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나왔다, 우리도 국민이다"… 수천 대 차량, 경적 이용해 SOS 구조신호'딱지' 떼고 견인차 부르고… 경찰, '자영업자 생존시위'에 강경대응"민주노총 때는 한 번도 막지 않더니… 우리는 그냥 죽으란 말인가" 시위대 분통
  • ▲ 지난 8일 오후 10시 50분 양화대교 북단 진입로로 들어가는 차량이 일렬로 늘어서서 경찰의 검문을 기다리고 있다. ⓒ정상윤 기자
    ▲ 지난 8일 오후 10시 50분 양화대교 북단 진입로로 들어가는 차량이 일렬로 늘어서서 경찰의 검문을 기다리고 있다. ⓒ정상윤 기자
    "빵 빵 빵, 빵~ 빵~ 빵~, 빵 빵 빵."

    짧은 경적 세 번, 긴 경적 세 번, 다시 짧은 경적 세 번. "이렇게는 못 산다"며 국회 옆 둔치 주차장 앞에 모인 자영업들이 자동차 경적으로 보낸 SOS 구조 신호다. 한 자영업자는 이를 '우리의 울부짖음'이라고 했고, 또 다른 자영업자는 '마지막 외침'이라고 호소했다. 

    8일 밤 비상등 켜고 차량시위… 경찰, 차량 사진 찍으며 강경대응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8일 오후 11시10분부터 서울 일대에서 차량시위를 진행했다. 수도권 지역에서 영업하는 자영업자들이 일과를 마치고 차를 타고 속속 모여들었다. 

    이들은 일렬로 늘어서서 비상등을 켜고 시속 20~40km 수준으로 서행했다. 서울 마포구 양화대교 북단에서 출발해 한남대교를 지나 여의도에 집결할 계획이었다.

    배수진을 치고 거리로 나선 자영업자들을 경찰이 막아섰다. 예상 집결시간보다 1시간 이른 8일 오후 10시, 양화대교 북단 입구에는 이미 경찰 30여 명이 배치됐다. 경찰은 비상등을 켠 차들을 멈춰 세우고 시위 참가 여부를 확인했다. 

    원효대교 아래에서는 경찰이 일일이 차량 사진을 찍었다. 현장의 한 경찰관은 "비상등을 켠 차를 대상으로 귀가를 권고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의 검문으로 교통체증이 생겼다. 서울 노원구에서 호프집을 운영하는 박모(42) 씨는 "죽음을 각오하고 나온 자영업자들에게 정부가 겁을 주는 꼴이 치졸해 보인다"며 실소를 터뜨렸다.

    자정을 넘은 시각, 집결지인 서울 여의도 신한금융투자타워 주변에는 200명이 넘는 경찰병력이 모였다. 여의도 진입 경로 중 하나인 서울교로 출입하는 차량은 모두 검문을 당했다. 

    경찰이 강경대응으로 일관하자 자대위는 집결 장소를 변경했다. 9일 0시40분에는 서울 여의도공원으로, 오전 1시30분이 넘은 시간에는 국회 옆 둔치 주차장이 집결 장소가 됐다.
  • ▲ 9일 새벽 12시 30분 경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자대위) 주최로 진행된 차량시위를 통제하기 위해 서울 영등포구 서울교에서 경찰들이 대기하고 있다. ⓒ정상윤 기자
    ▲ 9일 새벽 12시 30분 경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자대위) 주최로 진행된 차량시위를 통제하기 위해 서울 영등포구 서울교에서 경찰들이 대기하고 있다. ⓒ정상윤 기자
    "인건비도 나오지 않는데 1년6개월 버텼다 우리도 국민이 맞나"

    자대위는 "우리가 과연 정부에 평등한 국민인가"라고 따져 물으며 "생업에 매달리지 못하고 잠 못 드는 밤 차를 끌고 나온 우리의 행위가 범법인가? 헌법에 명시된 자유를 억압하며 지킬 수 없는 규제를 강요하는 그대들의 행위가 범법인가"라고 반발했다.

    서울 서초동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김모(38) 씨는 "코로나 이후 매출이 10% 수준으로 감소했다"며 "인건비도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1년6개월을 버텼는데, 정부는 우리를 여전히 옥죄려고만 한다"고 개탄했다.

