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햇볕정책에서 ‘햇볕’은 김일성의 은총

    햇볕정책은 북한에게 햇볕을 쪼이는 게 아니라,
    한국이 ‘민족의 태양’ 김일성의 은총을 사모하여
    북한이 원하는 대로 따르자는 정책이다.

    최성재     
     
     김대중 정부가 시작하고 노무현 정부가 계승한 햇볕정책은 매우 친숙한 이솝 우화에서 따온 것이어서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쉽게 받아들였다. 반공정책은 차가운 겨울바람이었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지만, 햇볕정책은 따뜻한 봄볕이기 때문에 성공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다. 피차 손해인 대결을 지양(止揚)하고 잘 사는 한국이 큰형의 마음으로 너그럽게 대하면, 돈도 주고 물자도 주면 북한이 틀림없이 쇄국의 외투를 벗고 개혁개방의 작업복으로 갈아입을 것이라는 논리였다. 암묵적 동의도 뒤따랐다. 반공정책은 한국의 역대 독재 정권이 장기집권을 도모하고 독재에 대한 비판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애국심의 방패를 번득이며 북한의 창을 과장하고 나아가 민주화운동을 공산화운동으로 조작하고 날조한 대국민 세뇌공작이었다는 것이다. 독재정권이 위협을 받을 때마다 간첩 사건을 터뜨려 왔지 않느냐? 그걸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실은 대부분 조작이 아닐까?

      결과는? 김일성이 죽은 지 18년이나 되었지만, 김일성의 교시는 일점일획도 바뀐 게 없다. 김일성이 앉은 나무 의자 하나도 한국의 국보 1호보다 소중하게 보존된다. 한국의 국보 1호는 아무나 들어가서 놀다가 불태울 수 있지만, 김일성이 현장지도하면서 한 번이라도 앉은 의자는 꽃제비는 물론 추풍낙엽 한 잎도 감히 쉬지 못한다. 당연히 북한은 쇄국의 외투를 더욱 여미었을 뿐이다. 벗기는커녕 단추 하나 열지 않았다. 목깃을 세워 귀까지 가렸다. 보조금을 두둑이 받는 한국과 달리, 휴대폰 하나 개통하려면 상납에 상납을 거듭하며 7번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와 통화하다가 걸리면, 바로 강제수용소로 끌려간다. 그뿐인가. 여차하면 북한은 대를 이어 서해를 불바다로 만든다. 장거리 미사일을 쏘고 핵실험을 강행한다.

      민통당의 문재인은 노무현 시절에는 북한이 한 번도 도발하지 않았다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햇볕정책을 대대적으로 부활하겠다고 벼르지만, 노무현 때보다 안보가 위협을 받은 적이 없다. 핵실험 1번은 저 끔찍한 천안함 폭침 10번보다 아니 100번보다 큰 도발이었다. 핵 한 방이면 수십만, 수백만이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제 땅의 300만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굶겨 죽이는 집단이 눈꼴신 한국인 300만을 한 방에 죽이는 걸 조금이라도 양심에 꺼려할까. 핵실험은 무슨 돈으로 강행한 건가. 그것은 김대중이 박지원을 시켜 상납한 4억5천만 달러 없이는 애당초 불가능했다. 북한의 1년 예산이라야 시중환율로 2억 달러가 채 되지 않기 때문에, 당시에는 러시아와 중국도 북한한테 달러가 없으면 석탄이나 철광석으로라도 빚을 갚으라고 독촉하던 때였기 때문에, 노태우의 북방정책이 여전히 유효하여 무기 수출도 여의치 않았고 마약 밀매도 어려웠기 때문에, 현금 4억5천만 달러는 북한으로선 상상초월의 거금이었던 것이다. 개혁 대상 1호라는 대기업으로부터 회의 한 번에 2천만 원을 받고, 정경유착 가능성을 은근슬쩍 흘리는 것만으로 10년간 움쩍 않던 주식을 천정부지로 치솟게 만들어 단돈 10만 원에 발발 떠는 주식 개미들로부터 단숨에 4억 달러를 아귀같이 긁어모은 철면피 안철수는 ‘한국이 돈을 안 줬어도 북한이 핵을 개발했을 것’이라고 비단금침 속에서 386운동권에 대한 부채(負債)의식이 무의식이 되어 한가하게 잠꼬대할 수 있겠지만, 현실은 냉엄하기 짝이 없다.

