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스콜세지 때문에 못 쉬겠다" 너스레… "빈부격차 등 현실적 이야기 다뤄 관객 호응 얻은 듯"
  • ▲ 봉준호(좌) 감독과 마틴 스콜세지 감독. ⓒ뉴데일리/스플래시닷컴
    ▲ 봉준호(좌) 감독과 마틴 스콜세지 감독. ⓒ뉴데일리/스플래시닷컴
    아카데미나 골든글로브 같은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각종 트로피를 휩쓸며 '국산 영화'의 저력을 과시하고 돌아온 봉준호 감독이 "수년 전부터 계획 중인 두 편의 작품이 있다"며 벌써부터 차기작 구상에 들어갔음을 밝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봉 감독은 19일 오전 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영화 '기생충' 아카데미 수상 기념 기자회견에 참석해 "오늘 아침 마틴 스콜세지(Martin Scorsese) 감독으로부터 한 통의 '격려 편지'를 받았다"며 "몇 시간 전에 읽었는데 저로서는 영광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개인적으로 보낸 편지라 내용을 말씀드리는 건 실례가 될 수 있지만, 마지막 문장에 '그동안 고생했으니 좀 쉬라'고 하셨다"며 "그런데 조금만 쉬라면서, 자신도 그렇고 많은 사람들이 차기작을 기다린다고 말씀해주셔서 감사했다"고 전했다.

    봉 감독은 "'기생충'을 찍기 전, 이미 '옥자'를 끝낼 때부터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 판정을 받았지만 스콜세지 감독이 쉬지 말라고 해서 못 쉴 것 같다"는 농담을 건넨 뒤 "차기작으로 두 편의 작품을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기생충'이 어떤 결과를 얻었는지와는 관계없이 평소 하던대로 준비하고 있다"며 "'기생충'도 그렇고, 그저 완성도 있게 영화를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2의 기생충'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평소 하던 것처럼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에만 신경쓰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봉 감독은 지난 9일(현지시각)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Academy Awards 2020)'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뒤 "어릴 때 '가장 개인적인 게 가장 창의적'이라는 말을 책에서 읽고 가슴에 새겼는데, 그 말을 한 사람이 바로 앞에 계신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라며 "마틴의 영화를 보고 공부한 사람으로서 후보에 함께 오른 것만으로도 영광"이라고 말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 ▲ 영화 '기생충' 아카데미상 수상을 기념한 기자간담회가 19일 오전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가운데 취재진이 봉준호 감독과 배우들을 기다리고 있다. ⓒ권창회 기자
    ▲ 영화 '기생충' 아카데미상 수상을 기념한 기자간담회가 19일 오전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가운데 취재진이 봉준호 감독과 배우들을 기다리고 있다. ⓒ권창회 기자
    "'오스카 캠페인'하며 600번 이상 인터뷰한 듯"

    이날 기자회견에선 아카데미 수상을 위해 6개월간 '기생충'을 홍보한 '오스카 캠페인'에 대한 비화도 공개됐다. 봉 감독은 "처음엔 토드 필립스(Todd Phillips)나 쿠엔틴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 같은 감독들이 '오스카 캠페인'을 하고, 관련 스튜디오가 예산을 쓰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었는데, (막상 우리가 '오스카 캠페인'에 뛰어들면서) 할리우드에선 이런 식으로 작품을 밀도 있고 세밀하게 검증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게 다 오랜 전통을 가진 과정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다른 경쟁작들은 LA 시내에 커다란 광고판을 세우고 TV나 잡지 등에 광고를 하는 등 물량 공세를 퍼부었는데, '네온(NEON)'이라는 중소배급사가 '북미 배급'을 맡은 우리는 투자배급사(CJ ENM·NEON), 제작사(바른손이앤에이), 배우들이 뭉쳐 아이디어와 열정으로 부족한 부분을 커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생충' 홍보를 위해) 인터뷰는 600회 이상, 관객과의 대화는 100회 이상 한 것 같다"고 말한 봉 감독은 "저와 송강호 선배가 코피를 흘릴 만한 일이 많았고, 실제로 코피를 흘리기도 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기생충'에서 가정부 '문광' 역을 맡은 이정은은 "감독님이 미국 작가조합상(WAG)에서 '각본상'을 받을 때 일정상 남아 있는 배우가 저밖에 없었다"며 "그런데 '디렉터스컷 어워즈'처럼 감독님을 소개해 드려야 해서 마치 대사를 외우듯이 영어 소감을 준비해 말했다"고 밝혔다.
  • ▲ 봉준호(가운데) 감독이 19일 오전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영화 '기생충'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권창회 기자
    ▲ 봉준호(가운데) 감독이 19일 오전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영화 '기생충'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권창회 기자
    "현대사회의 '어두운 면', 1cm도 피하고 싶지 않았다"

    봉 감독은 빈부격차를 다룬 이야기가 국내외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이유에 대해서도 나름의 견해를 밝혔다. 그는 "'괴물'에선 괴물이 한강변을 뛰어다녔고, '설국열차'에선 기차가 설원을 달리는 등 SF적인 요소가 많았는데, '기생충'은 그런 게 전혀 없는 동시대 이야기"라며 "실제로 우리 이웃에 있을 법한 이야기를 배우들이 뛰어난 앙상블로 실감나게 잘 표현했고, 그러한 현실에 기반한 분위기 때문에 더 폭발력을 갖게 된 게 아닌가 짐작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봉 감독은 "제가 도발적인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스토리의 본질을 외면하는 건 싫다"며 "'기생충'은 우스꽝스러운 면도 있지만 현대사회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부분이 있다. 그런 쓰라린 면을 1cm도 피하고 싶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그렇게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면 돌파를 해야 하는 영화라고 생각하고 만들었다"며 "어쩌면 관객이 불편해 할 수도 있는 내용이지만 달콤한 장식으로 영화를 끌고 가고 싶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런 측면에서 "오스카 수상과 관계없이 우리나라를 비롯, 전 세계에서 많은 관객이 호응을 보내주신 데 대해 정말로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봉 감독은 독립영화와 상업영화가 서로 '평행선'을 달리는 한국 영화계의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예전처럼 좋은 의미에서의 '상호 침투'와 '충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신이 데뷔할 무렵엔 '플란다스의 개'나 '살인의 추억'처럼 메인스트림과 독립영화가 충돌하는 모험적인 도전이 가능했는데, 지금은 재능있는 젊은 감독들이 산업으로 흡수되지 않고 독립영화쪽으로만 가는 상황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홍콩 영화계의 흥망성쇠를 교훈삼아 우리 영화계가 그런 길을 걷지 않도록,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고 서로간 '좋은 충돌'이 일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끝으로 봉 감독은 "이번에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과 20분 정도 대화를 나눴는데 그가 하루 종일 '조여정 캐릭터' 생각을 했다며 10분 이상을 조여정에 대해서만 이야기했고, 미국 현지에선 '이정은이 벨을 누르는 순간 영화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며 이정은을 비롯, 배우들의 연기력을 극찬하는 얘기들이 많이 나왔다"는 흐뭇한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사진제공 = 뉴데일리DB, TOPIC/SplashNews (www.splashnews.com 스플래시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