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회의원이 대낮에 주먹질을 당했다. 그것도 국회에서다. 국회의원은 국민이 뽑은 엄연한 입법기관이다. 법으로 보호하는 신분이다. 그 국회의원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하고, 머리채를 잡았다. 이유는 의원이 제의하려는 법안 때문이라고 한다. 입장에 따라 법안 내용에 불만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토론을 하고, 합의를 거쳐 법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이번엔 주먹이 빨랐다. 폭력이 앞선다면 우리 사회는 절차도 법도 필요 없다. 내키는 대로 살아가면 된다. ‘대한민국’이라는 간판도 내려야 한다.

    인터넷을 통해 펼쳐지는 사이버 세상엔 살기가 넘쳐흐른다. 일부는 “잘 맞았다”고 박수를 친다. 폭력을 옹호하고 가해자에 박수를 보낸다. 아파 누운 사람에게 저주에 가까운 악담을 보내는 철부지 네티즌들도 있다. 사회 전체가 증오의 열병을 앓고 있다. 출퇴근길에 만나면 미소 나누고픈 이웃들이, 이념이라고 할 것도 없는 ‘생각의 차이’만으로 상대에게 칼을 겨눈다. 그리고 그 칼은 수없이 많은 이들의 가슴에 상처를 남기고 결국 자기 자신의 가슴에도 똑같은 아픔을 남기고 만다.

    빌미가 된 사건은 20년 전 일어났다. 이른바 부산 동의대 사건이다. 대학 측의 입시부정에 항의시위를 하던 학생들이 진압에 나선 전경 5명을 도서관에 가뒀다. 그리고 이들을 구출하러 출동한 경찰관 7명이 시위대에 의해 불에 타 숨졌다. 순직 경관들을 기리는 추모비는 지금도 충주 경찰학교에 서있다. 그런데 민주화보상위는 2002년 이 사건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이들을 포함해 46명을 민주화유공자로 인정했다. 13년 만에 피해자는 가해자로, 가해자는 피해자로 자리를 바꿔 섰다.

    헌재는 경찰 유가족이 민주화보상위를 상대로 2005년 낸 헌법소원을 5대 4의 결정으로 각하했다. 당시 참여한 주선회 전 헌법재판관은 “보상심의위원회 결정은 취소돼야 한다”고 소수 의견을 냈다. 그가 최근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당시 헌재 결정은 민주화보상위 요구를 받아들여도 이미 국가유공자 대우를 받는 경찰과 유족들이 손해를 보지 않을 것이라는, 누이 좋고 매부 좋으면 된다는 식의 잘못된 판단”이었다고. “이제라도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 한다”고.

    민주화보상위는 2000년 8월 출범했다. “헌법에 보장된 국민 기본권을 침해한 권위주의적 통치에 항거하다 희생된 분들과 그 유족에 대해 명예회복 및 보상 하고, 그로써 민주주의 발전과 국민화합에 기여한다”고 홈페이지에 설립 취지를 적고 있다. 동의대 사건은 이 중 어디에 해당할까? 아무리 의식의 영역을 늘려도 시위 학생들이 민주화 유공자라고 기댈 공간은 찾아지지 않는다. 한 진보 인사는 “2002년 심의위의 동의대 결정을 듣고 깜짝 놀랐다. 결코 좋은 일이 아닌, 되레 진보진영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악재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바른사회시민회의 조사에 따르면 민주화보상위, 진실·화해과거사위 등 9개 과거사 위원회 위원 178명과 직원 149명 중 위원 88명(49.4%)과 직원 82명(55%)이 진보성향이라고 한다. '민주화보상심의회' 위원의 30% 이상이 민주노총 등이 연합한 단체가 추천한 사람들이라는 발표도 있다. 편 가르기는 아니지만 명백히 잘못된 구성이다.

    두 눈 중 한 눈을 감으면 한 쪽으로 기운 세상을 보게 된다. 마음도 기울고, 걸음도 한 쪽으로 치우치게 된다. 과거를 바로잡는 것은 치유이다. 치유는 어느 한편만 바라보는 시각으론 곤란하다.

    386이 낳은 노래패 ‘노래를 찾는 사람’들은 ‘선언2’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참 자유 세상 참 평등 세상 끝내 건설하리라”라고. 참 자유 세상 참 평등 세상은 한 눈 아닌 두 눈으로 바로 보는 세상이다. 한 눈으로 보고 내리는 판단은 정치적 선언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