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사업법 제57조… 모든 방산물자는 수출 시 방사청장 허가 필요제출 서류 '최종사용자 증명서'에 "설명 목적으로만 사용해야" 명시수입국만 사용… 한국 허락 없이 제3국에 양도할 수도 없어수입국, 자국 탄약 우크라 주고… 한국 탄약으로 채울 땐 해법 모호
  • ▲ 지난달 31일(현지시간) 폴란드에서 진행된 폴란드형 K2 전차 생산·납품 사업을 진행하기 위한 컨소시엄 이행합의서 체결식에서 조현기(사진 왼쪽부터) 방위사업청 기반전력사업본부장, 안경수 현대로템 디펜스솔루션사업본부장(전무), 세바스찬 흐바웩 PGZ 회장, 마리우시 브와슈차크 폴란드 부총리 겸 국방부 장관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현대로템
    ▲ 지난달 31일(현지시간) 폴란드에서 진행된 폴란드형 K2 전차 생산·납품 사업을 진행하기 위한 컨소시엄 이행합의서 체결식에서 조현기(사진 왼쪽부터) 방위사업청 기반전력사업본부장, 안경수 현대로템 디펜스솔루션사업본부장(전무), 세바스찬 흐바웩 PGZ 회장, 마리우시 브와슈차크 폴란드 부총리 겸 국방부 장관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현대로템
    "폴란드 수출 건은 우크라이나 우회지원이 아니며, 해당 전차탄 및 기관총탄의 최종 사용자는 폴란드입니다."

    방위사업청이 19일 늦은 밤 기자들에게 보낸 공지 내용이다. 

    방산업체인 풍산은 지난해 12월27일 현대로템에 2934억원 상당의 대구경 탄약 등 430만 발을  2027년 12월31일까지 공급하기로 계약했다고 공시했는데, 이 내용을 두고 한 언론은 이날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현대로템이 폴란드로 보내는 기관총탄과 전차포탄, 반응장갑의 계약 공시"라고 보도했다.

    방사청은 해당 보도와 관련 "폴란드 전차탄 등 수출은 폴란드 군 현대화 및 자국 전력 증강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지난해 11월10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한미 간 비밀협상을 해 미국이 155mm 곡사포 포탄 10만 발을 한국에서 구매하기로 했다"고 보도하자, 국방부는 역시 "미국을 최종 사용자로 한다는 전제하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국방부 대변인실은 "미국 내 부족해진 155mm 탄약 재고량을 보충하기 위해 미국과 우리 업체 간 탄약 수출 협의가 진행 중"이라며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정부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우회지원'은 최근 한국의 방산물자 수출 과정에서 끊임없이 논란이 되는 사안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전쟁을 벌이고 있는 요즘 같은 국제정세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해당 논란에 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최종 사용자'다. 

    우리나라 방산업체는 방위사업법 제57조에 따라 모든 방산물자 수출 시 방사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 조건 중 하나로 수입국의 서명이 담긴 '최종 사용자 증명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내용에는 수출품을 설명한 목적으로만 사용하며, 제3자에게 양도하거나 할 때 수출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미국과 폴란드에 각각 수출된 국산 탄약은 각각 그 국가만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미국·폴란드가 자국 군대를 우크라이나에 파견해 러시아군과 직접 전투를 벌이지 않는 이상, 우크라이나전쟁에 사용할 수는 없다. 물론, 러시아가 미국이나 폴란드를 침공할 경우에는 수입한 한국산 탄약을 사용할 수 있다.
  • ▲ 국내 방산업체가 방산물자 수출 시 방사청장의 허가를 받기 위해 제출해야 하는 '최종사용자 증명서'.
    ▲ 국내 방산업체가 방산물자 수출 시 방사청장의 허가를 받기 위해 제출해야 하는 '최종사용자 증명서'.
    이 같은 '최종 사용자' 조건을 어길 경우에는 수출 금지 및 물자 공급 중단 등으로 제재할 수 있다는 것이 방사청의 설명이다. 

    방사청 관계자는 "(수출된 물자의 용도 이외 사용을) 적극적으로 조사하거나 할 수는 없지만, 이를 알게 됐을 경우 조사가 들어간다"며 "경우에 따라 다를 수 있겠으나, 수출한 방산업체를 국내법으로 제재할 수 있으며, 수입국에 대해서도 제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실상 한국에서 수출된 탄약들이 실제 우크라이나전쟁에 사용되지 않는데도 '우크라이나 우회지원' 논란이 계속되는 이유는 수입국들이 자국 탄약을 우크라이나전쟁에 사용한 뒤 한국산 탄약으로 채워넣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로부터 탄약을 수입한 미국은 우크라이나전쟁에 100만 발의 155mm 탄약을 사용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폴란드 역시 우크라이나에 군사적 지원을 이어가고 있어 미국·나토(NATO)와 함께 러시아로부터 적대국으로 분류되고 있다. 군 안팎에서는 우리나라가 지난해 K2 전차와 K9 자주포 등을 폴란드에 수출함으로써 폴란드가 기존에 보유했던 무기들이 우크라이나로 넘어갈 수 있었다는 해석도 있다.

    그렇기에 미국과 폴란드가 우크라이나전쟁에서 이미 사용했거나 앞으로 사용할 탄약을 한국으로부터 수입하고 있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한 상황이다. 덩달아 이들 국가에 방산물자를 수출하는 한국이 사실상 우크라이나를 돕고 있는 것처럼 비치는 것도 해석 여부에 따라 가능할 수 있다. 

    미국과 폴란드는 자국 탄약으로 우크라이나를 돕고, 우리나라는 다시 미국과 폴란드를 돕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결국 우크라이나를 돕는 것과 다름없다는 주장이다.

    당장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해 10월27일(현지시간) 모스크바에서 열린 세계 러시아 전문가 모임인 '발다이클럽' 회의에 참석해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와 탄약을 제공하기로 결정한 것을 알고 있다"며 "그렇게 하면 우리(한·러) 관계를 파탄낼 것"이라고 경고까지 했다. 

    방산업체인 한화디펜스가 폴란드에 다연장 로켓 '천무' 288대와 유도탄 수출 계약 등을 비롯, 58억 달러 상당의 탱크 등 군사무기 판매를 계약한 상황에서 나온 반응이었다.

    또한 지난 19일 윤석열 대통령이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공격, 학살, 심각한 전쟁법 위반과 같이 국제사회가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 있다면, 우리가 인도주의적 또는 재정적 지원만 고집하는 것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언급하자,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크렘린궁 대변인은 기자회견을 통해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한다면 한반도 상황에 대한 러시아의 접근법에도 영향이 미칠 수 있다"며 재차 경고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이 특정 조건에 한해 무기 지원까지 시사하자 러시아는 "공공연한 반러 적대행위로 간주할 것"이라고 위협한 것이다.

    군 당국은 이 같은 논란에도 여전히 "우크라이나전쟁에 살상무기 지원은 없다"는 기존의 원론적 방침을 반복하고 있다.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20일 국방부 정례 브리핑에서 "(우크라이나 우회지원) 입장에 대해서 여러 번 말씀을 드렸다.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정부 방침에는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