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대기업의 전형이라 할 GM의 초기 회장이었던 슬로언(Alfred P. Sloan)은 기업이 사회 문제에 관여하는 것에 대해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는 기업이 경제적 부를 창출하는 본연의 역할만을 조용히 잘 수행해 내야지 사회 사업가처럼 나대는 것은 주제 넘는 행동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이런 생각은 그대로 이어져 자유주의 경제학자 프리드먼(Milton Fridman)은 1970년도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글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익을 증대시키는 것’이라고 썼다. 그는 경영자가 사회적 책임을 수행한다며 자선단체나 다른 사회적 목적에 기부하는 일은 주주의 부를 훔치는 것과 같다고 단언했다. 아마도 이런 자유주의적 전통에 따라 대기업은 자본주의 사회의 꽃으로서 그 역할을 키워올 수 있었고, 대기업 덕분에 국가 경제도 커질 수 있었다.

    오늘날 대기업은 사회의 중추적인 기관이라 할만 하다.
    시장 자본주의 국가에서 대기업이 수행하는 경제적 부가 없다면 그 사회는 지탱할 수 없다.
    이제 대기업의 총수는 유명 인사로서 그의 언행은 세인의 관심사가 되었다. 대기업의 이런 막강한 영향력은 일종의 권력으로서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수반하게 된다. 따라서 이제 대기업은 자신의 일차적 목적인 ‘경제적 부를 창출하는 일’ 만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고 하기 어려운 처지가 되었다. 그러나 대기업이 사회 전체의 문제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대기업도 역시 사회 내의 한 기관이기 때문이다. 사회 전체가 건강하지 못하다면 그 속의 대기업도 조만간 쇠퇴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 영역은 어디까지로 보아야 할 것인가? 피터 드러커(Peter F. Drucker)는 오늘날의 사회는 대기업에 의해 지탱되는 측면을 강조해 기업사회(Corporate Society)라는 용어를 제시했는데, 그는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다음과 같은 통찰을 보여 주었다.

    “회계 부정과 같은 이슈는 기업 윤리의 문제가 아니다.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보편적인 윤리이지 기업인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 오늘날 회계 부정이니, 비자금 사건 등은 단지 범죄일 뿐 기업윤리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문제 축에 들지도 못한다.
    “정부는 사회 문제에 대해 무능하다. 예를 들어 실업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정부에는 없다. 정부의 대응이라야 겨우 임시적인 공공근로 일자리를 만드는 정도다.” - 드러커는 사회문제의 해결을 위해 자원봉사의 시민정신, 사회적 사업가 정신 등에 기대를 걸었다.

    “기업윤리의 핵심은 히포크라테스의 선언, ‘무엇보다도 해를 끼치지 말라(First, do no harm)’에 따라 신중함(prudence)이 최우선 가치가 되어야 한다. 의도는 좋았지만 사회에 해를 끼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 드러커는 오래 전에 금융공학이라는 것이 우리 사회에 폐해를 끼칠 것을 예견하고 있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라는 금융 부실에 의해 야기된 세계적 공황의 폐해를 보면 기업윤리에 있어서 신중함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대기업은 사회에 공해 물질과 같은 부정적인 영향을 우선 제거해야 한다. 그러나 회사가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 예컨대 공해 물질 같은 것을 낼 수 밖에 없을 경우, 이를 사업적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 다우(Dow)는 자사의 무공해 공장 정책을 사업화해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사회의 중추 기관이 된 대기업이 정당성을 잃으면 사회는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 – 이 개념을 좀 더 확대해서 해석하자면 대기업은 ‘기능하는 사회(functioning society)’를 만드는 데 책임이 있다.

