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권 대부' 장기표-'주사파 핵심' 민경우… 사회에 기생하는 '진보 지식인' 비판"北이 옳다고는 안 해… 자본주의, 시장경제, 미국이 문제라며 간접적으로 北 두둔" 북한 다녀온 뒤에도 '北 참상' 사실대로 지적 안 해… 이런 분위기에서 주사파 성장
  • "진보 지식인들은 북한의 주체사상이 옳다는 말은 잘 하지 않는다. 다만 사회적 문제가 생기면 '자본주의·시장경제·미국이 문제'라고 말하면서 북한을 정당화한다."

    리영희 선생, 황석영 작가, 문익환 목사, 백낙청 교수… '운동권 대부' 장기표 선생은 이들의 실명을 공개거론하며 이처럼 비판했다. "진보 지식인들이 손해를 보더라도 북한의 실상 등 사실은 사실대로 말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장 선생은 그 이유로 지식인들의 밥벌이 문제와 사회적 지위를 누리기 위한 이기심, 학생운동권으로부터의 비판에 따른 두려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1960년부터 투쟁해온 '운동권 재야 정치인' 장 선생은 1990년대 사회주의권 붕괴 뒤에도 이를 추종하는 '변종 운동권 세력'이 우리 사회에 여전하다고 지적해왔다. 문재인정권의 문제와 '변종운동권'을 비판해온 장 선생은, 이 문제를 심층분석하기 위해 지난 3월25일 민경우수학연구소장과 만났다. 

    민 소장은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에서 사무총장으로 활동한 주사파 핵심이었지만, 사회주의 붕괴와 연평도 포격 등을 겪으며 북한의 실상 등을 인식하고 생각을 바꿔 운동권 비판 대열에 합류했다.

    장 선생과 민 소장의 대담은 지난 3월25일부터 진행됐다. 본지는 지난 12일 첫 순서로 '1970년대 운동권의 사상적 경향과 운동권에 미친 리영희 선생의 영향'을 보도했다. 이번 순서는 '황석영 작가와 문익환 목사 등 진보 지식인들의 행태'다. 민 소장이 묻고, 장 선생이 답했다. 두 사람은 때로 상반된 견해를 보이며 이견을 주고받았다.

    -민경우: 장 선생은 지난 첫 대담에서 소련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한겨레신문의 태도가 당시 운동권에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이를 보완해 달라.

    "리영희 선생의 책들은 사회주의·공산주의를 추종하고 북한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게 했다. 리 선생뿐 아니라 백낙청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그 외 일반적인 지식인들 모두 나쁜 사람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들은) 왜 사회주의가 붕괴한 뒤에도 '사회주의는 옳지 않았다'는 비판적인 말을 하지 않았을까. 

    이들은 북한의 참상이 드러났는데도 북한에 대한 비판은 하지 않았다. 황석영(소설가)처럼 (1993년 출간된 황석영의 북한방문기 제목인)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고 말했다. 이 말은 가치중립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북한을 좋게 표현한 것이다. 이들은 공산주의와 북한을 비난하기보다, 젊은 학생들 내지 운동권에 얹혀 이를 옹호하는 발언을 계속 했다. 이렇게 운동권에 얹혀 가는 것이 자신들이 살아가는 것과 경제적·사회적 지위를 유지하는 데 이익이 된다고 본 것이다.

    솔직히 백낙청 교수 같은 분이 무슨 사회주의자이겠나. 백 교수가 사회주의자라면 사회주의 공부를 했어야지. 그는 (사회주의를) 공부한 일이 없다. 북한에 한 번씩 왔다 갔다 하면서도 북한을 비판하지 않았다. 이 사람들이 북한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비판하지 않은 것일까? 아니다. 만일 북한에 가서 살라고 하면 절대 안 살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북한을 비판하지 않았다.

    소위 진보 지식인라고 주장하는 다수가 그렇다. 이 사람들은 '공산주의가 옳다. 북한 주체사상이 옳다'는 말은 잘 안 한다. 이들은 사회문제가 생기면 '자본주의·시장경제·미국이 문제다'라고 하면서 (결과적으로) 사회주의나 북한을 정당화하도록 만든다. 그래서 소위 진보세력이라고 자임하는 이들이 나쁘다는 것이다. 이들의 소굴이 어디냐? 한겨레신문이다. 한겨레신문을 매개로 글도 쓰고 돈도 벌고…."

