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국정원 특활비 혐의 2건 중 1건 유죄… 박재완 정무수석 '오락가락' 진술과 '가능성'만으로 유죄 판결한 항소심 재판부
  • ▲ 이명박 전 대통령.ⓒ뉴데일리DB
    ▲ 이명박 전 대통령.ⓒ뉴데일리DB
    검찰은 MB가 총 4차례에 걸쳐 국가정보원(국정원) 자금을 수수했다며 기소했다. 이중 2008년 초 김성호 국정원장 시절 있었던 사건은 2건이다.

    1차 수수는 2008년 3~5월경 국정원 자금 2억원을 받아 한나라당 초선 의원들의 선거자금으로 지원했다는 혐의다. 2차 수수는 2008년 4~5월경 2억원을 받아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에게 업무보조비로 지원했다는 혐의다.

    먼저 1차 수수 혐의를 살펴보면,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김백준은 검찰조사에서 ▲당시 총선을 앞두고 정무수석이었던 박재완이 돈이 많이 든다며 어려움을 토로했고, ▲이에 김백준은 박재완과 함께 MB를 찾아가 국정원 특활비를 받기로 논의했으며, ▲김백준은 대통령 집무실에서 MB로부터 국정원 특활비 2억원을 받아, ▲부하직원을 시켜 박재완에게 건넸다고 진술했다.

    이 같은 김백준의 진술이 허위임은 이전 글에서 설명했다. 김백준은 청와대 본관 2층에 있는 대통령 집무실에서 MB로부터 1만원권 2억원이 든 트렁크를 받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왔다는 내용을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구체적이고 세세하게 진술했다. 그런데 청와대 본관에는 에스컬레이터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박재완은 피의자 신분으로 김백준과 대질조사를 받으면서, 무슨 이유에선지 이 같은 김백준의 허위 진술에 진솔함이 느껴진다고 답변했다.
  • ▲ MB정부 정무수석이었던 박재완은 검찰에서 김백준의 허위 진술을 뒷받침하는 진술을 했다. 2018년 2월 7일 박 전 수석의 검찰 진술 내용 중 일부.ⓒ자료=강훈 변호사
    ▲ MB정부 정무수석이었던 박재완은 검찰에서 김백준의 허위 진술을 뒷받침하는 진술을 했다. 2018년 2월 7일 박 전 수석의 검찰 진술 내용 중 일부.ⓒ자료=강훈 변호사
    그러면서 박재완은 ▲MB와 김백준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자신이 총선 여론조사 비용이 부족하다고 보고했고, ▲논의 끝에 국정원 특활비를 받기로 결정했으며, ▲김백준으로부터 받은 2억원의 돈은 이상득 전 한나라당 의원에게 전달돼 총선 초선 출마자들의 선거자금 지원에 쓰인 것 같다고 진술했다.

    보다시피 박재완의 진술은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다. 본인이 총선 여론조사 비용이 부족하다고 해서 MB와 김백준이 모인 자리에서 국정원 특활비를 받기로 결정했다면서, 정작 그 돈을 김백준으로부터 받아서는 여론조사 비용이 아닌 여당 총선 출마자들 지원에 썼다는 것이다.

    검사도 이상한지 총선 여론조사 비용에 대해 박재완에게 다시 캐물었다. 그러자 박재완은 이번에는 앞서 진술과 완전히 뒤바뀐 다른 진술을 한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정무수석실 비서관으로부터 총선 여론조사의 필요성을 보고받았는데, 비용조달에 대해서는 따로 보고받지 않았다. 그래서 MB에게 총선 여론조사를 승인 받을 때도 비용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고 했다. 다만 비서관이 비용을 알아서 조달해 여론조사를 끝낸 후, 국정원 특활비를 썼다는 말을 하기에, 그때서야 MB에게 그 사실을 보고했다는 것이다.

    나중에 진술한 대로라면 총선 여론조사 비용은 정무수석실 비서관이 국정원과 얘기해 알아서 조달을 받은 것이며, MB에게 사전에 보고된 바는 없다. 그렇다면 MB와 김백준, 박재완이 모인 자리에서 총선 여론조사 비용을 국정원 특활비로 조달하기로 결정했다는 최초 진술은 거짓이라는 의미다. 이처럼 박재완의 진술은 앞뒤가 맞지 않아 도저히 신뢰할 수 없는 진술이다.
  • ▲ 2018년 2월 8일 박재완 전 정무수석이 특활비 교부와 총선 여론조사 관련 검찰에 진술한 내용 중 일부.ⓒ자료=강훈 변호사
    ▲ 2018년 2월 8일 박재완 전 정무수석이 특활비 교부와 총선 여론조사 관련 검찰에 진술한 내용 중 일부.ⓒ자료=강훈 변호사
    사법부는 MB의 국정원 특활비 1차 수수 혐의를 무죄로 판결했다. 이 건에 대한 증거는 김백준과 박재완의 진술이 유일했지만, 앞서 살펴본 것처럼 두 사람의 진술은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을 정도의 허위진술이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MB의 국정원 특활비 2차 수수 혐의다. 이 역시 김백준의 진술로부터 시작됐다. 김백준은 검찰조사에서 ▲2008년 4~5월경 청와대 수석들이 돈이 부족하다고 해서 MB에게 보고하자, ▲MB가 국정원 측에 요청해 보겠다고 한 후, 얼마 뒤 김성호 국정원장으로부터 돈을 보내겠다는 연락이 와서, ▲국정원 특활비 2억원을 받아 청와대 수석들에게 500만원씩 나눠줬다고 진술했다.

