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5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양상훈 정치부장이 쓴 '남한의 그라운드 제로'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미국인들은 9·11 테러로 무너진 뉴욕 세계무역센터 빌딩 자리를 ‘그라운드 제로(폭탄 낙하지점)’라고 부른다. 그 높은 빌딩이 무너져 높이가 제로가 된 곳, 초대형 테러 한 방에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와버린 현장이다. 북한의 핵실험은 남한을 그라운드 제로로 만들었다.

    우리 군은 북한 핵실험 후 8년 만에 중부전선에서 대규모 화력 시범을 실시했다. 대·소 구경의 MLRS(다연장로켓포), 120㎜ 신형 주포를 앞세운 K1A1 전차, 산기슭 전체를 단 한번에 초토화시키는 전투기의 지상 폭격, 컴퓨터로 정밀 조준되는 자주 대공포, 육군 항공기갑부대의 화력 등이 총동원됐다.

    안보 불안을 달래기 위해 실시됐을 이 화력 시범의 현장엔 그러나 허탈한 기운이 감도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우리가 수십년 동안 피와 땀을 바쳐 건설한 이 모든 전쟁 억지력이 북한 핵폭탄 한 방에 무용지물, 그야말로 그라운드 제로가 되고 말았다.

    어느 날 한반도에 최악의 순간이 닥쳤을 때 북한의 낡은 수송기가 구식 핵폭탄 하나를 싣고 저공으로 휴전선을 넘어와 수도권 어느 곳에 착륙한다면? 그들이 ‘북·남 제정당 사회단체 연석회의’ 개최를 주장하면서 자폭을 위협한다면 그 앞에서 남한의 정밀 군사력은 제로가 될 수밖에 없다.

    북한 핵실험은 남한 정치의 밑바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사태에 책임을 느껴야 할 전직 대통령 한 사람은 자신의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지역 감정에 의지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 시도가 성공할 것이라고 예감한 정권 세력은 즉각 거기에 가세하고 있고, 대선 표 계산에 바쁜 야당은 얄팍한 주판알을 튕기고 있다. 이 나라의 정치는 그 본질에서 나라에 이익이 아니라 해악을 끼칠 가능성을 여전히 안고 있다. 북한의 핵폭탄에 의해 우리 정치의 가면이 벗겨지자 그 추한 그라운드 제로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북한 핵실험은 우리가 지난 수십년 간 쌓아 올려온 경제적 성과 전체도 한순간에 그라운드 제로로 바뀔 수 있다는 공포를 던져 주었다. 지금 당장 주식시장이 괜찮다고 하지만, 김정일의 핵 폭탄이 없어지는 그 순간까지 핵 인질 신세를 면할 수 없다는 사실은 앞으로 넓고도 깊게 우리 경제에 그림자를 드리울 것이다.

    북한이 핵실험을 한 그날 이후 정부의 외교는 그라운드 제로 상태다. 미국에 허장성세를 부리다가 한순간에 애걸복걸하는 처지로 바뀌었다. 우리 자주(自主) 국방장관은 미국 국방장관 앞에서 망신스러운 모습까지 보였다. 앞으로 무엇을 하든 국제사회와 주변 강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심지어는 “북핵으로 우리는 주권이 없어졌다”고 말하는 사람까지 있다.

    남한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삶도 그라운드 제로의 공포를 피할 수 없게 됐다. 모두가 그 한계에 가위눌리며 살 수밖에 없다. 죽음의 공포만이 아니다. 어느 국회의원이 말했듯이 한반도 상공 높은 고도(高度)에서 핵폭발이 일어날 경우 전자기 폭풍이 일어나 모든 컴퓨터를 망가뜨리게 된다. 그것은 우리 군사 무기들을 고철로 만드는 것 외에 지금 금융기관에 들어 있는 모든 사람의 예금과 거래 기록을 ‘0’로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거기에 대한 대비는 아무 것도 없다. 그야말로 모두의 그라운드 제로다.

    북한 핵실험으로 한 가지 분명해진 것은 이제 ‘설마’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북한의 핵실험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설마’의 영역에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김정일과 남북 정상회담을 하고 돌아와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험이 사라졌다는 식으로 선언했다. 북한은 그 순간에도 플루토늄을 모으고 우라늄을 농축시키고 있었다. 북한에 대한 허망한 낭만주의, 북한을 이용하는 정략도 그라운드 제로를 맞았다.

    우리는 핵이라는 이 악몽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가장 먼저 우리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를 알아야만 한다. 우리는 싫든 좋든 모두가 차가운 밑바닥, 그라운드 제로 위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