    -첨언하자면 1970년대 초반은 북한이 남한보다 더 잘산다는 이야기가 퍼졌다. 그런데 1990년대 초반 소련 사회주의권이 붕괴하면서 북한에 대한 이미지가 바뀔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황석영 씨의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는 책처럼 '북한은 자본주의적 경쟁이나 문제가 없는 청정지대'라는 식의 주장이 나왔다. 사실 리영희 선생도 그런 역할을 한 거다. 중국 당산대지진을 미화하는 한겨레신문 칼럼이 대표적이다. 1976년 당산대지진을 뉴욕 폭동과 비교해 파문을 일으켰다.

    "그런 사람들이다. '중국 옳다. 사회주의 옳다'고 말은 안 하면서도 당산 지진에서 나타난 시민협력을 마치 사회주의 국가여서 그런 것처럼 묘사하면서 '사회주의가 옳고 중국이 옳다'는 생각을 갖도록 했다."

    -리영희 선생이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이 1970년대 후반 중국 문화대혁명의 인간관과 베트남 사회주의를 은연 중에 칭송한 것이다. 소련 사회주의권이 붕괴했을 때는 주사파의 정세관이 이런 식으로 북한의 인간관을 찬양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한 것을 아까 (장기표 선생이) 백낙청 교수를 예로 들면서 (백 교수가) 잘못 생각한 것이 아니라 경제적 이권, 자기의 지위에 대한 것과 연결돼 있다고 했고, 그 가운데 한겨레신문도 있었다고 했다. 추가로 할 말 있다면.

    "우리 재야가 3대 콤플렉스에서 못 벗어났다. 첫째는 학생 콤플렉스다. 학생들이 무엇을 주장하면 지식인 재야가 따라가기에 바쁘다. 두 번째로 노동자 콤플렉스다. 노동운동세력이 주장하면 (지식인 재야가) 다 따라갔다. 마르스크-레닌주의 콤플렉스다. 그리고 셋째, 북한에서 주장하면 재야는 따라갔고 (북한을) 전혀 비판하지 못했다. 이는 옛날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도 지속되는 문제다. 사회주의권이 붕괴했음에도 '그건 가짜 사회주의이고, 진짜 사회주의는 괜찮다' 이런 식의 논리에서 못 벗어난다. 특히 북한 콤플렉스는 그대로 지속되고 있다. 문제다."

    -학생 콤플렉스도 강하게 작동한다고 본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책을 보면 '농법(농촌법학회 동아리), 여기가 자기 마음의 고향'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유 이사장이 전공한) 경제학도 아니고, 서울대 들어갔을 때 처음 접한 서클이 자기 마음의 고향이라고 한 것이다. 이게 그의 학생시절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1980년대 후반, 1990년대 초반에 재야 어른들과 이야기를 하면, 엄연히 (사회에서의) 상하관계로 치자면 재야가 있고 학생이 있는 건데, 사상적으로는 안 그렇다는 느낌을 받았다. 학생이 있고 재야가 있는 식으로.

    "그렇다. 그래서 내가 민통련(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할 때 의사단체도 있었고, 민중문화운동협의회(민문협)과 민중미술협의회 등 노동자단체도 있었다. 그때 특히 강하게 학생운동이 일어났다. 서울대 민진투·자민투 등 학생운동권에 힘이 있었다. 학생운동의 조류가 생기면 (재야 지식인들이 학생 이야기를) 빨리 어디 가서 듣고 오고 그랬다. 많은 사람들, 학생운동도 제대로 안 한 사람들이 거기서 듣고 와서 그게 옳다고 전파하기 바쁜 거였다. 이는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중반, 학생 어느 세대든 간에 모든 계급·계층·세대한테 골고루 이념이 분배되는 것이 아니라 집중되는 곳이 있다. 그렇게 보면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중반에 있는 학생운동이 모든 사상의 꼬리 같다. 여기서 파생되는 거고.

    "중요한 부분이다. 학생운동권에서 학생사회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도 극대화되고 주체사상도 극대화됐다. 1980년 가을부터 1981년에 걸쳐 마르크스-레닌주의가 굉장히 팽배했다. 왜 그랬느냐? 1970년대 제적당한 사람들이 출판사를 많이 차렸다. 그래서 마르크스-레닌주의 서적을 많이 내놨다. (학생운동권에) 그 이전에는 사회주의적 지향과 정서는 있었지만 확신까지는 아니었다. (그런데 마르크스-레닌주의 서적이 나오면서) 확실하게 사회주의적 경향이 학생사회에서 나온 거다. 주체사상도 1985년도 김영환이 통혁당 목소리 방송, 고국의 소리 그거 전파하면... 이게 생명의 말씀이거든.  그래서 주체사상 붐을 일으켰고. 학생운동권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나 주체사상이 나오게 된 거고, 그래서 재야가 맹목적으로 이를 수용하게 된 거다."

