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보 천국' 만드는 바보들의 행진

    유난히 에너지가 많았던 제 첫째 아들은 어릴 때 한시도 가만있지를 않고 뛰어 놀아서 아파트 아래층 입주자의 불평으로 저희 가족은 맨 아래 층으로 쫓겨내려 왔었습니다.
    한창 자라는 아이를 집안에서 뛰는 것을 규제하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1층 아파트로 내려오니 집에서 부산스럽게 구는 골칫거리는 해결이 되었으나, 문제는 밖에 데리고 나갈 때였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식당엘 가면 뛰는 버릇이 그대로 나왔습니다. 아이를 화장실로 데리고 가서 주의를 주면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을 했으나 돌아 와 앉으면 역시 뛰었습니다. 다시 화장실로 데리고 가서 주의를 주는 일을 몇 번 되풀이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4번째 화장실에 데리고 가서는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가볍게 때렸습니다. 엉덩이를 맞은 뒤 식당 의자에 조용히 앉아 있는 시간이 조금 길어졌다가 다시 뛰기에 5번째 화장실로 데리고 가서 전보다 조금 엄하게 엉덩이를 때렸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아이는 식당에서 아주 조용히 젊잖게 앉아 있을 수 있었고, 주위 사람들에게 칭찬까지 받을 수 있었습니다.

    말을 잘 듣는 아이들은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식당에서 뛰지 않고 조용히 있기도 하지만 저희 아이처럼 힘든 훈련을 시켜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아이의 엉덩이를 때리지 않고 말로도 가능했을지 모르겠지만 훨씬 힘든 과정과 노력을 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이의 버릇을 고치기 위해 체벌을 했을 때 나타나는 효과와 부작용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기 때문에 제가 아이 엉덩이를 때려서 버릇을 고친 것이 잘한 것인지 아닌지는 확신이 서질 않습니다.

    최근 서울시 곽노현 교육감이 학교에서 모든 체벌을 금지한다는 전격적인 발표를 했습니다. 저는 체벌을 하지 않는 것을 원칙적으로 찬성합니다. 인간의 문명이 발달하면서 부모든, 교사든, 인간이 인간에게 물리적 제제를 가한다는 것은 비문명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면서도 과연 한국 학교에서 체벌을 전격적으로 금지시키는 것이 현명할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뉴스를 들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반응은 곽노현 교육감이 이 문제를 정말로 깊이 검토한 뒤에 결정한 것일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문제는 후세들의 장래와 나라의 미래와 관계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특정 정치인이나 교육자의 일방적인 철학이나 즉흥적인 생각으로 결정될 문제가 아닙니다. 각계각층 전문가들의 오랜 연구와 토론과 검토의 과정을 거쳐 체벌의 장단점을 충분히 논의한 뒤에 결정되어야할 문제입니다. 그리고 체벌을 없앨 경우 문제 학생을 어떻게 선도하고 규제할 것인가 하는 대책을 마련하고 그것 또한 깊은 토론을 거쳐야 했습니다. 더욱이 폭력 문화가 곳곳에 만연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학교 체벌만 금지하는 것이 가능할 것인지, 부모와 사회가 체벌 폐지를 수용할 수 있는 성숙성이 있는지도 중요한 관건이 될 것입니다.

    체벌을 폐지시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관건이 그 사회의 문화 의식입니다. 제가 아이의 버릇을 고치기 위해 체벌을 한 효과가 다른 아이에게도 똑 같이 적용될 수 없을 것입니다. 개인이 그러하듯 사회나 나라마다 체벌의 효과와 부작용이 다를 것입니다. 체벌을 폐지하는데 관건 가운데 하나가 그 사회의 인내와 관용과 준법정신입니다. 학생들의 잘못을 고치기 위해 참을성 있게 노력하며 기다리고, 말썽을 피우고 말을 듣지 않는 아이들에게 관용을 가지고 선도할 수 있고, 법치주의가 자리 잡은 국민적 성숙성이 있어야 합니다.

