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공개 비판해 권력 정당성 강화하려는 수법"… 한국 기업 투자 8532억 '물거품'
  • ▲ 북한 노동신문이 김정은이 금강산 관광지구를 시찰했다고 보도했다. ⓒ뉴시스
    ▲ 북한 노동신문이 김정은이 금강산 관광지구를 시찰했다고 보도했다. ⓒ뉴시스
    김정은이 현대아산에서 금강산에 건설한 관광시설 철거를 지시하며 남북이 공동으로 진행한 금강산 관광 사업을 '선임자들의 잘못된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전임자인 김정일이 우상화 정책으로 '신'으로 추앙받는 북한에서 김정은이 아버지의 정책을 직접 비판하는 것은 유례가 없는 파격적 행보다. 김정은이 아버지인 김정일의 정책을 공개 석상에서 지적한 것을 두고 '체제에 대한 자신감과 정당성을 강화하려는 시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23일 북한 노동 신문은 김정은이 금강산을 직접 시찰했다고 보도했다. 김정은은 금강산을 시찰하며 "세계적인 명산 금강산에 가건물 같은 집 몇 채 지어놓고 관광을 하게 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됐다"며 "손쉽게 관광지나 내주고 앉아서 득 보려던 선임자들의 잘못된 정책 탓"이라고 비판했다. 

    "독재자들의 전형적인 수법…김정일뿐 아니라 김일성도 비판한 것"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은 김정은이 아버지의 정책을 비판한 것을 두고 "북한에서 전례 없는 일"이라며 "김정은은 등장한 당시부터 정당성이 많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부족한 정당성을 독재자들의 전형적인 수법인 전임자에 대한 공격으로 만회하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김정은이 북한 내 자신의 권력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박휘락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는 "금강산 관광 자체에 대한 큰 틀은 1989년 故 정주영 회장과 김일성이 합의한 것"이라며 "김정은이 아버지뿐만 아니라 할아버지인 김일성을 비판하면서 전임자들과 완전한 차별화로 홀로서기 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김정은이 자신의 권력을 탄탄하게 다져놨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라고 분석했다.

    김정은은 금강산 내에 있는 우리 측 관광시설에 대한 철거도 지시했다. 그는 "금강산이 마치 남북의 공유물처럼 남북관계의 상징처럼 돼 있고 남북 관계가 발전하지 않으면 금강산 관광도 못하는 것으로 돼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인식"이라며 "남측의 관계 부문과 합의해 싹 들어내고 금강산의 자연경관에 어울리는 우리 식의 현대적인 시설로 새로 건설해야 한다"고 했다. 

    "文, 현실을 이념 없이 냉정하게 직시해야"

    김정은이 철거를 지시한 금강산 내 시설은 고성항과 금강산 호텔·호텔 해금강 등을 비롯해 13곳에 달한다. 현대아산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현대아산이 금강산 일대에 보유한 유형자산은 566억원 규모다. 하지만 현대 아산이 금강산 일대 토지 임대와 개발사업권 명목으로 5414억원, 건설과 시설 개보수에 2268억을 투자했다. 리조트 업체인 아난티도 금강산 관광지구에 2008년 850억을 들여 고성항 골프장과 리조트를 건설했지만 같은 해 '박왕자씨 피격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은 중단됐다.

    박 교수는 김정은의 철거 지시 중 '남측 관계 부문과 협의하라'는 문구에 주목했다. 그는 "관계 부문 협의라는 것은 결국 철거 비용에 대한 부담을 한국에 전가시키겠다는 의도"라며 "북한이 철거를 명목으로 한국에 연락을 해오면 문재인 정부가 다시 '평화'를 거론하며 부화뇌동할까 걱정"이라며 우려했다. 이어 "정부가 자꾸 북한의 의도를 자의적으로 해석하지 말고 북한이 우리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봐야한다"며 "현실을 이념 없이 냉정하게 직시해야 효율적인 대북 정책이 나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금강산 관광은 1989년 故 정주영 명예회장이 방북해 '금강산 관광 개발의정서'를 체결하며 시작됐지만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1998년 첫 관광이 시작되고 2005년 관광객 100만명을 돌파 하며 정점을 찍었다. 이후 평화무드를 타고 2007년 현대아산과 북한이 개성과 백두산 관광 합의서까지 체결했다. 그러나 2008년 금강산 관광을 갔던 박왕자씨가 북한 초병에 의해 총격으로 사망하며 관광은 중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