      당시 상황도 한국이 북한에 햇볕을 쪼일 상황이 아니었다. 노태우의 북방정책에 중국과 러시아와 동구권이 한국 편으로 돌아서자, 북한은 양처럼 고분고분해졌다. 말이 통했다! 개혁개방을 철석같이 약속했다. 그러다가 만만한 김영삼이 들어서자마자 핵무기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한다며, 남북기본합의서를 바로 휴지조각으로 만들었다. 그런 걸 김영삼과 클린턴이 달래서 핵발전소를 지어 주기로 하고 식량도 주고 중유도 주었다. 북한은 이걸 또 악용했다. 플루토늄은 원래 약속에 들어 있지만, 우라늄은 그렇지 않다며 우라늄농축을 자랑했던 것이다. 두 번 속을 수 없었던 미국은 북한이 필요한 기름의 대부분을 제공하다가 바로 끊어 버렸다.

      무슨 말인가. 이미 노태우 정부부터 반공정책은 사라졌다. 넓은 의미에서 햇볕정책(포용정책)은 그때 시작되었던 것이다. 반칙은 모조리 북한이 저질렀다. 이 반칙도 몇 번은 봐 주었지만, 도무지 개전의 정이 없었기 때문에 국제공조로 약간의 벌칙을 가하던 중이었다. ‘네가 내 이빨 하나 부러뜨렸으니까 나도 네 이빨 하나 부러뜨리겠다!’는 반공정책과는 거리가 멀었다. 김대중은 바로 이 시점에서 뜬금없이 햇볕정책을 들고 나와 서울평화상의 서울을 속이고 노벨평화상의 오슬로를 속인 것이다.

      개혁개방의 시늉만 내면 돈도 주고 식량도 주고 시멘트도 줄 테니까, 선군정치를 계속하시라, 공산군사독재정치를 계속하시라, 세계 유일의 공산왕조를 계속하시라, 적화통일 전략을 계속하시라, 김일성을 민족의 태양으로 모시라! 그러면 한국도 김일성을 민족의 태양으로 모실 테니까, 날이면 날마다 밤이면 밤마다 이승만의 정통성을 물고 늘어져 김일성에게 간접적으로 정통성을 부여할 테니까, 날이면 날마다 밤이면 밤마다 박정희의 독재를 물고 늘어져 김일성과 김정일의 독재에 대한 비판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테니까, 역사를 새로 써서 교과서를 바꾸어 대한민국에겐 ‘빅엿’을 먹이고 북한에겐 양비론으로 비판하는 척하면서 인삼녹용을 바리바리 싸줄 테니까, 한국의 김일성만세파는 사면복권하고 중용하고 한국의 박정희만세파는 모조리 친일파 후손과 독재자 주구세력으로 몰아 낯을 들고 다니지 못하게 만들 테니까, 개성으로 금강산으로 돈을 계속 보내 줄 테니까, 그 돈이 어디로 가는지 절대 묻지 않을 테니까, 대를 이어 공산독재를 계속하시라. 2대 세습도 좋고 3대 세습도 좋고, 북한 인권에 대해서는 입도 벙긋하지 않을 테니까, 죽이든 살리든 먹이든 굶기든 마음대로 하시라.

      한국의 햇볕은 전 세계에서 가장 추운 나그네 북한주민에게는 전혀 비치지 못하고, 엉뚱하게 전 세계에서 가장 악랄한 겨울바람 북한의 공산왕족과 공산귀족에게만 쪼여졌던 것이다. 정반대로 한국에는 김일성이 은연중에 민족의 태양으로 떠올라 그 은총을 80년대부터 노골적으로 사모하던 자들이 대한민국의 입이 되고 눈이 되고 양심이 되어 북한은 무슨 일을 저질러도 이해하고 변명해 주고, 한국은 아무리 잘한 일도 꼬투리 잡아 비판하고 매도하고, 오도된 햇볕정책을 바로잡으려는 애국자는 수구꼴통으로 몰아 화염병을 던지고 촛불을 들었던 것이다. (2012. 10.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