    한국 사회를 미국사회와 비교하면 한국 문화는 몹시 조급합니다. 아이들이 말썽을 피울 때 우리는 소리를 지르고 격앙하는 경우가 많지만 미국 부모들은 우리보다 훨씬 절제력이 많습니다. 무엇이든지 빨리 성취하고 성공해야 하는 의식이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포용하고 선도하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사회 전체의 흐름과 생활이 급류처럼 흘러가는데 아이들 선도 교육만 태평세월처럼 기다려 줄 수 있는 풍토와 소양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학교 체벌을 엄격히 금지시키고 있는 미국 일리노이주 경우, 학생들이 문제를 일으키면 구석에 서 있게 하거나 방과 후에 남아서 반성할 시간을 갖게 하거나, 카운슬러와 상담을 하게하고, 심하면 정학을 주거나, 경찰을 부르거나, 퇴학을 시켜서 문제아들만 따로 교육시키기도 합니다. 이런 징계는 생각만큼 쉬운 것이 아닙니다. 효과가 금방 나타나질 않습니다. 여기에서 오는 부모나 교사, 사회의 인내와 관용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고, 여기에 소요되는 교육 비용이 대단히 많습니다.
    서울시 교육감이 이런 준비와 대안을 마련하고 체벌을 금지시켰는지요?
    교육감에 취임 하자마자 국가백년대계의 교육문제를 이렇게 서둘러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잘못하는 것입니다. 의욕이 앞섰거나 설익은 교육철학을 황급히 적용하는 것은 더 큰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체벌 금지는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스웨덴에서는 이미 1970년대에 학교는 물론이고 가정에서 까지 어린이에게 체벌을 할 수 없도록 했습니다. 대부분의 선진 국가에서는 가정 체벌은 합법적이지만, 학교 체벌은 불법화 시켰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체벌은 손바닥이나 엉덩이를 가볍게 때리거나 심할 경우 회초리를 사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일부 교사들처럼 주먹으로 친다든지 발길질 하는 것은 체벌이 아니라 폭력 행위입니다.

    미국에서도 가정 체벌은 합법적이지만 학교 체벌은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보수적인 남부 지역의 20여개 주는 학교 체벌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일부 주는 공립학교에서는 체벌을 금지시키지만 사립학교에서는 체벌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부모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입니다. 미국처럼 어린의 인격과 존엄성을 남다르게 생각하고, 매사에 굼뜰 정도로 신중하게 일을 처리하는 나라에서 아직도 20개 주가 학교 체벌을 허용하고 있는 것은 체벌에 대한 논쟁이 그만큼 깊고, 체벌의 교육성에 대한 견해가 다르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미국은 1970년대에 체벌을 놓고 사회적인 대 논쟁을 거쳤습니다.
    이 문제가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갔었습니다. 연방대법원은 학교 체벌에 합헌 판결을 내렸고, 체벌은 각 주의 선택에 맡기고 있습니다. 체벌은 수천 년의 논쟁입니다. 체벌은 인간의 인격에 물리적 수치감을 주기 때문에 바른 인성을 형성하는데 악 영향을 주고, 체벌을 많이 받은 어린이는 성격이 공격적이 되고 폭력적이 되기 쉽다는 것이 반대 의견입니다. 체벌 문화에서는 다른 사람의 인격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의식이 약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체벌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성격이나 인성이 형성될 시기에 체벌은 인간의 준법정신과 규율의식을 강화시키고 반듯하고 절제 있는 인간으로 성장시킬 수 있다고 말합니다. 체벌을 없앨 경우 통제 불능의 학생을 처벌할 수 없게 되고, 이런 문제아들로 인해 다수의 다른 학생이 피해를 보고, 전반적인 교육 풍토를 저해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싱가포르는 체벌과 엄격한 훈련을 통해 후진적이었던 나라를 아시아 최고의 일류 국가로 만들었습니다. 학교 체벌이 사라진 서구 교육이 경쟁력을 잃어가고 지나친 자유주의로 인해 사회의 도덕과 기강이 과거보다 허약해지고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체벌을 하지 않고 학생을 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수천 년 된 체벌문화를 하루아침에 자로 줄긋듯이 해결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체벌을 가능한 한 하지 않는 것과 체벌을 불법화시키는 것은 아주 다릅니다.
    부모에게 자녀 체벌권이 없으면 부모의 권위가 그만큼 저하되는 것이고 자녀 교육이 힘들어 질수 있듯이, 하루아침에 교사의 체벌권을 불법화시키면 교사를 무력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교사가 무력해지고 권위가 없으면 학교 교육은 표류할 수 있습니다.

    체벌에 관한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의 즉흥성과 획일성은 무료 급식 계획에서도 나타납니다. 모든 학생들에게 무료 점심을 주겠다는 발상은 너무나 주먹구구식이고 획일적입니다. 대한민국에 돈이 남아돌아가는 것도 아닐 텐데 모두에게 공짜 점심을 주겠다는 것은 국민 세금을 낭비하자는 것입니다. 무료 점심은 가정이 어려워서 점심을 먹기 어려운 학생들에 국한해야 합니다.

    한국보다 잘 사는 미국에서도 저소득층 자녀들만이 무료 점심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점심을 싸줄 능력이 있는 중산층 사람들은 자기 자녀들이 공짜 점심을 먹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능력이 있는 사람이 국가의 혜택을 받는 것은 수치입니다. 그 돈은 더 필요한 곳에 사용해야 합니다. 학교 체벌을 없애면 교육투자가 요구될 텐데 차라리 무료급식에 소요되는 돈이라도 아껴야 하지 않겠습니까?