    -한겨레신문이 1980~90년대 초반에 사회주의 붕괴에 대한 정직한 반성을 하지 않은 것은, 학생사회로부터 받은 영향이 그런 변화를 막은 것이라고 본다. 그게 무엇으로 이어지느냐, 학생운동사회에서 주사파가 강력히 온전하는 것으로(이어졌다). 또 하나 제기하고 싶은 문제는, 지식인과 교수 이런 분들이 나이 들어서도 여전히 그런 성향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지식인이라고 하면 합리적이고 무당파적이고 그런 전문가들일 것이라고 보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은 상당히 많이 편향됐다.

    "(이들이) 패거리로 우리 사회 편 가르기에 편승하고 있고, 이는 (그들의) 밥벌이, 이기심과도 연관된다. 그래서 나쁜 거다. 지식인은 자기가 손해를 볼지라도 옳은 것은 말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거다. (이들은) '평등해야 하는 거 아니냐' '정의로워야 하는 거 아니냐' 이런 식으로 자신들을 정당화하면서, 세상의 변화를 전혀 거부하면서, 그 패거리에 안주하고 있다."

    -나는 당시 사회운동을 할 때 한겨레·참여연대·정의구현사제단 등 우리가 믿어왔던 조직들이 어떤 문제가 터지면 진보·보수를 떠나 이 사회의 기본 뿌리가 되는 정의에 기초해서 발언할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작년, 재작년 보여준 모습은 그게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 뿌리가, 3대 콤플렉스 중 학생 콤플렉스가 지금까지 이어져온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학생 콤플렉스, 노동자 콤플렉스, 북한 콤플렉스가 그대로 온전하고 있다."

    -친문재인정권을 하는 일련의 지식인들을 보면 (예전 운동권) 학생 같다.

    "정세현(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같은 사람이 있다. 나는 이 사람 수준이 딱 대학 3학년이라고 본다. 예를 들자면 '미국이 왜 북한 문제 해결을 안 하느냐 하면, 그건 미국이 남한에 무기를 팔려고 하는 것'(이라는 식으로 말한다). 이는 대학생 수준이다. 그런 주장을 가지고 진보 이데올로기라고 하는 거다. 

    그런데 그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글을 실어주는 곳이 한겨레다. 한겨레는 민족사적으로 엄청난 죄를 범한 집단이다. 요즘 한겨레의 행태를 보면 어용언론 중에도 이런 어용언론은 없었다. 옛날에 조선일보·동아일보 등도 어용을 했는데, 요즘 한겨레만큼은 아니었다.

    (진보 지식인의 행태와 관련해) 예를 또 들자면 문익환 목사가 있다. (과거) 문 목사를 모시고 민통련 활동을 했다. 문 목사는 순수하고 좋은 분이다. 그는 1990년 4월 북한을 방문했다. 당시 김일성과 껴안고 '통일이 이뤄졌다'고 말하고 그랬다. 문 목사의 민족통일에 대한 간절한 염원과 민족적 순수성을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문 목사가) 결과적으로 북한정권을 굉장히 정당화하는 데 역할을 했다.
  • ▲ 장기표(좌) 선생과 민경우(우) 소장. ⓒ정상윤 기자
    ▲ 장기표(좌) 선생과 민경우(우) 소장. ⓒ정상윤 기자
    특히 이분이 남한 주사파들에게 영향을 많이 미쳤다. 그래서 한동안 남한 주사파들이 문 목사를 얼마나 떠받들었나. 영웅이라고. 그런데 북한인민들 처지에서 보면 문 목사가 얼마나 나쁜 사람인가. 통일되면 문 목사, 황석영 등 이런 사람들은 매도당한다. '우리 인민들이 이렇게 죽어가는 것을 당신들은 몰랐나' 이럴 거다. 결과적으로 북한 김일성· 김정은 정권을 유지하는 데도 이들이 기여했다.

