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구 “국방부, 군인공제회와 협의” 국방부는 “아닌데….”강남 마지막 남은 ‘노른자위 땅’ 개발 놓고 제각각 눈치만


  • 서울 서초구 서초동 국군정보사령부(이하 정보사) 부지를 놓고 국방부와 군인공제회, 지자체가 서로 딴 소리를 하고 있어 이목이 쏠리고 있다.


    국방부-군인공제회는 ‘군인아파트’, 서초구는 ‘문화클러스터’, 서울시는 ‘공원’?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국방부는 군인공제회와 함께 군인아파트를 건설해 8,000억 원에 달하는 정보사 이전비용을 충당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고, 서초구는 ‘문화 클러스터’를, 서울시는 공원과 문화공간으로 개발할 계획을 내세우고 있다.

    국방부는 “정보사 부지 개발계획을 놓고 서초구청과 공식 협의한 적은 없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서초구청 관계자는 “지금까지 국방부, 군인공제회 측과 수차례 협의를 했다”고 말하고 있다.

    서초구청 측에 따르면, 정보사 부지에 1600여 가구 규모의 군인아파트를 건설해 군인공제회 회원(장기근속 간부)인 무주택 가구주 군인들을 입주시키는 계획을 협의했다고 한다. 군인아파트 건설은 군인공제회가 맡게 될 예정이다.

    서초구는 당초 이 지역을 공원으로 복원하려 했다. 그러다 2007년 10월 17일 ‘정보사 이전부지 문화 클러스터 사업 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를 발족하면서, 테마를 '공원'에서 '문화"로 바꿨다. 새로운 지자체장이 선출된 후부터는 더욱 적극적으로 ‘문화 클러스터’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내놓고 있다. 이번에 공개한 내용도 그 연장선에 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추진위’다.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유인촌 前문화체육관광부 장관(당시 前서울문화재단 이사장), 박범훈 중앙대 총장, 김천주 대한주부클럽연합회 회장이 공동위원장으로 참여했다. 이상훈 前국방장관은 고문. 이후 추진위에는 이혜훈 의원, 고승덕 의원 등도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추진위는 정보사 부지에 미술관, 박물관, 공연장 등 문화시설, 국제회의가 가능한 컨벤션 시설을 조성하고 이와 함께 예술의 전당에서 정보사 부지와 강남역을 잇는 남부순환도로 반포로 일대에 세계 각국 유명 레스토랑 등이 들어서는 ‘글로벌 문화벨트’를 조성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한편 서울시는 공식발표는 없었으나, 정보사 부지를 인근 서리풀 공원과 합쳐 공원녹지로 조성하고 공익사업에 활용하자는 의견을 내놨었다.


    정보사 부지 개발 열쇠, 3분의 1씩 나눠가진 국방부, 서초구, 서울시


    하지만 이 같은 계획들은 국방부와 지자체 주민들의 반대로 어떤 것도 이뤄지지 않았다.

    정보사의 안양 이전계획은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지만, 국방부나 군인공제회의 공식적인 발표는 없었다. 서초구와 일부 주민들은 ‘금싸라기 땅에 군인아파트는 안 된다’며 반발했다.

    서울시 측은 서초구와 국방부 간의 논란이 불거지자 공식입장은 내놓지 않고 있다. 하지만 내심으로는 고속터미널 이전과 관련된 계획을 함께 추진했으면 하는 바램을 내비치고 있다.

    서울시는 기존 서초구 반포동에 있는 고속터미널을 정보사 자리로 이전하고, 대신 고속터미널 지역에는 인근의 고급 아파트와 같은 주상복합아파트를 개발했으면 하는 생각이라고 한다.또 서초구의 교통정체 해소를 위해 청계산을 관통해 남부순환도로까지 이어지는 터널 건설계획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런 서울시의 계획대로 될 경우 국방부와 서초구에 돌아가는 ‘이익’은 거의 없다. 또한 정보사 부지와 인근 서리풀 공원 주변에는 서초고등학교와 고급 주택가들이 들어서 있는데, 여기에 고속터미널이 들어서게 되면 주민들의 극심한 반발이 예상된다. 국방부 또한 ‘노른자위 땅’을 매각하거나 불하해 재원을 마련하고자 하는 계획이 어그러지게 된다.

    이처럼 제각각 ‘속내’가 있음에도, 이들은 서로 강하게 이의제기를 못하고 물 밑 움직임만 보이고 있다. 정보사 부지 개발의 열쇠를 세 주체가 나눠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정보사 부지는 국방부 소유다. 하지만 이를 개발하려면 서울시의 용도변경 허가가 필요하다. 서초구는 지역주민, 개발주체와 ‘살을 맞대는’ 단체다. 때문에 서로 눈치를 보며, ‘우리는 모른다’는 식으로 발뺌만 하고 있다.


