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는 70만 알려주고 북한과는 100을 합의… 이건 좋은 동맹 모델 아니다"
  • ▲ 빅터 차 미국전략국제문제연구소 석좌교수 겸 조지타운대 교수. 사진은 지난 2016년 모습이다. ⓒ뉴시스 DB
    ▲ 빅터 차 미국전략국제문제연구소 석좌교수 겸 조지타운대 교수. 사진은 지난 2016년 모습이다. ⓒ뉴시스 DB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석좌교수 겸 조지타운대 교수가 지난 22일 "(북핵의 입장에 대해 한·미) 양국 간 중요한 균열이 있다. 그 격차가 어떻게 좁혀질지 명확하지 않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청와대가 그간 "한·미 공조에 전혀 이상이 없다"고 설명한 것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어서 향후 논란 가능성이 커 보인다.

    빅터 차 교수는 '평화를 향한 분투'라는 주제로 서울에서 열린 중앙일보-CSIS 포럼에서 〈중앙일보〉와 만나 "한국은 남북 간 협상 내용을 미국에 '70'만 전해준 다음, 북한과 최종협상에서 '100'을 합의한 뒤 미국에 '이미 다 얘기해주지 않았느냐'고 언급하면 안 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차 교수는 "이건 좋은 동맹 모델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관료들이 매우 걱정하고 있다"며 "한국이 아무리 가속페달을 밟아도 북한이 실질적인 비핵화에 나서지 않는 한 대북제재 해제 등 원하는 걸 얻기는 힘들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 그렇게 나올 줄 예상했다"

    빅터 차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대북제재 완화에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해서는 "워싱턴은 문재인 대통령이 그렇게 나올 줄 다 예상했기 때문에 분노하지 않았다. 10년 전 노무현 정부 때 다 겪어본 일"이라면서도 "북한은 미국과 평화협정을 맺지 못해 제재를 당하는 게 아니라 핵 개발과 인권탄압 때문에 제재를 당하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대북제재 해제 문제는 평화협정과 무관하다는 것이다.

    빅터 차 교수의 이같은 발언은 청와대가 굳건한 한·미 동맹을 강조하는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발언이다. 앞서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22일 유럽순방 직후 기자들과 만나 대북제재 완화 문제와 관련 미국의 기류에 대해 "한미동맹이라는 것이 그런 게 아니다. 미국 내에도 다양한 의견이 존재할 수 있고 절차적으로 다를지라도 가는 방향과 목표가 같기에 우리를 신뢰한다"며 "오히려 우리가 미국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청와대 "오히려 우리가 미국 도와주는 것"

    이어 차 교수는 "북한이 비핵화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과 평화협정을 맺으면 제재가 해제되는 게 아니라 통상적인 협상 단계로만 들어서게 될 것"이라며 "제재만이 북한을 움직일 수 있다는 걸 트럼프 대통령이 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차 교수는 "북한이 그동안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등 몇 가지 조치를 하긴 했지만 의미 있는 비핵화 조치는 아니고 신뢰 구축을 위한 행동일 뿐"이라며 "북한이 해야 할 비핵화 조치는 포괄적 핵 신고-검증-시간표 제시의 3단계로, 북한이 일단 3단계 조치를 개시하면 어느 시점에서 제재가 풀리기 시작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아가 "3단계 조치가 시금석이다. 북한이 이걸 하지 않는 한 누구도 그들을 믿을 수 없다"며 "(2007년 빅터 차 교수가 미국 대표였던 미북 간 협상인) 10년 전 상황과 똑같다"고 술회했다.

    "핵신고→ 검증→ 시간표… 3단계 거쳐야 제재완화"

    아울러 "미국에서 북한 이슈는 그 자체로만 다뤄지지 않는 상대적인 문제"라며 "요즘 워싱턴의 우선순위는 이란 핵, 러시아와 갈등, 사우디아라비아의 언론인 살해 스캔들이고 북핵은 그다음"이라고 했다. 북핵 문제가 우선순위에 밀려있을 뿐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이 '비둘기파'로 분류되지는 않는다는 것이 차 교수의 설명이다.

    끝으로 차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간선거 이후 북한에 강경책으로 돌아설 가능성에 대해서는 "낮다"고 내다봤다. 차 교수는 "김정은이 핵실험을 재개하거나 비밀리에 핵실험장을 만든다면 그럴 수 있다"며 "북한이 핵·미사일 도발을 그친 지 1년이 다 돼가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그걸 승리로 여긴다"고 했다.

    차 교수는 "앞으로도 한동안은 북핵에 대해 현재 방향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는 좋은 기회"라며 "다만 연례 한·미연합훈련인 키리졸브(KR) 기간이 돌아오는 내년 2월 말까지 북한 비핵화에 진전이 없으면 뭔가 결정을 내리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내년 2월말까지 진전 없으면 결정 내릴 것"

    한편 차 교수는 올해 초 주한 미국대사에 내정됐지만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이른바 '코피 작전(Bloody Nose)'에 반대한다는 이유 등으로 인준 직전 낙마한 인물이다.

    이에 대해 차 교수는 "렉스 틸러슨 당시 국무장관이 내게 대사직을 맡아달라고 처음 연락했고, 한국 정부가 내게 아그레망(새로운 외교사절을 파견할 때 상대국에게 얻는 사전 동의 절차)까지 준 시점에 돌연 지명이 철회됐다"며 "코피 작전에 반대한 사람은 무수히 많았다. 코피 작전 외에 무역 등 다른 이슈에서도 트럼프와 반대 입장을 취한 것 때문일 수도 있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