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제임스 카메룬 감독의 영화 '타이타닉'이 3D로 다시 편집되어 화제에 올랐다. 그런데 죽은 김정일이 바로 이 영화 '타이타닉'을 10번 이상이나 봤다는 재미있는 증언이 나왔다.

    국내 최초 탈북자 신문 <뉴포커스>는 영화광 김정일이 '타이타닉'의 제작기법에 반해 북한 영화를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 수출해서 쌀을 사려했다는 탈북자의 증언을 입수해 보도했다.

    다음은 <뉴포커스>가 보도한 기사의 전문이다. <편집자 주>

     

    "타이타닉" 김정일을 두 번 울렸다

    영화를 팔아 쌀을 사려 했던
    북한

    서영석        

    요즘 세계인의 영화 '타이타닉'이 3D로 재탄생했다는 광고가 소개되고 있다. 누구나 새삼 다시 보고 싶어지는 그 영화에 대해 흥미있는 증언을 듣게 됐다. 영화광 김정일도 영화 ‘타이타닉’을 본 후 큰 감명을 받아 영화관련 선전부 직원들과 중앙당 간부들에게 단체 관람을 시켰다는 것이다.

  • 북한 선전분야에서 근무했었다는 탈북자 이진우(44. 가명) 씨의 증언에 의하면 "어느 날 김정일의 지시로 중앙당 간부들을 소집하여 단체로 영화를 관람케 했었는데 그게 ‘타이타닉’이었다. 아마도 북한 정권 역사상 적대국가인 미국영화를, 그것도 누구보다 당성이 투철해야 할 중앙당 간부들에게 보여준 일은 처음일 것이다."고 했다.

    “그런 일은 생전 처음이라 영화를 관람했던 모든 사람들이 의아해 했다”.

    김정일이 평소 한국영화를 비롯해 외국영화까지 즐기는 것은 알았지만 굳이 적대관계인 미국의 영화를 간부들에게 집체관람시킨 이유를 묻자 이씨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중앙당 선전부 영화담당 부부장’이었던 최익규가 영화 상영 전에 한 시간가량 영화 촬영기술에 대해 강연을 하며 미국의 선진 영화제작기법을 모방해서라도 우리 모두 영화를 이용한 외화벌이에 나서자며 선동하였다” 는 것이다.

    영화를 본 사람들의 반응이 어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씨는” 대부분 영화자체를 황홀하게 관람하기도 했지만, 상영 후 적지 않은 사람들이 “평화의 적이라는 미국 놈들이 여자들에게 구조선의 첫 자리를 양보할 만큼 오래전부터 저렇게 예의 바르고 생각이 바른 놈들이었는가? 지금은 얼마나 더 문명해졌을까?” 하는 경탄과 동경심을 드러냈다는 것. 

    타이타닉이 김정일에게 미친 영향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김정일이 얼마나 타이타닉에 반했으면 해방 후 있었던 '우키시마호 비극 "사건을 주제로 타이타닉을 능가하는 영화를 만들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우키시마호 사건'이란 1945년 8월 24일 일본 측이 강제징용으로 끌려갔던 한인 수천 명을 강제로 초과 승선시켜 귀국시키던 중 의문의 폭발사고로 한국인 524명이 사망(일본측 주장)한 비극적인 사건이다. 일본의 주장과 달리 실제로는 한국인 수천 명이 수장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제작된 영화가 바로 “살아있는 령혼들”이라는 작품인데 2001년 한국의 “전주 국제영화제”에서도 상영된 작품이다. 그러나 정치적인 문제를 다루지 않은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미흡한 점이 많아 국내개봉은 하지 못했다. 이 씨의 증언에 의하면 영화 촬영을 위해 김정일은 폐품용 대형선박까지 영화촬영에 아낌없이 지원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타이타닉을 본 세계인의 눈높이에 비해 형편없는 북한 식 타이타닉이어서 흥행에 실패한 것이다.

  •                         <사진= "살아있는 령혼들" 북한영화의 장면들>

    북한에서 “살아있는 령혼들”을 본적이 있다는 평양연극영화대학 출신 박성모(가명, 46세) 씨는 '사람을 와이어에 매달고 물에 넣었다 뺐다를 수차례 하더라. 제작의도는 좋았지만, 영화로서의 완성도가 형편없어서 보기가 민망했다. 오죽하면 영화상영 도중 김정일이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밖으로 나가버렸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했다.

    "혹시 영화 제작자가 처벌을 받지는 않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씨는 “김정일이 노여움보다 실망으로 끝난 영화평이어서 별다른 처벌은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어떤 탈북자는 재미있는 또 다른 사실도 알려줬다.

    "북한에서는 타이타닉이 침몰한 다음날인 1912년 4월 15일(김일성이 태어난 날)을 두고 “유럽에선 태양이 질 때 동양에선 태양이 떴다”는 식으로 김일성을 찬양하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고 했다.

     10번 이상 타이타닉을 봤다는 김정일은 아마도 북한 영화 속에서 가라앉는 우키시마호의의 모습을 보며 자신이 선장으로 있는 북한이란 나라도 언젠가 그 역사적인 화물선 처럼 침몰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국내최초 탈북자신문 뉴포커스www.newfoc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