    이상의 예와 같이 드러커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문제에 대해 점차 포괄적으로 그 범주를 넓혀 왔다.
    그 중에서도 ‘기능하는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업이 책임을 가져야 한다는 점은 기존 경제학자들의 논의 중 가장 포괄적인 것이라 할 만 하다. 그런데 사회가 기능을 발휘하려면 그 구성원이 각자 사회 속에서 어떤 역할을 부여 받아야 한다. 즉 제 역할을 못 찾고 실업 상태로 남아 있는 구성원이 많다면 그 사회는 기능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드러커는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 영역에 대해 매우 신중했으며 고용의 문제를 기업이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을 하지는 않았다. 이런 주장은 기업 본연의 사명인 경쟁력을 키워 경제적 부를 창출하는 일과 배치될 수 있다. 또한 드러커는 직원의 고용 안정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여 온정적으로 대우하려다가 그들의 시민 정신을 손상하는 더 큰 실책을 범할 수 있다고 보았다.
    요컨대 사회적 실업의 문제에 대해 드러커는 기업의 책임을 권고하지 않았다. 드러커는 다만 대기업의 최고경영자가 구조조정을 한다고 직원을 쉽게 해고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엄청난 보수를 챙기는 것에 대해 윤리적이지 못하다고 비난했다. 그리고 이 사회가 겪고 있는 실업 문제 등 경쟁력 저하의 문제에 대해 경제학자들이 거시적 변수의 균형 문제로 접근하는 데 반대하면서, 기업체의 혁신 능력, 그리고 구성원, 특히 지식근로자의 생산성이 낮은 탓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그의 지적대로 고용 문제와 같은 사회문제가 원래부터 대기업의 책임이라고 떠넘길 수는 없다. 그러다가는 그나마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대기업마저 세계적 경쟁에서 밀려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과 같이 글로벌 경쟁으로 시장이 열려 있는 체계에서 대기업에게 다른 나라와 달리 과중한 부담을 지우는 일은 본질적으로 한계가 있다.

    그러나 결론은 많은 제약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이 오늘날의 구조적인 고용 문제에 책임을 가지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오늘날의 구조적인 저성장과 고용 없는 성장, 경제 순환이나 공황에 의한 청년실업과 조기 퇴직의 문제는 정부의 능력이 미치지도 않고, 사회의 어느 기관도 책임지지 않는 사각지대로 남게 되어 해결 방안 없는 사회문제가 되었다.

    현대 사회에서 청년실업이나 젊은 나이의 갑작스런 실업은 경제적인 어려움 자체도 문제지만 사회 속에서 자신의 역할이 없다는 상실감과 모멸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따라서 이 문제가 구조적으로 고착된다면 이는 무엇보다 심각한 사회문제이며, 사회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징후다. 과거 독일의 나치 정권이 말도 안 되는 전체주의 슬로건을 내걸고 정권을 잡은 것도 당시 독일인들의 장기적인 경제 불황과 좌절에 따른 것이었다. 결국 구조적인 실업은 단지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기 이전에 사회가 제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는 징후다.

    자본주의 경제 하의 경기순환에 따른 고용의 문제에 관해서 대기업이 나서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무엇보다도 대기업만이 영향력 있는 해결방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대기업은 많은 중소기업을 하청업체로 거느리고 있다. 만약 대기업이 이들 하청업체와의 건강한 거래 관행과 품질 지도로써 그들을 강하고 전망 있는 중소기업으로 키운다면, 많은 청년들이 그리로 발을 돌릴 것이다. 또 대기업이 스스로 고용 없는 성장 탓만 하지 말고 서비스 분야 등에 새로운 투자를 해서 고용을 창출한다면 실업 문제에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이상의 논의에 따라 확장된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에는 새로운 가치가 요구된다.
    평상 시의 경제학 관점에서는 기업에 관계된 이해관계자 내에서의 사회적 책임을 생각하면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이 빈발하는 경제 공황과 불평등이 심화되는 시대의 기업 윤리는 인본주의적 관점이 대폭 가미된 정신적 가치가 필요하다.
    이런 목적을 위해, 존 롤스(John Rawls)의 정의론과 같은 사회계약적 관점의 윤리학은 새로운 정신적 가치를 정립하는 데 좋은 이론적 배경이 될 수 있다. 존 롤스는 그의 유명한 정의론(Theory of Justice)에서 정의 사회를 구현하는 세 가지 계층 구조를 제시했는데, 그 첫째는 누구나 자유를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기회의 평등, 셋째는 분배의 평등을 논했다. 기회와 분배의 평등은 오직 사회의 약자를 위해 더 나은 조건을 만드는 일에 도움이 될 때 불평등을 허용한다고 했다. 그는 단지 이렇게 주장한 것이 아니라 정교한 사고 실험을 통해 사회의 구성원이 공평한 조건에서 서로 사회적 협약을 체결한다면 위의 체계를 선택할 수 밖에 없음을 제시했다.

