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 0월 0일 막 동이 트는 새벽, 연평도 북방 NLL 인근을 맴돌던 북한 경비정 4척이 갑자기 속력을 내며 남진하기 시작했다. 밤새 북 경비정의 움직임을 주시하던 대한민국 해군 역시 대응 기동에 긴급 들어갔다. NLL 침범 사실을 알리며 시위기동에 들어간 우리 해군의 경고를 무시한 채 북한 경비정들은 계속 남하했다. 해군이 경고사격을 준비하는 순간 북한 경비정으로부터 기관총 세례가 우박처럼 우리 함정들에 쏟아졌다. 1999년, 2002년에 이은 제3차 연평대전의 시작이었다.’ 

    남북관계 악화와 북한의 잇단 도발적 위협으로 남북 충돌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북이 도발을 해온다면 가장 우선 떠올릴 수 있는 예상 전장은 서해. 인터넷에선 재발 가능성 높은 서해 남북 격돌에 대해 다양한 시나리오가 떠다니고 있다. 

    최악의 상황을 예상한 한 네티즌의 가상 시나리오는 이렇다.

    오전 10시 43분께 교전 해역에 전속력으로 출동한 한국 초계함은 NLL에서 약 13km 이남에 있어 북의 스틱스 미사일 사정거리 안에 정확히 들어가 있는 상태. 스틱스 미사일 레이더 작동을 감지한 초계함은 더 이상 북진을 중단하고 함포사격을 하면서 레이더 파를 교란하기 위해 ‘채프(은박 금속편)’를 살포했다.

    스틱스 미사일 공격을 받은 우리 측 초계함은 치명적인 피해를 입고, 우리 측 다른 초계함에서 함대함미사일인 하푼과 엑소세 미사일이 발사돼 사곶 해군기지에 작열한다. 후방에서 대기하던 해군 구축함(DD)도 사정거리 130km 하푼 미사일을 발사해 적을 초토화시킨다. 이와 동시에 북한의 등산곶 기지의 지하벙커에 있는 사정거리 95km~250Km의 실크웜 지대함미사일이 일제히 지상발사대로 올라와 날아온다.  

    ‘한반도의 화약고’인 연평도 일대는 남북한 모두 엄청난 화력을 집중 배치하고 있다. 북한의 웅진반도에 집중 배치된 사정거리 20km가 넘는 76.2mm 지상포와 해안포가 불을 뿜으면, 우리측도 백령도와 연평도에 배치된 고성능 해안포가 응사에 나선다.

    동시에 한ㆍ미 연합군에 ‘데프콘 Ⅱ’, ‘데프콘 Ⅰ’이 잇따라 발령되고 작전권이 합동참모본부에서 주한미군으로 넘어간다. 용산 미8군내 지하벙커 ‘탱고’에서 주한미군사령관과 합참의장 연합사 부사령관 등이 참가한 가운데 이미 수립돼 있는 ‘작전계획 5027’에 따라 전쟁 상황에 돌입한다.  

    한미연합군은 우세한 공중 전력을 바탕으로 KF-16 전투기가 출격해 공대지미사일로 북한의 미사일기지 및 해안포 기자를 제압하고, 황해도 과일 황주 곡산등 3개 기지에 대기중인 북한 미그 19ㆍ21기 150대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전장을 확대한다.

    하와이에 주둔한 미태평양방위사령부에서도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가 신속 대응군을 싣고 한반도로 발진하고 일본 오키나와에서 ‘날아다니는 작전사령부’ 공중조기경보기(AWACS)가 출격해 북한군의 움직임을 ‘이 잡듯’ 감시한다.  

    이 정도면 국지전을 넘어 사실상 전면전 양상을 띠게 된다. 한ㆍ미연합 공군 전투기와 사정거리 250km의 SA미사일은 북한 전역에 분포된 우선 폭격 대상 2,000여 곳에 대한 대대적인 공습과 폭격을 감행한다. 북한은 10여분 만에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 수 있는 수백기의 장사정포로 대응하면서 특수부대들을 후방에 침투시키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다.  

    한국 패배라는 비관적 견해를 말하는 네티즌들도 있다. 

    북은 미일 견제용으로 미국 중심부까지 갈 수 있는 대포동 시험발사와 핵실험을 한다.

    그리고 핵 자주권 선언과 미국이 내정간섭을 하면 죽을 각오로 보복하겠다고 협박한다.

    남한과는 관계를 사소한 빌미로 냉각시키고 연평해전처럼 휴전선에서 분쟁을 일으킨다.

    이 분쟁에서 일부러 희생을 치루고 남한이 북침했다고 국내 방송에 대대적 홍보와 전쟁태세를 선포합니다.

    남한이 도저히 들어 줄 수 없는 요구를 한다.

