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영, 그녀는 ‘탈북자의 어머니’다.
  •    

    물망초학교

    박선영, 그녀는 ‘탈북자의 어머니’다.

  • 2012년 9월11일 21일(금) 오전 11시,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중암리 583번지 탈북어린이 기숙학교 개교식이 있었다. ‘북한인권의 어머니’에서 ‘탈북어린이의 어머니’로 잘 알려진 박선영 전 의원, 동국대 교수가 그곳에 있었다.

    박선영 전 의원은 2012년 2월 14일 탈북자 북송반대 농성의 불을 지핀 분이다. 여러 날의 집회를 준비하면서 지친 몸으로 21일부터 단식에 들어갔고, 11일만에 단식현장에서 쓰러졌었다. 그 불씨가 지금도 꺼지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박선영 전 의원은 자생초마당의 불씨를 지핀 분이다.

  • 오늘 필자는 꼭 그곳에 가야했다. 8월 31일의 기억, 200일을 맞이한 탈북자 강제북송 반대농성장인 자생초마당의 일들을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다. 그날, 박선영 전 의원은 옥인교회와 경찰에게 모멸감에 가까운 수모를 당했다. 그 죄책감을 덜어 버리기 위해서라도 그곳에 가야만 했다.

    물망초학교까지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고속버스를 타고, 또 여주에서 버스를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다. 한참 버스를 기다리다가 결국 택시를 탔다. 호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았기에 물망초학교까지 가는 길이 쉽지 않았으리라...... 어쨌거나 시간에 맞춰서 그곳에 도착했다.

    필자가 알고 있는 하나님, 그들에게는 없었다.

    탈북자 강제북송 반대 농성현장에서 하나님의 가면을 쓴 가증스런 얼굴들을 많이 목격했다. 그들은 단체라는 떼거리, 그리고 종교라는 또 다른 떼거리로 가히 ‘인권팔이’라고 불릴 정도의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하나님의 가면을 쓴 탈북자의 모습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었다. 탈북자를 팔아먹지 마라~

    Until the day, 중국이 탈북자를 난민으로 인정하는 날까지 계속 농성을 할 것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을 찾으며 목소리를 높여 기도했다. 8월 31일 농성을 방해할 목적으로 행사(전기고문 퍼포먼스) 직전에 옥인교회는 전기를 차단했다. 벌써 22일째다. 그들은 누구 하나 옥인교회에 항의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지금까지 장난했나?

    8월 31일 사건은 탈북자 강제북송 반대 농성현장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거의 알고 있는 일이다. ‘박선영 전 의원이 수모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아무런 항의를 하지 않았다. 탈북자 강제북송 반대의 불씨를 온몸을 태워 지핀 박선영, 그들이 인권팔이를 할 수 있도록 돗자리를 깔아 주신 분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일에만 몰두할 뿐, 그들에게 탈북자나 하나님도 없더라는 것이다.

    그들은 ‘물망초학교’에도 없었다.

    그렇게 후원금을 모으며 열성적으로 탈북자 강제북송 반대를 외쳤던 그들, 그들의 목적이 전자인지 후자인지 헷갈리게 만든 사람들은 탈북 어린이 기숙학교인 물망초학교의 개교식에 나타나지 않았다. 아마 어디선가 후원금을 모으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바쁘게 잔머리를 굴리고 있어서 그런 것일까?

    그들은 4월 30일 ‘옥인교회가 텐트를 철거하라는 통보’를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박선영 의원은 텐트를 철거하기로 했고, ‘공식적인 기자회견을 마친다’고 했다. 또한 ‘옥인교회에 불편을 줘서 미안하다’고 하면서 ‘옥인교회의 텐트철거 요청에 따르기로 했다’는 말도 했었다. 근데 ‘옥인교회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거짓말을 했고, 그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는 하나님을 팔고 있는 사람들은 입을 다물었다. 그래서 ‘그들의 하나님은 없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그들은 박선영 전 의원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이러한 사실 관계를 정확히 알고 있는 필자 또한 당시 침묵했었다. 그리고 8월 31일 자생초마당의 부름(?)을 받고 기꺼이 행사에 참석한 박선영 전 의원은 무참히 수모를 당한 것이다. 필자는 그 죄책감, 분노, 미안함으로 감히 박선영 전 의원의 얼굴을 바라 볼 수가 없었다.

    박선영, 그녀는 ‘탈북자의 어머니’다.

    박선영 전 의원이 반갑게 인사를 했다. 필자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언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을 하고 있는지 어떤지 모르지만 그녀는 웃고 있었다. 박선영 의원과 함께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필자는 유명인과 의식적으로 사진을 찍지 않는다. 그리고 필자 스스로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한 기억도 없다. ‘사진 한 장 같이 찍어요......’ 박선영 전 의원은 필자의 손을 꼬옥 감쌌다. 그리고 전해지는 느낌, 그녀는 위대한 어머니다. 탈북자의 어머니......

  • <박선영 전 의원과 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