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헐버트' 54년 인연… 외국인 첫 한글학자 헐버트, 평등사회-문명국가 주장, 깊은 교감
  • ▲ 김동진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회장. ⓒ뉴데일리DB
    ▲ 김동진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회장. ⓒ뉴데일리DB
    "한국인이라면 헐버트(Homer B. Hulbert)를 하루도 잊어서는 안 된다."

    김동진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장은 20일 이승만학당 주최로 온라인을 통해 열린 제112회 이승만포럼에서 "안중근 의사는 헐버트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며 "헐버트의 당시 업적과 활동이 우리 청년들에게 거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은 이날 '한학자 이승만과 한국학 개척자 헐버트의 역사적 만남'이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김 회장은 "우남 이승만의 정치적 행로에 대해서는 대부분 잘 알지만, 한학에 몰두하던 이승만이 청년시절 어떻게 근대사상을 접하고 미국유학길에 올랐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고 강연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 회장은 "이승만은 1895년 만 20세 때 배재학당에 입학해 개혁주의자이면서 한국학 탐구에 몰두하던 헐버트를 만났다"며 "이후 두 사람은 사제지간으로 자주적 역사관을 공유하고, 독립운동의 동지로 50년을 넘게 교감했다"고 전했다.

    독립운동 동지 헐버트와 이승만… 사제 간 교류 '활발'

    대한제국 시절 교육고문을 지낸 미국인 선교사 호머 헐버트 박사는 독립운동가이자 최초의 외국인 한글학자로서 한글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헐버트 박사는 1886년 23세 때 대한제국에 들어와 육영공원 교사로 일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고종의 친서를 품고 미국에 특사로 파견되기도 했다. 외국인으로는 최초로 1950년 '건국훈장'과 2014년 '금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김 회장은 "헐버트는 '사대부와 백성들이 반드시 알아야 한다'는 내용을 담아 1889년 최초의 한글 지리교과서인 <사면필지>를 만들었다"며 "세계지리와 문화를 설명하면서 한글의 우수성을 알렸다"고 말했다.

    김 회장에 따르면, 헐버트는 당시 "한글로 교육을 해서 모든 사람의 지식이 넓어져야 조선이 문명국가가 되고 양반과 서민 사이의 벽이 사라져 평등사회를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승만을 만난 해(1895년)에는 우리나라의 풍광·설화·관습 등을 국제사회에 소개하고, '한민족의 기원'이라는 글을 발표했다.

    김 회장은 이처럼 우리나라 발전을 위해 노력했던 헐버트 박사로부터 이승만 전 대통령도 많은 영감을 받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회장은 "이승만은 1898년 만민공동회 연설을 통해 사회적으로 크게 알려졌는데, 여기에서 헐버트도 조선 개국 502주년 연설을 했다"며 이승만 전 대통령과 헐버트 박사의 거듭된 인연을 소개했다.

    "헐버트, 이승만에 많은 영향 미쳐"… 만민공동회서 연설도

    김 회장은 "이승만이 1899년부터 1904년까지 수감생활을 할 때 영어와 성경을 공부하고 <독립정신>을 썼다"며 "이 <독립정신>에는 이전에 헐버트가 <사면필지>와 연설 등에서 한 이야기들이 많이 겹쳐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헐버트는 YMCA 창립총회 의장을 맡았는데, 이승만은 출옥 후 이곳에서도 활동했다"며 "헐버트가 이승만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고 부연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과 헐버트 박사는 강연 등 여러 활동을 통해 인연을 이어갔다. 김 회장은 "해방 후 이승만은 1948년 자신의 취임식에 꼭 있어야 할 인물은 헐버트라고 생각했다"며 "헐버트는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한국인은 세계에서 가장 빼어난 민족'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날 포럼에서 강연한 김 회장은 미국 제이피모건은행(JPMorgan Chasa Bank) 한국회장과 IMF 외환위기 시 국제채권단 대표를 역임했으며, 현재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장을 맡고 있다. 최초의 헐버트 일대기인 <파란 눈의 한국혼 헐버트>(2010)를 저술했으며, 미국 미시간주립대학교로부터 '글로벌코리아상'(2013)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