    부천시 중동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박모(40) 씨도 "민주노총 때는 한 번도 막지 않던 경찰이 개별적으로 하는 차량시위를 탄압한다"며 "우리는 그냥 죽으라는 말인가"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새벽까지 시위에 참여한 김모(52) 씨는 "경찰이 과격한 시위를 조장한다"며 "평화적으로 진행돼 오전 1시면 끝났을 시위를 경찰이 검문하고 단속하면서 반발심을 만들어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영업자들의 요구사항은 △위드 코로나로 신속한 전환 △확진자 수 중심의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를 중증 환자 수 및 사망률 등 치명률 중심으로 개편 △다중이용 업종에만 강제되는 영업시간 규제 철폐 △인원 제한 규정 폐지 △손실보상위원회에 자영업자 참여 △신속한 손실 보상 등이다.
  • ▲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 (자대위)의 본래 집결지인 여의도 신한금융투자타워 인근에서 한 자영업자가 '자영업‧소상공인만 죽이는 K-방역, 우리도 살아야 한다'는 문구의 현수막을 들고 있다. ⓒ이건율 기자
    ▲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 (자대위)의 본래 집결지인 여의도 신한금융투자타워 인근에서 한 자영업자가 '자영업‧소상공인만 죽이는 K-방역, 우리도 살아야 한다'는 문구의 현수막을 들고 있다. ⓒ이건율 기자
    국힘 "자영업자 평화적 방식으로 항의하는데 경찰 대응 과도하다"

    자대위가 집결한 여의도 신한금융투자타워 앞에는 정치인들도 나와 힘을 보탰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은 국가를 믿어서 엄청난 손실을 봤다"며 "차량시위라는 평화적 방식으로 항의하는 사람들을 경찰이 이런 식으로 통제하는 등 믿기 어려운 대처를 하는 것이 지금의 정부"라고 질타했다.

    최재형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도 현장에 나와 "사람을 죽이는 방역대책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방역대책이 필요하다"며 "국가의 방역대책에 따른 자영업자들의 피해는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원희룡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는 "정부는 자영업자들이 희망회복자금을 다 받은 것처럼 홍보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며 "실제로 교묘한 인원 제한, 시간 제한을 가진 자영업자들은 최소한의 소액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황교안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는 "문 대통령은 지금 자영업자들의 눈물을 봐야 한다"면서 "지금 누가 길을 막고 있는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게 일할 자유, 영업할 자유를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 9일 경찰 검문에 의해 교통 체증을 겪고 있는 차량들. ⓒ정상윤 기자
    ▲ 9일 경찰 검문에 의해 교통 체증을 겪고 있는 차량들. ⓒ정상윤 기자
    자대위 "올바른 정책 수립 전까지 모든 행정규제를 당장 철폐하라"

    자대위는 공식 성명을 통해 "자영업자가 운영하는 다중이용시설에서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비율이 20%에 불과함에도 정부는 지난 1년6개월간 집합금지, 집합제한 등 자영업자만 때려잡는 방역정책으로 일관했다"며 "이에 자영업자는 지난 1년6개월간 66조원이 넘는 빚을 떠안았고 45만3000개의 매장을 폐업했다"고 토로했다.

    자대위는 "차량시위에 차를 끌고 나온 이들은 헤어나오지 못할 늪으로 계속 던져대는 정부의 행위를 감내할 수 없는 국민들"이라면서 "현재까지 방만한 태도로 방역체제 변환을 준비하지 못한 정부의 책임과 백신 공급 차질에 따라 발생하는 피해를 여전히 자영업종이 떠안도록 강요되는 현실을 더 이상 감내할 수 없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올바른 위드 코로나 정책 수립 전까지 현재 자영업종에만 규제 일변도인 모든 행정규제를 당장 철폐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9일 오전 1시까지 진행할 예정이었던 차량시위는 이를 막으려는 경찰과 승강이를 벌이다 9일 오전 3시쯤 끝났다. 경찰은 자영업자들이 '교통방해'를 유발한다며 '딱지'를 뗐고, 견인차를 불러 위협했다. 경찰은 서울 시내에는 1인시위를 제외한 모든 집회가 금지된 상태라는 견해다.

    이날 자대위의 차량시위는 서울 외에도 부산·울산·전북·전남/광주·경남·충북·대전/충남·강원 등의 지역에서 동시에 진행됐다. 주최 측 추산 서울 지역에서만 4000명, 전국에서는 5000명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