    이제 그의 이론을 실업 문제에 적용할 경우 경제 위기 하의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다음과 같이 확장될 수 있다.

    첫째, 청년 실업이나 조기 실직의 문제는 기본권과 자유의 박탈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취업이 안 된 젊은이나 조기에 실직한 사람들은 기본적인 자유를 박탈 당한 것이나 다름 없다. 설사 그들이 당장 쓸 돈이 있고 없고가 문제가 아니라 사회 속에 어울리지 못하고 분노를 삭이려 산에나 가야 하는 신세는 거의 자유 없는 감옥 속의 생활과 견줄 만 하다. 따라서 대기업은 사회의 청년실업 문제나 조기 퇴직에 의한 실업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선도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 원래의 기업 논리라면 생산성을 최대한 높여서 고용을 한 사람이라도 줄이는 것이 관심사다. 그런데 장기적 경기후퇴 시에는 일자리를 나누어서라도 더 많은 고용을 할 수 있도록 대기업이 사회의 표준을 선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대기업의 리더십과 노사 간의 대 타협이 필요하다.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라는 말처럼, 이렇게 고용된 젊은 인재는 호황기에 유능한 인적자원으로 활약할 것이다.

    둘째, 취업 기회가 공정해야 한다. 취업 문이 좁아질수록 기회의 공정성과는 거리가 먼 특채와 연줄에 의한 채용이 만연할 수 있다. 또한 기업체에서 만연된 대학 간판 위주의 서류 심사는 소위 명문 대학 외에는 면접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음으로써, 명문 대는 아니지만 대학 입학 후 진정으로 열심히 전문성을 키운 젊은이들을 좌절시킨다. 대기업의 입사제도가 공평하게 이루어질 때 사교육 문제 등 간판을 위한 줄서기 교육이 바로 잡힐 것이다. 한마디로 대기업이 행사하는 고용 관행이 올바르게 행사될 때, 크게 보면 우리 사회의 공교육이 바로 설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분배의 평등을 위해 대기업이 책임을 가져야 할 사항은 몇 가지가 있다.
    우선 대기업의 최고경영진을 비롯한 리더 그룹은 일반 근로자와의 급여 차이를 일정 수준으로 제한해야 한다. 대기업의 리더 그룹은 급여 수준이 아니더라도 이미 사회적 보상을 얻은 셈이라는 인식이 요망된다. 또한 노사협약이라는 기존의 틀 속에서 고임금과 고용 안정을 보장 받는 정규직 직원과, 비슷한 일을 하면서도 늘 해고의 불안에 떨면서도 훨씬 열악한 보수를 받는 비 정규직 간의 불평등을 어떻게 해소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분배의 평등 문제에 있어서 대기업이 기여할 또 다른 중요한 분야는 중소기업과의 상생 협력이다. 대기업에 종속되어 있는 하청 업체들이 건실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자신의 사회적 책임으로 인식해야 한다. 어느 대기업 총수가 이미 수년 전부터 하청업체에 대한 공정거래를 강조했지만 아직 관행이 정착되지 못한 것에 대해 중간 관리층이 문제라고 탓했다지만, 이제 중간 관리층의 평가를 원가절감 성과 만이 아니라 협력업체의 양성 실적도 중요하게 다루어야만 실질적인 공정거래가 이루어질 것이다.

    사실 대기업이야말로 우리가 선진국의 문턱까지 도달하게 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해 온 공로자임에는 틀림 없다. 그만큼 대기업은 탁월한 경영진과 인적자원을 가동하여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게 되었다. 이제 대기업이 갖고 있는 문제해결 역량을 좀 더 넓은 영역으로 확장하여 이 시대의 구조적인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까지 기여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런 분야는 대기업의 일차적 기능인 경제적 부의 산출과 경쟁력 제고라는 본연의 영역에 포함되지 않는 일이라며 오직 이익 추구에만 전념한다면 조만간 우리 사회는 자본주의는 발달하면서도 민주주의는 쇠퇴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런데 민주주의는 휴머니티(humanity)를 필요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