    그다음 함경도 지하벙커에서 사거리 300km~500km 스커드C형을 한두 기 수도권에 엄포발사를 한다. 한국이 북한의 요구를 들어 줄때까지 미사일로 계속 압박한다.

    처음엔 2발, 그 다음엔 4발, 8발, 10발 목표물도 군사시설에서 민간시설(여의도, 영종도, 파주 LG필립스 등) 그리고 댐, 원자력 발전소 등.

    결국 한국은 경제적 타격을 견디지 못할 것이고 또한 국민의 불안이 지속되는 걸 정권이 버티지 못할 것이다. 한국 지상군의 공격도 한두 번 크게 피해를 입히면 북진하지 못한다.

    한국의 전폭기는 북한의 지하벙커를 타격하지 못한다.

    결국 한국 정권은 북의 미사일 공방전에 효과적 방어는 물론 응징도 못하고 굴욕적인 협상에 응하게 된다. 

    한 네티즌은 북이 작심하고 공격한다면 3차 연평재전은 1,2차와 양상이 다를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그는 “1차로 남측 함선의 기관포나 함포 사거리 밖에서 미사일 고속정으로부터 공격이 진행되거나 해안에 준비된 대함미사일과 해안포, 해안탱크부대와 자주포 부대의 공격이 먼저 진행될 것”이며 “이 경우 한국 전투함에 미사일요격체계인 이지스체계가 장비되어 있다고는 하나 포병부대의 융단폭격에는 남아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주장했다. 한국이 큰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그는 또 “서해에서 국군이 일부 승기를 잡는다고 해도 북한은 비어있는 동해안으로 밀고 내려올 가능성이 높고 바로 부산과 진해에 대한 타격도 가능해진다.”며 제3차 연평대전이 전면전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김성만 전 해군작전사령관(예비역 해군 중장)이 ‘e조은뉴스’에 기고한 글은 전문가적 견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그는 제3차 서해교전 역시 서해 연평도 서방의 NLL 남쪽에서 일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 함정이 한국 함정에 대한 함포 기습공격으로 교전이 시작된다는 것. 그가 예측한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30여 분 간의 교전결과 북측함정이 모두 침몰된다. 한국해군이 사격통제장비와 함포 성능 면에서 월등히 앞서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함정의 피해도 결코 적지 않다.

    곧 이어지는 2차 교전은 해안포와 유도탄에 의한 전투다. 북한은 해안포로 한국 고속정과 연평도 전탐기지를 공격하고, 대함유도탄으로 대형함을 집중 공격한다. 인근해역에 북한함정은 한척도 없다. 한국은 하는 수 없이 연평부대의 해안포로 북한의 지대함유도탄 기지와 해안포 진지, 전탐기지를 공격하고, 구축함(DDH-2)에서는 탑재하고 있는 SM-2 대공유도탄으로 북한의 대함유도탄을 격추하지만 이미 상당한 피해를 당한 후다.

    전투결과 북한 대함유도탄에 의한 집중피격으로 한국 대형함(호위함, 초계함)이 모두 침몰한다. 그러나 북한 측의 피해는 즉각 확인이 되지 않는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한국이 보유하고 있는 정보자산(금강·백두)이 공중정찰을 해야 하는데 북한의 지대공유도탄(SA-5) 위협 때문에 당장은 비행이 불가능하다. 국면이 소강상태에 들어간 한참 후에야 아리랑 위성을 이용하여 북측의 피해상태가 일부 확인된다. 결국 전투는 소강상태로 이어지고 외교적 해결 국면을 맞게 된다.

    북한은 즉각 해군사령부 성명을 통해 한국이 먼저 도발하여 북측이 많은 피해를 입었다고 격렬히 비난한다. 곧이어 북한의 요청에 따라 남북장성급회담이 판문점에서 열린다. 여기서 북한은 이번사태의 책임은 전적으로 남측에게 있다며 2000년 3월에 북한이 일방적으로 설정한 ‘남북해상경계선’과 ‘서해 5개 섬 통항구역’을 즉시 적용하고, 이 섬에 출입하는 남측선박은 북한 당국의 사전허가를 받아야 함을 강조한다.

    그러나 한국은 북한의 위협에 개의치 않고 평소대로 민간선박에 대한 함정 호송작전을 강행한다. 이 때 호송하던 한국함정이 북한잠수함(상어급)에서 발사한 어뢰에 의해 침몰한다. 북한해군의 잠수함 운용은 한국보다 30년 먼저 시작하여 그 능력이 우수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더구나 NLL근해는 지리적으로 북한에게 유리하다. 대함유도탄의 사거리도 100~300Km로 우리 함정과 선박에게 큰 위협이 되고 있다.