    언론보도에 국방부 ‘모른다’ 하자…서초구 '당황', 서울시 '모른 척'


    이 같은 ‘줄다리기’는 지난 주말 서초구가 공개한 자료로 ‘균형’이 깨지는 분위기다. 지난 1일 서초구는 ‘정보사 이전부지 지구단위 계획 수립’이라는 자료를 언론에 살짝 공개했다. 서초구 측은 이때 올해 초 정보사 부지에 군인아파트를 지을 수 있게 해주기로 계획을 바꿨고, 이후 국방부·군인공제회와 이 내용을 합의했다고 시인했다.

    서초구는 정보사 부지를 4개 구역으로 나눴다. 그중 4구역 2만1,000㎡(6,350평)은 국방부가 정보사 이전 비용을 확보할 수 있게 아파트 1,600여 가구를 건설하도록 허가해 주고, 나머지 1구역 4만6,300㎡에는 무역협회의 지원을 받아 G20 기념관(지상 2층, 지하 1층, 기념관, 아트홀, 문화센터 포함)을 건설하고, 2구역 2만4,900㎡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이전부지로, 3구역 6만9,300㎡에는 지하 도로와 공원 녹지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공개했다.

    서초구 관계자는 이어 3일에는 "2012년 말 이전하는 정보사 부지 16만1,000㎡ 활용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토지 소유주인 국방부와 유관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서울시와 협의를 진행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서초구 관계자는 “일단 구 자체적으로 구상안을 마련했고 이를 지구단위계획으로 구체화하기 위해 외부기관에 용역을 주기로 했다”며 “용역 결과를 검토해 구체적인 계획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초구 측은 4구역은 현재 2종 일반주거지역으로 분류돼 있어 이곳에 아파트가 들어서면 (국방부가) 개발이익으로 정보사 이전 비용을 충당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10층 이상의 아파트를 지을 경우에는 3.3㎡당 분양가를 1,500만 원으로만 잡아도 이전비용 8,000억 원은 충분히 충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초구 측은 올 연말까지 지구단위계획안을 수립해 서울시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에 국방부가 즉각 제동을 걸고 나섰다. 국방부 측은 4일 브리핑을 통해 “대체 어디서 국방부가 정보사 부지에 군인아파트와 G20기념관을 짓기로 했다고 했는지 모르겠다”며 “지자체와 관련 협의를 한 바 없다”고 밝혔다. 군인공제회 또한 "그런 일은 모르겠다"며 공식 확인을 해주지 않고 있다.

    이 같은 국방부와 군인공제회의 태도에 서초구는 당황해 하고 있다. 서초구 측은 진익철 서초구청장이 작년 11월 22일 정보사를 찾아 의견을 듣고, 12월 7일에는 문화행정과장이 국방부를 방문한 사실이 이미 공개됐음에도, 4일 “윗사람들 사이에선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 지 알 수 없다”며 갑자기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정보사 이전부지 지구단위계획에 대한 용역 발주도 4월에서 6월로 갑자기 늦췄다. 이렇게 되면 지구단위 계획서는 내년 6월경에나 나오게 된다. 

    한편 서울시는 정보사 부지 개발계획으로 논란이 커지자 발뺌하는 분위기다. 4일 서울시 관계자는 “그 부분에 대해서 우리는 아는 바가 없다”며 “서초구와 국방부에 알아보는 게 좋을 것”이라고 답했다.


    정보사 부지 개발,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정보사 부지를 둘러싼 3자 간의 ‘동상이몽’은 서초구 주민들에게도 상당한 스트레스다. 고급 주택가 밀집 지역인 정보사 부지 인근 주민들은 이 지역에 군인 아파트를 짓는 것에 격렬히 반대하고 있다. 땅값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에서부터 인근 서리풀 공원까지 훼손될 경우 녹지공간이 크게 줄어 주거환경이 나빠진다는 우려까지 이유도 다양하다.

    한편 서초구와 서울시 측은 이 지역을 근린시설과 종합터미널 등으로 개발하고 고속버스 터미널 부지를 포함한 반포지구를 고급 주택 밀집단지로 개발하기를 희망한다. 재정확보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추진위’도 반포 지구의 상습 교통정체를 해소하고 ‘디자인 서울’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이 지역의 개발이 꼭 필요하다고 본다. 개발만 가능하다면 군인아파트도 ‘OK’다.

    ‘추진위’ 위원인 한나라당 고승덕 의원 측근은 4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군인아파트를 짓게 해주는 대신 정보사 부지 개발을 빨리 해 터널을 조기 개통할 수 있다면 그 정도는 양보할 수 있다”며 “지금도 정보사 부지에는 건물이 군데군데 있어 녹지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정보사 부지를 둘러싼 대립을 보는 서울 시민들의 마음은 불편하다. 교통량도 중요하고, 정보사 부지를 잘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개발계획 속에 서울 시민 전체를 위한 내용은 어디서도 보이지 않는 다.

    '정보사 부지 개발' 보도가 나오자 부동산 업계와 '기획 부동산'들만 들떠 있다. 여기다 인근의 한 대형교회 주변에서는 '정보사 부지를 우리가 주차장으로 매입할 것'이라는 소문까지 흘러 나오고 있다. 눈쌀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공익이 최우선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