    유홍준·고은·김주영 세 사람이 (1998년) 북한을 다녀온 적이 있다. 북한이 세 작가를 보름간 구경시켜준 거다. 남한에 돌아가 선전하라고. (이후) 내가 마침 김주영 작가의 강의를 듣게 됐다. (김주영 작가가 강의에서) '우리 세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이, 북한에 속았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북한을 잘못 봤다고 말했다'고 이야기했다.

    김주영 작가는 지난 한 달 사이 북한에서 계속 전화가 온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북한에서 철저하게 관리하는구나, 북한에서 보고 간 것을 함부로 이야기하지 못하도록 관리하는구나' 하고 느꼈다고 하더라. 세 사람 중에서 그게 누구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북한에 갔다 왔으면 북한의 실상을 본 것 아닌가. 돌아와서 '그런 데서는 살 수 없다'고 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러니 주사파들이 주사파에 묶여 있도록 만드는 역할을 계속해서 한 셈이다. 문 목사뿐 아니라 백낙청 교수 등도 마찬가지다."

    -집단적 카르텔 같다. 저도 (과거 주사파였지만) 전향하고 생각을 바꿨다. 제가 북한에 대해 부정적 이야기를 하면, 사실 저도 약간 꺼림칙하고 주변 친구들도 놀란다. 굉장히 오랜 기간 1990년대 초부터 30년 이상 북한에 대해 '설사 네가 생각을 바꿨다고 해도 북한에 대해 정직하게, 냉정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안 돼'라는 묵계에 묶여 있었다. NL(민족해방)에서 PD(민중민주)로 옮기는 것은 상관이 없지만, NL을 그만두면 변절한 것으로 보는 분위기가 있다.

    "분위기 정도가 아니라 그런 게 굉장히 강하다. (운동을 했던 이들이) 조선일보 같은 곳에 글을 쓴다거나 인터뷰를 하면 완전히 매도 대상이 된다. 적어도 '당신이 착각하는 거다. 북한은 잘사는 사회이고 공산주의는 옳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비난한다면 그건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런데 북한이 잘못되고 공산주의가 잘못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북한과 공산주의가)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집단 이지메를 가한다. 이런 분위기가 우리 사회에 엄존한다."

    -유홍준·고은 선생은 대중 속에서 살아남았다. 그러나 <객지>를 쓴 김주영 선생과 김 선생과 같은 분들의 경우엔, 북한에 부정적이면 고립되는 듯한 분위기가 지난 20년간 있었다.

    "유홍준·고은 선생은 그 위에 타고 있는 거다. 운동권 동년배나 선배들도 계속 올라타고 있다. 나처럼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비판하고 주체사상에 반대하는 것은 유별난 경우다. (일전에) 강만길 선생 강의를 들었더니 완전히 북한 칭송이더라. 칭송이라는 것은 '북한은 남북관계를 좋게 하려고 하는데 남한 정권들의 대북·반공주의, 대북 강경책 때문에 안 좋아졌다' 이런 식이다. 대부분 이런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북한을 계속 옹호한다."

    -문익환 목사 방북 이후 '북한이 남쪽에 군사공격을 하는 일은 없을 거다' '북한은 나름 힘들게 살고 있지만 노력하고 있다' 이런 식의 이데올로기가 퍼졌다. 그 와중에 2018년부터 미사일 공격, 핵 공격을 하면서 핵무력을 (북한이) 완성했다. 또 깜짝 놀란 것이, 북한이 올해 8차 당대회에서 전술핵, 국방력을 가지고 조국통일을 앞당길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지난 30년간 알고 왔던 북한, 남북관계의 이미지나 우리 사고방식과 전혀 다른 이야기다.

    한국은 아노미 상태 같다. 북한은 그렇게 위협했고 탄도미사일을 쐈다. 날카로운, 예민한 정치협상과 군사공격을 예고하고 있다. 그런데 남측은 인도적 지원을 하겠다거나, 전혀 상황이 안 맞는 (행동을 하고 있는) 거다. 이렇게 안 맞는 상황이 지난 30년간 유지됐던 문 목사나 황석영 작가의 연장선에 있는 것 같다. 이렇게 되면서 우리 국민은 정신적 무장해제 상태, 그래서 상황과 심리상태가 전혀 맞지 않는 상태에 놓여 있다고 본다.

    "(지식인들이 왜) 북한이 못사는 원인이 다른 데 있다고 하는지, 그 논리는 다음에 정리하도록 하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