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선, 김정일 때부터 서기실 핵심 '최고 요직'... 헤이긴은 1981년부터 백악관 근무한 정무통
  • ▲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은을 따라 레드카펫을 밟던 김영철과 김여정을 끌어내는 김창선. ⓒTV조선 당시 보도화면 캡쳐.
    ▲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은을 따라 레드카펫을 밟던 김영철과 김여정을 끌어내는 김창선. ⓒTV조선 당시 보도화면 캡쳐.
    美北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지난 28일 싱가포르에서 만난 조셉 헤이긴 美백악관 부비서실장과 김창선 노동당 서기실 실장을 두고 한국 언론들은 ‘집사(執事)’라고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경력을 살펴보면 두 사람은 ‘집사’가 아니라 실무 전문가임을 알 수 있다.

    김창선의 경우 “최고 존엄의 심기까지 지킨다”는 노동당 중앙청사 3층 서기실의 수장이다. 지금까지 北선전매체 등을 통해 알려진 내용을 종합하면 국무위원회 서기실장 겸 의전국장, 중앙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다. 공식 석상에서 북한군 중장(한국군 소장에 해당) 계급장을 달고 나타난 적도 있다.

    1944년 함경북도 명천군에서 태어난 김창선은 김일성 종합대 러시아과를 졸업한 뒤 인민무력부 직원으로 근무했다. 인민무력부에서는 대외사업국 지도원, 부장, 부국장을 거쳐 駐러시아 대사관 부무관까지 지냈다. 이후 노동당 행정부 부부장을 지냈다. 1993년부터 노동당 서기실 부부장을 맡았고 이후 국방위원회 서기실 실장 겸 국방위원회 의전국장을 지냈다.

    노동당 서기실 부부장, 국방위원회 서기실 부부장이라는 직함은 김정일 생전 때부터 서기실 요직을 맡아 ‘최고 존엄’을 신격화하는 업무를 맡아 해왔다는 뜻이다. 2012년 김정은 집권 이후 최고 권력기관이 된 국무위원회 서기실은 기존의 명칭만 변경한 것에 불과하다.  

    김정일부터 김정은까지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며 ‘전지전능한 최고 존엄’이라는 우상화를 해 왔다는 것은 그 누구보다 북한 내부 사정에 밝다는 뜻이기도 하다. 북한에서는 모든 부처와 지방의 사업 보고서가 서기실을 거쳐 김정은에게 들어가기 때문이다.

    지난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 당시에는 경호·의전·보도 실무 회담의 북측 수석대표를 맡았다. 정상회담 당일에는 특이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당시 김정은이 한국 측에서 깔아 놓은 레드 카펫 위를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걸어갈 때 김여정과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이 아무 생각 없이 따라서 걸어가자, 김여정에게 말로 주의를 주고 김영철의 팔짱을 끼고 끌어냈다.

    김창선이 빨치산 출신 황순희의 사위이자 류춘옥의 남편, 즉 김정일 모친 김정숙과 친했던 장모, 김정은 고모 김경희의 단짝인 아내 덕분에 줄곧 ‘최고 존엄’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것은 아니어 보인다. 만약 처가 덕분에 출세했다면 장성택이 숙청당할 때 ‘노동당 행정부 부부장’ 경력이 문제가 돼 숙청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 ▲ 싱가포르 美대사관 앞에서 취재진을 만난 조 헤이긴 美백악관 부비서실장. ⓒKBS 관련보도 화면캡쳐.
    ▲ 싱가포르 美대사관 앞에서 취재진을 만난 조 헤이긴 美백악관 부비서실장. ⓒKBS 관련보도 화면캡쳐.
    김창선의 카운터 파트인 조셉 헤이긴 美백악관 부비서실장은 일반적인 비서가 아니다. 부비서실장은 백악관 비서실장을 보좌하는 한편 백악관 내부가 잘 운영되도록 감독하는 역할을 맡는다.

    ◆대통령 일정, 경호, 시간, 장소까지 조정

    조셉 헤이긴 부비서실장은 美백악관에 있는 2명의 부비서실장 가운데 운영 담당이다. 다른 부비서실장 크리스 리델은 정책 조정을 맡고 있다. 헤이긴 부비서실장은 대통령 집무실(Oval office)이 있는 서관(West Wing)에서의 업무 조정을 주로 맡는다고 한다. 특히 분 단위로 이뤄지는 대통령의 일정을 조정하고 관리하는 것도 헤이긴 부비서실장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한다. 때문에 美온라인 매체 ‘악시오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일정은 모두 헤이긴 부비서실장의 손에 달렸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헤이긴 부비서실장은 1956년 초 켄터키州 렉싱턴에서 태어나 오하이오州 신시내티에 있는 인디언 힐에서 자랐으며 케년大를 졸업했다고 한다. 그가 백악관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79년 美공화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H.W 부시(아버지 부시) 후보를 돕게 되면서부터 였다. H.W 부시는 대선 후보는 못 됐지만 로널드 레이건 후보의 러닝 메이트가 돼 1981년 부통령으로 백악관에 입성했다. 헤이긴은 H.W 부시 부통령의 추천으로 부통령 법률자문이 됐다고 한다.

    1985년 백악관을 떠난 헤이긴은 한동안 대형 유통업체 ‘메이시스’와 ‘블루밍데일’의 공무담당 임원으로 근무했다고 한다. 1988년 H.W 부시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다시 백악관에서 일하게 됐다. H.W. 부시 행정부가 끝난 뒤 1991년 다시 민간 기업에서 임원으로 근무하다 2000년 조지 W. 부시(아들 부시)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백악관에서 근무하게 됐다. 이때 2001년부터 2007년까지 백악관 부비서실장을 맡았다.

    백악관과 민간기업 공무 담당 임원으로 오랜 기간 일해 왔던 헤이긴 부비서실장은 대통령의 일정과 동선, 경호에서부터 대통령이 각료들을 만나야 할 시간과 장소까지 정하는 사람이다. 이는 얼핏 ‘집사’를 의미한다고 착각할 수 있지만 대통령이 사람을 만나거나 행사에 참석할 때 정치적 경중까지 따져야 한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P.I(President Identity) 컨설턴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최고 존엄의 신성한 이미지’를 지켜야 하는 北서기실 실장과도 일맥상통하는 업무다. 즉 북한의 김창선과 헤이긴 美백악관 부비서실장을 단순히 ‘집사’라고 표현하는 것은 자칫 이들의 역할과 임무에 대한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