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남산예술센터가 올해도 변함없이 한국사회를 둘러싼 다양한 사회적 이슈와 현상을 담는다.

    서울문화재단(대표이사 주철환) 남산예술센터(극장장 우연)는 지난 17일 오후 기자간담회를 열고 오는 3월부터 12월까지 드라마센터 무대에 오르는 연극 8편 등 2018년 시즌 프로그램을 공개했다.

    우연 극장장은 "2015년부터 시작해 2016, 2017년은 가장 드라마틱한 시간이었다. 극장과 사회적 역사를 통틀어서 역사의 변곡점을 가져온 시기였고, 창작자의 목소리와 블랙리스트, 예술계 내 성폭력, 동성애 등 사회문제를 제기하는 작품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2018년은 '성찰'과 '되짚기'가 키워드다. 동시대 작가들은 문제 제기 이후의 자기 내면의 성찰, 시대 변화에 고개를 돌렸다. 극장 밖에서는 블랙리스트 진상 조사위원회가 활동하고 있고, 잘잘못을 따지는 행정적인 조치들이 이뤄지고 있다. 작가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내면의 진상조사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가장 먼저 연극 '처의 감각'(작 고연옥·연출 김정, 4월 5~15일)이 시즌 프로그램의 첫 문을 연다. 2016년 시즌 프로그램 '곰의 아내'(각색·연출 고선웅)가 원작이다. 삼국유사 웅녀 신화를 모티브로 한 여성의 눈으로 바라본 약자의 희망에 대해 그려낸다. 기획 단계에서 독일 하이델베르크 극장 축제에 공식 초청돼 4월 말 독일어로 낭독공연을 진행한다. 

    고연옥 작가는 "극장으로부터 '처의 감각'을 제작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기쁘기보다는 무서웠다. 연약해서 버틸 수 있을까, 관객과 소통할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더 늦기 전에 불안하고 위태로운 길을 가보자고 마음 먹었다"며 작품에 참여한 이유를 밝혔다.
  • 고 작가는 "가장 사회적 약자는 어쩌면 도덕적으로 지탄을 받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남편과의 관계에 실패하고 자신의 아이를 죽이는 엄마가 아닐까 싶었다"며 "우리가 만약에 용기를 내 이 여자의 삶을 찬찬히 들여다 볼 수 있다면 언젠가 우리가 약자가 됐을 때 비극을 피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으로 극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남산예술센터는 2016년부터 연극의 기존 형식을 탈피한 작업들을 해왔다. 지난해에는 단 1명의 관객을 위한 일대일 공연 '천사 - 유보된 제목', 단 한 명의 배우도 출연하지 않는 '십년만 부탁합니다' 등 이색적인 공연을 올렸다. 올해는 독특한 소재의 창작극 작업 2편을 시도한다.

    '손 없는 색시'(4월 26일~5월 7일)는 조현산 연출이 경민선 작가의 시적인 희곡을 인형극으로 선보인다. '이야기의 方式, 춤의 方式-공옥진의 병신춤 편'(공동창작·연출 윤한솔, 10월 4~14일)은 키네틱 센서를 이용해 공옥진의 병신춤의 동작을 복제하고, 이를 통해 춤을 배우며 현재화하는 연극적 방식이다.

    남산예술센터 상시투고시스템 '초고를 부탁해', '서치라이트'에 이어 시즌 프로그램까지 단계별 제작 시스템을 거치게 되는 '두 번째 시간'(작 이보람·연출 김수희, 11월 15~25일)은 7~80년대 의문사를 다룬다. 독재정권 시절 의문사로 죽은 남편을 둔 부인의 삶을 통해 기록된 역사에서 빗겨난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의 역사를 말하고 있다.

    정치극 페스티벌 '권리장전'의 예술감독이기도 한 극단 미인의 김수희 연출은 "동시대성이나 사회성, 정치를 기반으로 한 공연은 굉장히 실험적이거나 재미없다는 말을 많이 듣는데 그렇지 않다. 다양한 작업을 펼칠 기회가 부족하고 많이 노출되지 않아 관객들이 접하지 못하다 보니 그렇게 규정한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 2009년 재개관한 남산예술센터의 특징은 젊은 예술가들의 실험적인 창작 연극들이 주로 공연되며, 민간 극단과의 활발한 협업을 꼽을 수 있다. 그 예로 '푸르른 날에'(신시컴퍼니), '햇빛샤워'(극단 이와삼),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극단 골목길), '파란나라'(극단 신세계) 등이 관객과 만났다.

    2017년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받았던 극단 백수광부의 '에어콘 없는 방'(작 고영범·연출 이성열, 5월 17일~6월 3일)이 재공연된다. 해방 이후 30년 만에 한국을 찾게 된 70살의 실존 인물인 피터 현이 유신호텔 503호에 머물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이다. 그가 겪는 심적 갈등을 호텔방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자아분열의 방식으로 표현한다.

    지난해 11월 국립극단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극단 백수광부의 이성열 대표는 "우리 현대사가 한 평범한 사람이 살아가기에 얼마나 곤란하고 힘든 역사였는지 슬픈 자화상처럼 보여준다"며 "작년에 공연하면서 미진했던 부분과 극중극을 좀 더 강화하고 새롭게 만들었다"고 했다.

    작품 개발 단계에서부터 제작과 유통을 연계해 일본, 홍콩과 함께 제작한 공연도 눈길을 끈다. 한국의 이경성 연출을 비롯해 일본·홍콩의 80년대생 젊은 연출가들이 의기투합한 '나와 세일러문의 지하철 여행'(가제, 12월 5일~7일)은 2019년까지 3년간 진행되는 장기 프로젝트다.

    남산예술센터는 480여석 규모 객석이 반원형으로 무대를 감싸고 프로시니엄무대와 돌출형 무대가 결합한 구조를 갖고 있다. 우연 극장장은 "목표가 현대식 아고라 극장이 되는 것이다. 관객들과 현대사회 문제에 안테나처럼 촉수를 세운 작가들에 의해 활발한 논쟁의 장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 [사진=서울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