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 또다시 원론적 수준… 한국당 "검증 가능한 핵폐기 약속 찾아볼 수 없어"
  • ▲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이 27일 오후 판문점 평화의집 앞마당에서 남북공동선언인 '판문점 선언'을 발표하고 있다. ⓒ한국공동사진기자단
    ▲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이 27일 오후 판문점 평화의집 앞마당에서 남북공동선언인 '판문점 선언'을 발표하고 있다. ⓒ한국공동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이 지난 27일 역대 세번째 정상회담을 통해 판문점 선언에 서명했다.

    지난 2000년, 2007년과 달리 '비핵화' 언급을 담았다는 점에서는 진일보한 것으로 보이지만, 전체적인 내용에서는 큰 차이가 없어 역대 정부의 실패 사례를 되풀이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우려도 나온다.

    전날 문재인 대통령은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북한 김정은과 만나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에 서명했다.

    '판문점 선언'에는 크게 ▲남북 공동번영·자주통일의 미래 지향 ▲군사적 긴장상태를 완화 및 전쟁 위험 해소 위한 공동 노력 ▲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적극 협력 등이 담겼다.

    구체적으로는 ▲민족 자주의 원칙을 확인 ▲이미 채택된 남북 선언들과 모든 합의 철저 이행 ▲당국과 국회, 정당, 지방자치단체, 민간단체 등 각계각층이 참가하는 민족공동행사를 적극 추진 ▲2018년 아시아경기대회를 비롯한 국제경기들에 공동으로 진출 ▲남북 적십자회담 개최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와 도로들을 연결 ▲8.15를 계기로 이산가족·친척 상봉을 진행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 전면 중지 ▲5월 1일부터 군사분계선 일대 확성기 방송과 전단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 행위들을 중지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를 평화수역 조성 ▲단계적으로 군축 실현 ▲종전 선언 및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 적극 추진, 그리고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했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이같은 내용은 10·4 선언과 여러 곳에서 비교된다. 먼저 지난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북한 김정일과 맺은 10·4 선언은 2000년 김대중 정부 시절 이뤄진 6·15 공동선언의 내용을 기반으로 한다. 6.15선언에는 핵과 관련된 내용은 빠져있다. 다만 통일문제를 우리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해결하고, 남측의 연합제와 북한의 연방제의 공통점 모색을 통한 통일 지향, 비전향장기수 문제 해결, 경제 교류협력,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방문 검토 등이 제시돼 있다.

    이에 따라 10·4 선언에서도 "민족 번영의 시대 자주 통일의 새 시대를 열어나갈 수 있다는 확신을 표명한다"는 표현이 있다. 전날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과 한 판문점 선언에서는 이 대목이 "끊어진 민족의 혈맥을 잇고 공동번영과 자주통일의 미래를 앞당겨 나갈 것"이라는 표현으로 바뀌었다.

    또 10·4 선언에 있는 "사상과 제도의 차이를 초월해 내부 문제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조항은 "민족 자주의 원칙을 확인했다"는 내용으로 대체됐다.

    경제 협력으로 시선을 돌려도 판문점과 10·4선언은 상당한 부분에서 유사하다. 판문점 선언에서는 "10.4선언에서 합의된 사업들을 적극 추진한다"며 기존 합의들을 전제하고 있어서다.

    지난 10·4 선언은 경제협력 분야에서 ▲해주지역과 주변해역을 포괄하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 설정 ▲경제특구건설과 해주항 활용 ▲민간선박의 해주직항로 통과 ▲한강하구 공동이용 ▲개성공업지구 1단계 건설 완공 및 2단계 개발 착수 ▲문산-봉동간 철도화물수송 시작 ▲개성-신의주 철도와 개성-평양 고속도로를 공동으로 이용하기 위한 개보수 문제 협의·추진 ▲안변과 남포에 조선협력단지를 건설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를 부총리급 '남북경제협력공동위원회'로 격상 ▲백두산 관광 실시 ▲백두산-서울 직항로 개설 ▲이산가족 상봉 및 영상 편지 교환사업 추진 등이 적혀있다.

    판문점 선언에는 여기에 추가로 당국과 국회, 정당, 지방자치단체, 민간단체 등 각계각층이 참가하는 민족공동행사 적극 추진과 2018년 아시아경기대회 비롯한 국제경기들에 공동 진출 등이 명기됐다. 10.4 선언에서 '2008년 북경 올림픽경기대회에 남북응원단이 경의선 열차를 처음으로 이용하여 참가'키로 한 것의 연장선으로 보인다.

    나아가 판문점 선언에서는 이같은 계획이 문서에 그치지 않도록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성에 설치, ▲고위급 회담을 비롯한 각 분야의 대화와 협상 빠른 시일안에 개최 ▲각계 각층의 다방면적인 협력과 교류 왕래와 접촉을 활성화 등을 약속했다.

  • ▲ 2007년 10·4선언과 지난 27일 판문점 선언을 비교한 표. ⓒ뉴데일리 임재섭 기자
    ▲ 2007년 10·4선언과 지난 27일 판문점 선언을 비교한 표. ⓒ뉴데일리 임재섭 기자

    그러나 북한에 줄 인센티브 대신 받아왔어야 할 '비핵화'와 관련한 약속은 또다시 원론적인 수준에 그쳤다. 10.4 공동선언에서는 "남과 북은 한반도 핵문제 해결을 위해 6자회담·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가 순조롭게 이행되도록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하였다"고만 돼 있는데, 판문점 선언에서는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했다"고 했다.

    이어 "남과 북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국제 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위해 적극 노력하기로 했다"며 "북측이 취하고 있는 주동적인 조치들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대단히 의의 있고 중대한 조치라는데 인식을 같이 한다"고 했다.

    이는 그간 북한이 수년 간 핵개발 및 도발을 해온 주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되레 북한의 그간의 행적에 애써 눈감은 문구로 볼 여지도 있는 대목이다. '비핵화를 위한 국제 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위해 적극 노력한다'는 설명 역시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최대한의 압박·대북제제 동참을 언급한 것과는 결이 달라진 부분이다.

    무엇보다 북한은 앞선 원론적인 핵폐기 선언에도 비핵화를 멈추지 않았다. 북한은 노무현 정부 시절이던 지난 2006년 10월 9일 1차 핵실험을 한 뒤 2007년 10월 4일 평양에서 이같은 선언을 채택했으나, 2년 뒤인 2009년 5월 25일 2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이후 꾸준히 핵도발을 강행, 지난 217년 9월 3일에는 6차 핵실험까지 마친 상황이다.

    이에 대해 야당 역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본말이 전도된 선언문이라는 지적이다.

    자유한국당 전희경 대변인은 "북한의 핵포기가 전제돼야 공동번영과 통일이 가능한 것"이라며 "북한의 핵포기만이 군사적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전쟁위험을 해소할 수 있는 길"이라고 말했다.

    전 대변인은 "그토록 비난 받았던 노무현 정부의 10.4 남북공동선언에서 북한이 약속했던 비핵화 보다도 오히려 후퇴한 수준"이라며 "판문점 선언 어디에도 북한이 검증가능하고 회복불가능한 핵폐기를 할 것이라는 약속을 찾아볼 수 없다"고 꼬집었다.

    아울러 "북한은 91년 이래 지속적으로 비핵화를 천명해 왔다. 무려 8차례에 이르는 거짓말에 이어 이번에도 공허한 시간벌기에 그칠 가능성이 매우 크다"며 "UN의 대북제재에도 위배될 수 있는 여러 약속들을 북한에 함으로써 이후 미북 회담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를 국제사회에서 고립시킬 수 있는 가능성에 봉착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