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총회 참석 앞두고 언론중재법에 대한 국제사회 우려도 고려한 듯국힘 김기현 "독소조항 폐기가 올바른 길… 국민도 심각성 살펴봐 달라"
  •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국회 처리가 27일로 연기된 가운데, 이번 여야 합의에 문재인 대통령의 '의견 개진'이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수개월 째 '언론법 개정은 국회의 몫'이라며 사실상 견해 표명을 거부해온 청와대 내부 기류가 순식간에 바뀐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정치권에서는 갖가지 해석이 나온다.

    "언론중재법 강행 시 유엔 총회에서 국제적 망신 당할 수 있어"

    우선 이달 하순 문 대통령의 유엔 총회 참석을 앞두고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가 지난달 30일 외교부를 거쳐 문화체육관광부에 공문을 보내 "한국의 언론 자유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 것이 문 대통령 심경 변화의 계기가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의 유엔 총회 참석이 유력한 가운데 언론중재법 강행처리에 따른 국제사회의 인권 비판이 부담스러웠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이철희 정무수석이 국회를 찾아 여당 의원들과 접점을 늘리며 문 대통령의 우려를 직접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비영리 인권단체인 전환기정의워킹그룹은 지난달 24일 한국의 언론중재법에 따른 우려를 포함한 진정을 유엔에 제출했다. 이에 유엔 측은 한국정부에 이 문제에 관한 의견을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관계자는 "국회의 시간이 27일로 연장됐다"며 "국회에서 논의하는 과정이고 결정된 것이 없다. 국회 논의 결과에 따라 해당 부처와 협의해 답변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유엔 총회 참석과 관련해서는 "남북한 유엔 가입 30주년을 맞이하는 의미가 있는 해이기에 국제 외교무대에서 남북한이 평화 메시지를 동시에 발신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라며 "제반 상황을 고려해 유엔 총회 참석이 걸정될 것"이라고 답했다.

    문 대통령은 이번 유엔 총회에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향한 국제사회의 지지를 호소하는 한편 대북 메시지도 낼 것으로 전해졌다.

    대선 패배 염려한 위기의식도 작동한 듯

    청와대 측은 예산 심사를 위한 정기국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를 전달한 것이지, 다른 부분은 일절 고려하지 않았다는 태도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청와대의 일관된 입장은 국회가 논의할 사항이라는 것"이라면서도 "청와대는 그 법안의 처리를 둘러싼 국회의 상황에 대한 우려를 정무수석이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내년도 예산안은 위기 극복의 예산이고, 선도국가로 도약할 수 있는 도약예산이고, 사회적 포용예산이며, 확장적 재정과 재정의 건전성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면서 "임기 마지막에 처리해야 할 국정과제 (완수)를 위해 원만하고 생산적인 국회가 되는 것이 국정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 정기국회 상황에 대한 우려를 전달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 이철희 정무수석이 해당 역할을 했는지는 "확인해 주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청와대의 결정이 다분히 선거를 의식한 행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여·야 국회의원 2명씩과 각 당 추천 언론계·법조계 인사가 2명씩 참여해 협의체를 구성하더라도 기존 법안의 범위를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개정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민주당은 '5배 징벌적 손해배상'은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 역시 "본회의 처리를 위한 수정안이기 때문에 기존 법안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 '시간 벌기'로 좋지 않은 민심을 잠시 비껴가면서 원안은 고수하겠다는 것이다.

    청와대 역시 '예산 심사'를 명분으로 삼았지만, 대선에 미칠 악영향에 따른 위기의식도 '중재' 결정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위기의식은 여권 원로들의 발언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김원기·임채정· 문희상 상임고문 등 여권 원로들은 "쥐를 잡다 독 깬다" "언론중재법은 사회적 합의로 처리해야 한다"고 '속도 조절'을 주문했다.

    특히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은 지난 4·7 재·보궐선거를 언급하며 “180석의 위력을 과시하고 독주하는 것처럼 하다가 결국 4월7일에 심판받은 것 아니냐”며 "내년 3월9일(대통령선거일)이 같은 밤이 안 되려면 4월7일을 잊지 말라”고 '강행처리'를 우려했다.

    이번 청와대 '중재론'과 관련,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대선에 대한 위기의식과 함께 유엔 총회 등에서 국제사회로부터 받을 수 있는 비판 등이 청와대의 태도를 급변시킨 것으로 보이지만, 어차피 '시간 끌기'에 불과하다"며 "이 법의 독소조항은 반드시 폐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위헌 가능성과 이 법이 문재인 독재정권의 토대가 될 것이라는 점을 남은 기간 동안 부각하는데 힘쓰겠다"며 "국민께서도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사안인지 살펴봐 달라는 부탁도 드리고 싶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