 주변 강국들이 해군력 증강에 열을 올리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대형상륙함과 이지스함을 보유한 것은 당연히 취해야 할 전략적 선택인 것이다. 이는 중소형 함정 위주로 편성된 우리의 기존 해군력이 대폭 강화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반도국가인 우리나라가 해군력을 강화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우리에게 해상 수송로이자 자원 보급로인 바다는 평화시에는 해외교역의 통로이자 전시에는 전략적인 생명선(生命線)으로 국가의 존망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와 전략물자를 포함하는 우리나라 수출입 화물의 99.8%가 바다를 통해 수송되고 있는 현실이 이를 입증한다.

    또한 육지자원의 고갈에 따라 해양자원과 관련한 해양주권 문제가 점차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향후 본격적으로 전개될 해양자원 개발과 관련하여 주변 국가와의 이익 확보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질 전망이다. 게다가 한반도 통일 과정에서 주변 국가 간의 동북아 세력 경쟁이 더욱 심화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에 비추어 볼 때 향후 우리 해군은 전통적인 군사안보 영역을 넘어 해양 수송로와 해양주권을 포함하는 경제안보까지 담당하는 실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이상과 같은 환경 변화에 비추어 우리 해군의 획기적인 성장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 우리는 바다의 보호를 대부분 미국 해군에 의존해 왔다. 열악한 우리 해군력으로는 대양에서 작전하기가 힘에 겨웠기 때문이다. 이제 경제와 안보 차원의 생존전략을 고려해 볼 때 우리는 환경 변화에 걸맞은 새로운 전략개념 하에 해군의 역할을 설정하고 그에 합당한 수준의 해군력을 갖추어 나가야 한다. 그것은 바로 21세기 우리 해군을 국가의 안전과 번영의 수호자로서 해양통제 수준의 작전능력을 갖춘 대양해군으로 성장시키는 일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아직 주변 강국들의 해군에 대한 억제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우리는 향후 이들 국가와 동일한 수준의 해군력은 아니더라도 이들을 억제할 수 있는 능력만은 갖추고 있어야 한다.

    '강대국의 흥망'을 쓴 저명한 역사학자인 폴 케네디 교수는 작년 9월 14일 미래국가해양전략포럼의 기조연설을 통해 한국이 해양강국의 여건을 갖고는 있지만 향후 군사력의 뒷받침이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한 국가의 해양산업은 국가의 물리적 보호장치인 해군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발전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고 "한국의 해군전력이 아직 대양해군이라고는 할 수 없기 때문에 에너지와 상품 수송로의 보호라는 안보 측면의 관심이 더 필요하다"고 조언했다.(2006. 9. 14, 연합뉴스)

    이제 대형상륙함과 이지즈함의 보유로 대양해군을 향해 첫 걸음을 내딛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는 국가 차원의 종합적인 해양전략과 정책을 마련하고 이를 총괄할 수 있는 컨트롤 타워를 만들 필요가 있다. 해양이익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해군력이 더욱 중요해지는 상황에서 해군의 현대화, 자동화, 정보화도 더욱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전통적인 육군 위주의 안보전략을 넘어 육해공군의 균형적인 발전을 추구할 수 있도록 사고의 전환과 한정된 예산의 효율적 분배가 절실하다. 전통적으로 한 나라의 해군력은 국제사회에서의 정치력이었다. 우리가 처한 상황도 예외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