    그런데 당시 국정원 기조실장이었던 김주성은 2차 수수와 관련해 ‘국정원에 특활비 교부를 요청한 것은 MB가 아니라 김백준’이라고 진술했다. 국정원 예산관으로부터 "김백준 기획관이 도와달라는 취지로 얘기를 한다"는 보고를 받았다는 것이다.

    김주성은 한술을 더 떠 "이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MB를 독대한 후 '김백준 총무비서관으로부터 도와달라는 취지로 얘기를 들었는데, 나중에 결국 문제가 될 것이고 담당직원들이 알게 될 수 있기 때문에 결국 숨길 수 없습니다'라는 취지로 보고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그러나 국정원 예산관과의 대질신문에서 자신의 거짓말이 밝혀지자, 김주성은 예산관이 아닌 김성호 국정원장으로부터 김백준이 특활비 교부를 요청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또한 법정 증인신문에서는 MB와 독대한 자리에서 "국정원 특활비를 여기저기서 달라고 한다고 보고했을 뿐, 청와대에서 요구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고 검찰진술을 번복했다.

    이외에 김주성이 MB를 독대했다는 사실도 허위로 밝혀졌다. 김주성은 당시 대통령실장이었던 류우익을 찾아가 MB 독대를 요청해 성사됐다고 주장했으나, 김주성의 청와대 방문기록을 살펴본 결과, 그 같은 일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음이 밝혀졌다. 류우익 역시 김성호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그런 사실이 없음을 증언했다.

    이처럼 김주성은 수차례 진술을 번복하면서도, 국정원에 특활비 교부를 요구한 것은 MB가 아니라 김백준이라는 진술을 굽히지 않았다.

    김백준 진술 역시 신빙성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2억원을 받아 수석들에게 500만원씩 나눠줬다면 40명이 돈을 받아갔다는 것인데, MB정부 청와대 1기 수석 숫자는 그에 턱없이 모자랄 뿐 아니라, 김백준이 유일하게 지목한 이동관 당시 청와대 대변인은 김백준으로부터 국정원 특활비를 교부받은 사실이 없다는 확인서를 법정에 제출했다.

    변호인단이 파악한 당시 정황은 이렇다.

    국정원 2인자였던 기조실장 김주성은 MB캠프 출신으로 김백준과 가까운 사이였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 때 법무부 장관을 지냈고, MB정부 인사들과 별다른 교분이 없었던 김성호가 국정원장으로 오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이 갈등은 당시 언론에도 보도가 될 정도로 심각했다.

    이 과정에서 김주성은 자신과 친분이 있던 김백준을 통해 청와대의 지지를 얻고자 했으며, 그 과정에서 김백준에게 국정원 특활비 교부가 이뤄졌다는 게 변호인단의 주장이다. 이 같은 내용은 김주성이 국정원장인 김성호 몰래 김백준에게 특활비를 교부할 명백한 동기가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었다.
  • ▲ 2008년 9월 6일자 한겨레신문 기사.ⓒ사진=한겨레신문 캡처
    ▲ 2008년 9월 6일자 한겨레신문 기사.ⓒ사진=한겨레신문 캡처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의 판결문은 황당했다. MB가 김성호가 아닌 불상의 자(예를 들어 이상득)를 통해서 김주성에게 특활비 교부를 지시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이 같은 재판부의 판단은 박재완의 진술을 근거로 한다.

    문제는 박재완의 진술이 2차 수수가 아닌 이미 무죄판결이 난 1차 수수에 대한 진술이라는 점이다. 박재완은 이상득이 개입돼 국정원으로부터 받은 자금은 한나라당 초선 출마자들에게 전달한 돈이라고 진술했다. 그런데 항소심 재판부는 이 같은 진술을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의 업무지원금으로 사용됐다는 2차 수수 혐의의 증거로 인용했다.
  • ▲ 2018년 2월 7일 박재완이 검찰에서 진술한 내용 중 일부.ⓒ자료=강훈 변호사
    ▲ 2018년 2월 7일 박재완이 검찰에서 진술한 내용 중 일부.ⓒ자료=강훈 변호사
    항소심 재판부는 판결문에 적시한 것처럼 ‘가능성’을 가지고 판단을 했다. MB가 이상득을 통해 김주성에게 특활비 교부를 요청했다는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으며, 검찰도 그런 주장을 한 적이 없다.

    대한민국 형사소송법 제 307조는 ‘증거재판주의’를 규정하고 있다. 범죄사실의 인정은 ➀오직 증거를 통해 해야 하며, ➁그 증거가 범죄사실을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로 증명‘할 때에만 판사는 유죄판결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증거재판주의는 헌법 제27조 제4항이 규정한 ‘무죄추정의 원칙’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판사는 피의자를 무죄로 추정한 상태에서 재판에 임해야 하며, 범죄사실은 오직 증거에 의해서만 판단되어야 하고, 그 증거가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로 범죄사실을 증명할 때만 유죄를 선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MB의 유죄를 확정한 상태에서 허위진술들을 퍼즐 맞추듯 꿰맞추고, 모자란 부분은 자신들의 상상력까지 더해 MB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형법은 물론 헌법까지 위배한 위법한 판결이다. 그럼에도 대법원은 항소심 재판부의 이 같은 판결에 위법이 없다고 판단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