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사흘째 한마디 코멘트 없이 논의 만...누구 눈치보나뉴데일리등 국민장 요구 "北3대세습 상황서 중요한 변수"
  • 10일 별세한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는 외교노선에 불과하던 북한의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만든 대표적 이론가다. 김정일에게는 직접 주체사상을 가르쳤고, 14년간 김일성대학 총장, 11년간 우리의 국회에 해당하는 북한 최고인민회의 의장, 18년간 노동당 비서를 맡았다. 북한 권력의 핵심이었다. 

    그런 그가 1997년 2월 밝힌 망명 이유는 "전대미문의 독재에 시달리는 2300만 북한 동포를 구원하는 일이 나의 소임이기 때문"이었다. 실제 그는 망명 뒤 북한의 민주화를 위해 일선에 섰다. 각종 강연을 통해 김정일의 폭정과 그로인해 신음하는 북한 주민의 고통을 전 세계에 알렸고, 대한민국 내부에 존재하는 주사파의 전향에도 큰 역할을 했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일주일에 7시간씩 제자들에게 철학 강의를 했고, 별세 6일 전에는 '김일성 3대 세습에 관하여'란 제목의 기고문도 썼다. 천안함 사태 때도 맨 먼저 북한의 소행임을 주장했다. 단순 탈북자가 아닌 '북한 민주화 운동'의 선구자라 할 수 있다.

  • ▲ 11일 오전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아산병원에서 정희경 전 남북적십자회담 대표 등이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 11일 오전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아산병원에서 정희경 전 남북적십자회담 대표 등이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북한 주민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대북 쌀 지원을 끊임없이 주장하는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 좌파 정당들은 황 전 비서의 사망을 두고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제1야당인 민주당은 "황장엽 선생은 북한에서 주체사상을 세운 학자이면서 민족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대한민국 품으로 돌아와서 계시다가 이렇게 급격히 사망한 것에 대해 애도를 표하면서 명복을 빈다"는 박지원 원내대표의 발언이 내놓은 입장의 전부다. 당초 조문도 하지 않으려 했으나 여론에 떠밀려 원내대표단이 대신 조문을 하기로 12일 결정했다.

    북한의 3대 권력 세습에 대해 "우리 국민의 눈높이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 해도 북한의 문제는 북한이 결정할 문제로 보는 것이 남북관계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는 얼토당토한 논평을 한 민노당과 한 뿌리인 진보신당은 더 가관이다. "후대가 평가하겠지만 말년에 남북 대결을 촉진하는 인물로 비친 것이 안타까우며 이러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았으면 한다"는 게 이 좌파정당이 내놓은 입장이다. 조문일정은 잡지도 않았다.

    김대중·노무현 두 정권이 보인 태도 역시 '대북 인도적 지원'이란 그들의 주장과는 매우 상반됐다. 김대중 정권은 황 전 비서의 남북정상회담 비판을 문제 삼아 정치인 및 언론인 접촉, 외부강연, 서적 출판 금지 등 5대 활동 제한 조치를 내렸다. 미 의회의 초청을 받은 황 전 비서의 출국도 금지했다. 노무현 정권은 그를 2003년 8월 국정원 안가에서 쫓아냈고, 같은 해 10월 그의 미국행도 제한했다.

    북한의 열악한 인권, 억압받는 자유를 비판한 황 전 비서의 언행은 이들의 대북 지원 명분과도 정확히 일치함은 물론 우리의 헌법 정신에도 부합한다. 오죽하면 조문일정 조차 잡지 않는 이들을 향해 한나라당내에서 가장 진보적인 인물로 꼽히는 원희룡 의원조차도 "북한의 열악한 인권과 자유를 비판한 황 전 비서의 언행은 우리 헌법정신에도 부합한다. 진보성향 시민단체와 정당도 황 전 비서의 별세를 애도하고 뜻을 같이 기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꼬집었다.

    정부는 황 전 비서에게 1등급 국민훈장을 추서하는 방식으로 고인을 국립현충원에 안장할 방침이다. 여당 지도부는 국가유공자 예우를 요구하고 있다.

    인터넷신문 뉴데일리를 비롯한 보수우파진영에서는  황 전비서의 장례를 국민장으로 치러야 마땅하다고 요구한다.
    지난 1997년 김정일 세습독재에 반기를 들고 망명한 그는 일반 탈북자와 달리 김씨왕조 붕괴의 물꼬를 튼 북한 집권층 핵심이었다. 특히 김정은의 3대세습이후 김정일이 죽고 김정남 세력등 내부 투쟁이 일어났을때 또 다른 황장엽급 고위층들의 탈북사태가 예견되는 상황에서 한국정부는 반드시 국민장으로 예우해야 한다는 것이다.
    좌파 정권의 탄압을 견뎌낸 그를 이명박 정부마저 홀대한다면 누가 또 한국으로 망명하겠는가.
    그의 국민장은 단순히 예우의 문제만이 아니라 3대세습에 대한 경종이며 북한 주민들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가 될 것임에 틀림없는 시점이다.

    10년 만에 좌파 정권을 종식시킨 이명박 대통령은 '황장엽 타계' 보고를 받은후 사흘이 넘도록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정부의 장례절차가 확정되면 "어떤 식으로 든 조의를 표명할 것"이란 게 청와대 관계자가 밝힌 입장이다. 12일 오전까지 이 대통령은 물론 측근들을 통해서도 황 전 비서에 대한 입장은 나오지 않았다. 국무회의 뒤 김황식 국무총리와 임태희 대통령실장 등이 이 문제를 두고 논의 중이라고 한다.

    미국의 북한 인권운동가 수잔 솔티 대표(디펜스포럼재단)도 곧바로 빈소로 달려가 "황장엽 선생은 망명 이후 북한 김정일 정권을 비판하며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모든 인생을 바치신 분"이라고 평가하는 데 북한 인권 개선에 맨 먼저 앞장서야 할 청와대가 사흘째 코멘트 한 마디 하지 않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이미 천안함 사태 때도 초기에 불분명한 태도를 보여 도마 위에 오른 바 있는 청와대가 '북한 민주화 운동'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황 전 비서의 별세에도 비슷한 입장을 보인다면 적잖은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공교롭게도 황 전 비서에게 맹비난을 쏟았던 북한도 지금껏 침묵을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