    능력 있는 사람이 부족한 사람에게 자기 것을 나누는 것이 선진 시민의식이고, 능력 있는 사람은 공짜에 줄을 서지 않는 것이 품격입니다. 학교 점심시간이 무슨 잔치집도 아닌데 모든 학생들에게 일률적으로 공짜 점심을 주겠다는 발상은 민주주의적 사고가 아닙니다. 공짜 점심만이 아니라 무상으로 학용품까지 공급하겠다고 하니 곽노현 교육감의 공짜 발상은 어딘가 낡은 이념의 냄새가 나는 것 같습니다. 공짜 좋아하면 결국은 함께 못 살게 되고, 필요한 교육 투자를 못하게 되고, 결국은 교육의 질이 떨어집니다. 곽노현 교육감은 교육 투자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부터 숙고해야 할 것입니다. 모든 학생에게 공짜 점심을 주는 일은, 맨 나중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선진적 흉내는 내는데 선진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방법이 미숙하고 설익은 것 같습니다.

    무상 급식보다 더욱 생각이 짧고 부작용이 큰 것은 학업 성취도 일제 시험을 거부한 사건입니다. 이것은 대한민국의 장래를 위해 참으로 큰 '사건'입니다. 체벌 문제보다, 무료 급식보다 더욱 심각하고 충격적인 '사건'입니다.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이 학업 성취도 시험을 반대했다가 나중에 한발 뒤로 물러 선 것은 뒤늦게 자신의 경솔함을 깨달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경기, 강원, 전남, 전북지역 교육감들은 끝까지 학업 성취 고사를 반대했습니다.

    여기에 중추적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전교조 교사들입니다.
    전교조 교사들은 교실을 이념 훈련장으로 만든 것도 모자라 이제 교육의 질을 끌어 내리고 있습니다. 전국 일제 평가 고사가 아이들을 줄 세우기 하는 것이라고 반대하는 것은 너무 어이가 없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망연해집니다. 과연 이 사람들이 한국의 장래를 걱정하는 교육자들이 맞는 것일까, 아니면 이념에 경도된 이념의 전사들인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시험에서 언제나 1등 할 수 있는 천재라면 몰라도 이 세상에 시험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인간이라는 동물은 틀이 없으면 망가지기 쉽고, 게을러지고, 낙오되기 쉬운 본능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공부가 싫어도 공부를 해야 하고, 학교가 싫어도 학교를 가야합니다.
    그게 싫으면 생존을 포기하고 낙오자의 길로 가야 합니다. 학교 시험은 인간사회의 틀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입니다. 시험을 통해 학력을 평가해야 인간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고 사회가 발전할 수 있습니다. 공산주의가 실패한 요인 가운데 하나가 같이 잘 살자는 훌륭한 철학을 강조했으나,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동기부여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공부도 안 하고, 시험도 안 보고, 돼지처럼 행복하게 먹고 자면 좋겠지만 나중에는 그런 돼지의 자유도 누릴 수 없게 됩니다.

    한때 노무현 정부 사람들이 서울대학교를 폐지시키려고 했던 발상도
    시험을 거부하는 발상과 비슷한 것이었습니다. 세상의 기본 질서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우열과 상하가 요구되고 있는데 그것을 똑 같은 키로 잘라버리겠다는 획일성은 문명을 열등으로 후퇴시키겠다는 의식입니다. 일류대학이 나쁜 것이 아니라 일류에 중독된 병든 의식이 잘못된 것이고, 시험이 나쁜 것이라 점수를 인간 척도로 평가하는 사회 의식이 문제인 것입니다. 한국 사회만큼 점수를 의식하고 일류를 의식하는 나라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본질적인 것을 고칠 생각을 하지 않고, 의욕과 동기의 상징인 일류대학과 시험을 반대하는 발상은 병이 들어도 너무 심하게 병이 들었습니다. 일류와 시험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심한 열패감의 소유자들이면서도, 내심으로 일류에 속하고 싶어 하는 이중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인간 능력을 극대화시키려는 동기가 없었고, 그것을 실현한 인재들이 없었으면 오늘의 한국 사회의 번영은 가능치가 않았을 것입니다. 일류와 시험을 없애자는 것은 함께 못 살고, 함께 열등해지고, 함께 후진사회가 되자는 비뚤어진 의식입니다.
    서울대학을 폐지시키고 능력평가고사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획일적인 무상급식을 주장하고, 체벌까지 폐지하자고 주장할 만큼 한국 사회가 성장한 것은 일류대학과 시험을 통해 능력을 개발시킨 사람들의 공헌이 컸습니다.
    일류의 두뇌와, 시험의 동기와, 국민들의 열정과 의욕이 나라를 이끌어가는 견인차입니다.
    전교조들이 그 근간을 흔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