    북한 해군·공군에 의해 주변해역이 완전히 봉쇄된 상황에서 한국 해군의 해상작전은 큰 위험에 처한다. 북한의 대함유도탄·잠수함·해안포의 위협으로 한국함정이 서북도서(백령·연평도서군)에 접근할 수가 없다. 이후 서북도서에 대한 선박운항은 전면 중단된다. 점차 도서주민의 생필품이 고갈되어 간다. 중환자와 응급환자도 육지로 후송이 불가하여 생명이 촌각을 다투게 된다.

    한국 정부는 북측과의 협상을 위해 전략무기(현무 등)를 사용하겠다며 압박을 가하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다. 대량살상무기(핵, 탄도탄 등)로 이미 무장한 북한이 이를 수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서북도서 주민의 안전을 위해 주민들을 육지로 소개(疏開)키로 결정한다. 한국의 요청에 따라 남북장성급회담도 개최된다. 여기서 북측에 서북도서 주민소개에 대한 안전보장을 요구해 북한의 허가를 받은 후 민간선박을 동원해서 주민을 모두 소개한다.

    군수지원이 차단된 상태로 대책 없이 몇 개월이 흘러간다. 이제는 서북도서에 주둔 중인 해병대의 식량이 문제가 된다. 결국 북한의 허가 하에 해병대도 병력만 겨우 철수하게 된다. 이어 북한은 서북도서를 무혈점령하고 강력한 군사력을 구축한다. 신형 이동용 지대함유도탄(개량형 실크웜, 사거리 300Km)을 백령도·소청도, 연평도·우도에 각각 배치한다. 지대공 유도탄도 배치한다. 그리고 북한은 항공기의 인천공항 이·착륙과 선박의 인천수로 항해를 금지한다. 이로써 한국은 엄청난 정치·군사·경제적 혼란을 겪게 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미국과 일본은 한국에 대한 특별한 지원을 하지 못한다. 한국 국민의 반미·반일 감정이 점차 고조되고 있는 상태에서 국지적인 분쟁에 가능한 한 휘말리지 않겠다는 국가정책 때문이다. 한미·한일 군사관계도 과거와 같지 않다. 1980년대 평시작전통제권을 행사하던 시절, 광주민주화운동에서 오해받았던 뼈저린 교훈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북한도 미국과의 충돌을 자제하는 분위기이고, 미국역시 북한과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이 우선이기 때문에 충돌을 피하려는 소극적 자세로 나오게 된다.

    그러다가 북한이 서북도서에 군사력을 증강 배치하고 북한주민을 이주시키는 등 영구 점령하려는 행태를 보이자 미국은 즉각 유엔안보리를 소집한다. 유엔안보리는 북한군의 즉각적인 철수를 요구하지만 북한이 이를 거부함에 따라 미국은 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일본 등 연합해군을 구성하여 한반도로 이동한다. 미국은 이라크전에 많은 함정이 이미 투입되어 있어 함정차출에 어려움을 겪게 되고, 또한 북한 핵과 탄도탄의 위협으로 이지스함의 호위 없이는 대규모 함대의 서해 해역 진입이 어려워 작전준비에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 미국은 이지스함의 부족을 메우기 위해 한국 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본해상자위대 함정을 끌어들인다.

    이렇게 해서 서해에 3개 항모강습단과 1개 상륙준비단이 도착한다. 강력한 해군력에 의해 서해중부해역의 해상·공중 우세권을 회복하게 된다. 연합군은 서북도서 주변에 대한 봉쇄를 실시한다. 북한은 점령지에 대한 군수지원이 불가능해지자 미국에게 회담을 제의한다. 몇 개월에 걸친 회담결과 북한은 무조건 철수하기로 결정한다. 유엔은 서북도서를 유엔의 통치하에 두기로 결정한다. 수년간의 유엔통치 후 한국군은 서북도서에 해병대 2개 사단을 배치하고 요새화한다. 그리고 한국 정부는 결국 서북도서 방어를 위해 한미연합사령관에게 1994년에 환수한 ‘평시 작전통제권’까지 다시 넘긴다.

    우리 국민은 제3차 서해교전 사태를 보고서야 한국군 능력의 한계를 실감하게 된다. 북한의 핵무기와 탄도탄이 갖는 무형의 힘도 알게 된다. 그 동안 북한군의 능력을 과소평가한 군 수뇌부도 뒤늦게 잘못을 뉘우치고 통한의 눈물을 흘리지만 이미 엄청난 희생을 치루고 난 후다. 우리 국민은 비로소 한국의 안보에서 차지하는 서북도서와 북방한계선(NLL)의 중요성을 깨우치고 공고한 한미동맹의 필요성을 재인식하게 된다.  

    이처럼 다양한 의견들에 대해 국방부 한 관계자는 “전쟁의 승패를 예측할 수는 없고 어떤 시나리오다 가능하지만 한국군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유감”이라며 “북의 어떤 도발에도 의연히 대처하고 꼭 승리한다는 것이 우리 군의 각오”라고 말했다.